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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놀이는 몸에서 시작된다.

경주마의 엔진을 버리고 야생마의 심장을 달다

by 불드로



마흔, 나는 ‘일’이라는 경주를 그만두고 ‘놀이’라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여행이 그렇듯, 나의 여행도 준비물이 필요했다. 바로 ‘체력’이라는 이름의 튼튼한 배낭이었다.

단순히 시간만 때우는 놀이는 금방 지루해진다. 하지만 작은 노력을 더하면 놀이의 즐거움은 1,000배가 된다. 중남미의 태양 아래서 스페인어로 농담을 건네고, 현지인들과 살사 스텝을 밟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은가? 내게 놀이란 그런 것이었다. 더 큰 즐거움을 위한 유쾌한 노력.

그 위대한 놀이의 첫걸음은, 내 인생 최악의 몸을 개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첫 번째 놀이, 복싱: 뱃살 두른 아저씨, 링 위에 오르다


90kg. 마흔의 나이에 내 몸무게는 인생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술로 채운 뱃살은 바지 위로 넘실거렸고, 셔츠 단추는 비명을 질렀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제멋대로 두근거렸고, 두 계단만 올라도 숨을 헐떡였다. ‘40대 급사’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대로는 놀기는커녕 생존 자체가 위험했다.

그때, 길에서 본 ‘복싱 다이어트’ 간판이 떠올랐다. 하지만 링 위의 투지는커녕 체육관 문턱을 넘을 용기조차 없었다.


‘온통 20대 혈기왕성한 친구들뿐이겠지?’ ‘웬 아저씨가 와서 물 흐린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체육관 앞을 서성이기만 여러 날. 그러나 고민의 시간보다 중요한 건 결심의 순간이었다. ‘시작이 반이다!’ 눈 딱 감고 등록한 그날, 내 몸의 반란이 시작됐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온몸의 근육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즐거웠다. 샌드백을 두드릴 때마다 회사에서 억눌렸던 울분과 스트레스가 터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주 4~5회, 꾸준히 체육관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첫 3개월에 10kg, 1년 만에 총 15kg이 사라졌다. 꽉 끼던 바지가 헐렁해졌고, 세상이 가볍게 느껴졌다. 몸에 활력이 생기자 없던 용기도 솟아났다. 2년 차에는 10km 마라톤에 출전해 45분대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동년배 중에서는 꽤 빠른 기록이었다. 더 이상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무기력한 아저씨가 아니었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내 의지로, 내 두 발로.


두 번째 놀이, 춤: K-POP과 함께 세계의 인싸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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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춤을 추고 싶었다. 문득 교실 뒷자리에서 박남정의 ‘ㄱㄴ춤’을 기막히게 추던 ‘날라리’ 친구가 떠올랐다. 부러웠지만 ‘범생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시도조차 못 했던 어설픈 10대 시절. 마흔이 되어서야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춤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방송 댄스 학원. 그곳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TV 속 아이돌처럼 나도 몇 달만 배우면 제법 폼이 날 줄 알았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몸은 박자를 무시하는 통나무 그 자체였다. ‘아, 이게 바로 몸치구나.’ 강한 현타가 왔지만,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는 순간만큼은 나이를 잊었다. 그 즐거움 하나로 6개월을 버텼고, 몇 년을 더 이어갔다.


이 어설픈 춤사위는 세계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위력을 발휘했다. ‘강남 스타일’이 지구를 흔들던 시절, 나는 가는 곳마다 ‘코리안 댄싱머신’이 되었다. 필리핀 보라카이 해변의 라이브 바 무대에 난입해, 여행 전 특훈으로 익힌 원더걸스의 ‘Nobody’ 안무를 선보였을 때의 환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술 한잔 걸치고,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라이브 음악에 맞춰 전 세계 여행객들과 함께 춤을 추던 순간. 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완벽한 ‘음주가무’였다.


세 번째 놀이, 주짓수: 나는 UFC 챔피언, 아니 ‘소맥 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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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이 익숙해질 무렵, 집 앞에 주짓수 체육관이 문을 열었다. UFC 1회 대회에서 작은 체구의 호이스 그레이시가 거구들을 쓰러뜨렸던 그 신비한 무술. 호기심이 동했다.

주짓수는 머리를 때리는 복싱과 달리,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의 향연이었다. 위험해 보이지만 상대가 항복 신호(탭)를 치면 즉시 놓아주는 신사적인 운동이었다. 매일 젊은 관원들과 땀 흘리며 뒹굴다 보니, 나이 차이를 잊고 친구가 되었다. 몇 년간의 꾸준함은 내 허리에 파란 띠(태권도 2~3단 격)를 둘러주었다.

나의 정체성은 도복 소매에 새긴 ‘소맥 파이터’라는 문구에 담겨있다. 최강의 파이터는 아니지만, 운동 후 젊은 친구들과 소맥 한잔 기울일 줄 아는 유쾌한 파이터! 그걸로 충분했다.


네 번째 놀이, 생활 운동: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한때 ‘몸짱’이 되어보고 싶다는 욕심에 PT까지 받으며 나를 몰아붙인 적이 있다. 근육은 잠시 화를 냈지만, 무리한 운동은 부상으로 돌아왔다. 건강하자고 시작한 운동이 몸을 해치면 본말전도가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나와 타협했다. 이제 나의 목표는 ‘보디빌더’가 아닌 ‘활력 넘치는 50대’다. 하루 1~2만 보 걷기, 집에서 하는 턱걸이와 역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만하면 내 인생의 ‘사랑과 정열’을 불태우기엔 부족함이 없으니까! 하하.


이렇게 나의 몸은 지난 10년간 가장 믿음직한 놀이의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건강한 신체는 행복을 담는 그릇이다. 단단해진 그릇 위에, 나는 이제 더 넓은 세상을 담아보기로 했다. 바로 ‘언어’라는 새로운 놀이를 통해.

지난 10여 년간 5가지 언어를 맛보았던 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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