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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죽신과 초품아

첫 번째 조건, 선호

by 송두칠

기본적으로 부동산은 내 지갑을 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내켜야 합니다. 한 두 푼짜리도 아니잖아요. 내 마음에 들어야 비로소 사든 말든 합니다.


돈이 나가는 일에는 심리가 있고, 선호도가 있습니다. 소비에는 소비 심리가, 투자에는 투자 심리가 있어요.


'이왕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라고 하잖아요. 같은 값이라면 더 좋아하는 물건을 소비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때로는 돈을 더 주고서라도 더 좋아하는 물건을 사기도 하고요.


그래서 누군가가 내 집을 나보다 더 비싸게 주고 사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선호'입니다. 이 집을 사고 싶어해야 합니다.



작금의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는 주류 선호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았던 선호들도 많습니다.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 '얼죽신' 아닐까요. 한 때는 환경 호르몬이다 뭐다 하면서 오히려 새집을 꺼리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말이죠. 이제는 '얼어 죽어도 신축'이 대세입니다.


▲ 확실히 신축 아파트가 많이 오른다. (출처: 한국부동산원, 2024년 1월~2025년 1월)



요즘 바짝 오르고 있는 또 다른 선호는 바로 '직주근접'입니다. 그래서 GBD, YBD, CBD로 불리는 서울 3대 오피스지구와의 근접성이나 교통편이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똑같은 역세권이라고 하더라도 2, 3, 5, 9호선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GBD(Gangnam Business District): 강남, 서초, 송파구 일대. IT 업계 중심의 젊고 활기찬 분위기. 2호선과 9호선이 메인이고, 3호선, 신분당선 등도 접근성이 좋습니다.


YBD(Yeouido Business District): 여의도를 포함한 영등포구 일대. 금융 관련 일자리가 많고, 국회와 일부 방송국도 소재하고 있어요. 주로 5호선, 9호선 권역이고요.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광화문, 시청, 청계천 일대. 정부기관, 공공기관, 대기업 및 외국계 기업 본사가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2호선, 5호선이 메인이고 그 외 1호선, 3호선도 접근성이 좋아요.


요즘은 여기에 분당(BBD)까지 더해서 얘기하는 추세죠.


▲ 서울 자치구별 지역 내 총생산(GRPD). 서울 3대 업무지구가 또렷하다. (출처: 서울시, 2017년)



'대단지'에 대한 선호도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선호입니다. 가령 2018년에 준공된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세대)만 하더라도, 당시에는 저기 너무 과하게 대단지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죠.


하지만 조만간 줍줍이 예정되어 있는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2,032세대)는 대단지라 좋다는 얘기 뿐입니다.


대단지에 대한 선호는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것, 단지 관리가 잘 된다는 것, 비교적 관리비가 저렴하다는 것 등이 그 이유로 꼽힙니다.


▲ 대단지 아파트는 강남 개발과 1기 신도시 개발을 거치며 점차 일상화되었다. 사진은 분당신도시건설사업 종합계획도. 분당 개발 당시로 추정된다. (출처: 국토교통부)



소위 '상급지' 개념도 근래에 확립됐습니다. 물론 언제나 더 좋은 터에 대한 갈망은 있었죠. 하다못해 왕십리에서 십리를 더 가서 한양에 터를 잡은 것도, 상급지를 찾으려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노력이었잖아요.


하지만 최근에는 '묻지마 상급지' 수준입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강화된 '똘똘한 한 채' 전략 때문입니다. 이제 평수고 뭐고 그냥 무조건 상급지입니다. '강남3구'와 '마용성'은 옳고, '노도강'과 '금관구'는 틀리죠.


▲ 아파트 평당 매매가를 기준으로 한 부동산 계급도. 강남3구와 마용성이 건재한 가운데, 특히 용산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광진구, 강동구도 눈에 띈다. (출처: kt estate)



이 외에 '초품아'도 자식을 애지중지 귀하게 키우는 요즘 세대에서 유독 선호가 강한 요소라고 볼 수 있고요, '강남 접근성'이 0순위로 꼽히는 것도 요즘의 두드러진 특징이에요.


거꾸로 과거에는 없거나 약했던 비선호도가 높아진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동네가 구로, 가산, 대림, 서영등포 일대죠.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다수 거주하면서 연변거리, 차이나타운 등이 조성되고, 이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교육 문제로 선호도가 뚝 떨어졌잖아요. 영화 <범죄도시>도 작게나마 영향을 끼쳤을까요.



한편, 예전부터 유효한 선호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학군지'에 대한 수요는 여전합니다.


이제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강남 8학군'도 그렇고요, 비교적 선호도가 떨어지는 양천구의 경우에도 '목동 학군지' 하나로 집값을 버티고 있는 형국입니다.


교육도시로 유명한 대전의 경우 '크목한'으로 불리는 3대장 아파트(크로바-목련-한가람)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억씩 더 비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노원구 중계동은 '학군지'라기 보다는 '학원가'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요즘 우리가 이야기 하는 학군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동네죠.)


▲ 목동 7단지 아파트. 지난달 7일 전용 101m²는 30억 2천만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찍었다. (출처: 매일일보)



'역세권'에 대한 수요도 여전합니다. 물론 몇 호선인지에 따라 선호하는 정도가 다르기도 하고, 경전철이나 지선의 경우 선호도가 뚝 떨어지기도 하지만요. 그 유명한 '버뮤다 응암지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세권 아파트들은 부동산 불황기에는 비교적 수준급의 방어를 보여주고요, 부동산 활황기에는 누구보다 높게 날아갑니다. 출퇴근길 러시아워, 도심 집회 등이 빈번한 서울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역세권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 사실 역세권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지만 대략 도보로 10분 내외, 거리로 따지면 1km 전후면 역세권이라고들 한다.



이제 옛날 얘기를 좀 해봅시다. 한 때 우리 부동산 시장을 휩쓸었던 얘기입니다.


한 때는 풍수지리를 빼놓고는 부동산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르신들은 풍수를 많이 보시고요.


대표적으로 '배산임수'라는 지형에 대한 선호가 아주 높았습니다. 강이 북쪽에 있는 강남3구가 부동산 천상계인 지금 모습을 보면 이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네요.


▲ 어르신들이 높은 자리에 계신 공직사회는 아직 배산임수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사진은 2004년 8월 신문기사 중 일부. (출처: 경향신문)



'남향'에 대한 선호는 지금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큰 위세를 떨치지는 않습니다. 남향이든 동향이든 어쨌든 햇빛만 잘 들어오면 된다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지형에 대한 선호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경사지와 분지를 꽤나 꺼려했죠. 산사태 나고, 물난리 난다고요. 지반이 단단한지 여부도 따지곤 했습니다. 화강암 지대여야 건물이 안 무너진다면서 말이죠.


지금은 이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분지 지형이 바로 강남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동네.


▲ 2022년 서울 물난리 당시 강남역 모습. 사진 속 제네시스 차주는 '서초동 현자'라고 불렸고, 이 사진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다. 강남이 수해 위험지역인 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제 유사과학이 되어 사라진 '수맥'도 한 때는 센세이셔널 했습니다. 부동산을 계약하기 전, 기다란 쇠막대 두개를 양손에 들고 계약 예정인 집을 돌아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안 그래요.


이 외에도 부동산 시장에서 선호가 변화한 모습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금처럼 빌라가 꺼려질 거라고는 누가 짐작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2022년 빌라왕 전세사기 사태도 크게 한 몫 했다고 봅니다.


'못난이'로 불리는 1~2층에 대한 기피현상은요? 예전에는 애들이 뛰어놀기 좋다는 고정수요가 꽤 두터웠는데, 저출산 때문인지 사생활 중시 기조 때문인지 이제는 말그대로 못난이 매물이 되어버렸죠. 보통 다른 층보다 1억 가까이 저렴합니다.


탑층도 비슷합니다. 예전에는 층간소음도 없고 비교적 옥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며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파트 옥상문이 잠기고, 관리비가 비싸다는 단점이 부각되면서 선호도가 확 줄어들었죠.


사라졌거나 약해진 선호들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 그래도 아직 열두 척 정도의 선호는 남아있지 싶다. (출처: 한국경제TV)




결론은 간단합니다.


선호는 바뀐다는 겁니다. 선호는 고정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선호'는 그냥 '내 마음'이니까요.


너무 당연한 얘기입니다. 누구나 아는 얘기이고요.


이 당연한 결론을 갖고, 처음으로 돌아가봅시다.


▲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범국민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이 일어났더랬다. 나라를 살리자는 구호 아래 장롱 속 돌반지까지 꺼내놓는 모습은 지금으로선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부동산이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필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선호입니다.


우리가 재테크로 삼는 수단들은요, 미래에도 그 선호가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이 그렇죠. 금은 미래에도 각광받을 걸로 생각하잖아요. 미술품 재테크도 그렇고요, 미국 국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동산은요? 지금 내 눈에 좋아보이고, 시장에서 좋아라 하는 물건이 과연 미래에도 그럴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불확실합니다.



▲ 동네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인 '대장 아파트'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이끄는 주역이다. 하지만 모든 대장아파트들이 계속 전고점을 뚫고 신고가를 갱신하는 것은 아니다. (출처: sydney0709 네이버블로그)



지금의 집값에는 현재의 선호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시장가 형성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런데 미래에도 그 선호가 여전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즉, 선호 프리미엄이 빠질 수 있습니다.


내년 이맘 때의 선호는 대강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5년 뒤, 10년 뒤에도 지금이랑 그렇게 판이하게 바뀌겠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별로 동의는 안 되지만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칩시다. 그럼 15년 뒤는요? 20년 뒤는요? 지금 태어난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쯤에는요?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별로 멀지도 않은 미래인 10년, 20년 뒤 선호마저 우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장담은 커녕 짐작하기도 힘듭니다.


지금의 대장 아파트가 미래에도 대장 아파트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개인의 선호가 불변이라고 쳐도, 개별 아파트에 대한 선호는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예를 들어서 학군을 봅시다. 좋은 학군에 대한 수요가 미래에도 그대로라고 칩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 어디 백년지대계인가요. 조변석개, 같은 정권 안에서도 수시로 휙휙 바뀌잖아요.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수시 비중을 늘린다고 그렇게 얘기하더니, 정권 후반기에는 정시 비중 늘리라고 대학에 '협조'를 구하기도 했고요.


학군도 그렇습니다. 강남 8학군, 이거 조성된 게 불과 1980년대에요. 그런데 올해, 강남 자사고 입학 정원이 미달났습니다. 고교 내신 등급제가 시행되면서 명문고 수요가 확 꺾인 겁니다. 2025학년도 수능 만점자를 배출했던 서울 세화고는 입학 경쟁률이 0.91 대 1이었고요, 서울 휘문고는 0.67 대 1을 기록했습니다. 지원하기만 하면, 무조건 갈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두 학교 모두 강남 8학군입니다.


▲ 서울 대치동 휘문고등학교의 모습. 강남8학군을 대표하는 학교 중 하나로, 수능 당일 아침에 언론사들이 시험장 풍경을 촬영하는 학교로 유명하다. (출처: 동아일보)



물론 요즘은 '학군'의 의미가 조금 확장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교육청에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행정 기준'입니다. 법도 아닌, 내부 규칙이에요.


우리 집값이 이렇게 불확실한 요소에 목메고 있습니다.




재테크의 기본은 안정성입니다. 미래에도 그 가치가 유지될 거라는 믿음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는 그게 없습니다. 시장의 수요가 다양한 개인들의 수요가 모여서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패션 유행을 타듯, 우리나라 부동산은 그냥 지배적인 수요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내 집값을 이루고 있는 '선호'. 이거 금방 빠질 수 있습니다. 고작 몇 년 뒤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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