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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시대의 부동산

두 번째 조건, 구매력

by 송두칠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A는 요리를 100만큼 잘하는데, 설거지는 20밖에 못 해요. 접시에 기름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수준입니다. B는 요리는 30밖에 못 하지만, 대신 설거지를 90만큼 잘합니다. 아주 뽀득 뽀득 합니다.


만약 두 사람이 각자 개인 플레이를 한다면, 요리와 설거지에 절반의 시간씩을 쏟아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A는 요리를 50만큼 하고, 설거지를 10만큼 해서 60의 값어치를 얻고, B는 요리 15와 설거지 45로 역시 60의 값어치를 얻겠죠. 두 사람의 총합은 12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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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실제로는 보통 내가 다 한다 (출처: 정성호 SNS)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이 각자 잘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합시다. A는 B가 먹을 것까지 요리해주고, B는 A의 몫까지 설거지를 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A는 온전히 요리로 100의 값어치를 낼 것이고, B는 설거지로 90의 값어치를 낼 겁니다. 두 사람의 총합은 190. 팀플을 했더니 70만큼의 값어치가 더 생겼네요.


극단적으로 단순화 한 예시인데요, 바로 이것이 분업화(divsion of labour)이고, 우위(advantage)이고, 특화(specialization)이고, 부가가치의 창출입니다.


자원도 그대로고, 사람도 그대로인데, 사회적으로는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70만큼의 부가가치가 생겼어요. 모두가 더 부유해졌습니다. 경제가 성장한 겁니다.


▲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절대우위론에 기초한 분업화를 주장했다.




경제가 성장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의 지갑 사정이 더 넉넉해졌을 때, 사람들의 구매력(purchasing power)은 올라갑니다.


'아니, 라면 한 봉에 5백원이 넘으면 어떻게 돈 주고 사먹어?'하던 것이 '음, 뭐 먹고 싶으면 2천원 주고도 사먹을 수 있지'하게 됩니다. 당장 주머니에 돈이 많으니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사는 데에 돈을 더 쓸 수 있게 됩니다.


경제학적으로 따지면 '최대 지불용의 금액(WTP; Willingness To Pay)'이 상승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시장가격은 따라 올라갑니다. (인플레이션은 다른 얘기니까 이 부분에서는 우선 논외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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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 지불용의 금액'이 동일하게 변해도 공급곡선의 모양에 따라 가격 변화폭은 다르다. 왼쪽은 일반적인 시장에서의 모습, 오른쪽은 비교적 단기인 부동산 시장에서의 모습이다. 단기에는 부동산의 공급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공급곡선의 기울기는 가팔라지며, 이에 따라 가격의 변화가 크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특히 단기 부동산 시장에서의 효과는 더 두드러집니다. 단기에는 부동산 시장의 공급이 제한되기 때문에 '최대 지불용의 금액'이 오르는 만큼 거의 시장 매매가도 따라 올라갑니다. 굉장히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경우에는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경제 호황기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사례는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은 IT 업계를 중심으로 경제 호황기를 맞았는데요, 이 때 평균 8.9% 수준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있었고, 플로리다의 경우 25.9%까지 치솟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은 북경 지역은 약 30.0%까지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고, 전국적으로도 15.2%라는 높은 수준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보입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요크셔 지역에서의 29.2% 상승을 필두로 전체 평균 14.4%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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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성장이 예상되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그래서인지 동남아 국가들의 부동산 상승세가 눈에 띈다고 한다. (출처: IMF)



그렇다면 경제성장이 주춤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OECD가 2025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1.5%라고 내놓은 상황인데요.


부동산 버블과 장기 경기침체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인 일본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본도 한 때는 정말 잘 나가는 국가였죠.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까지 있었으니까요.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맞기 직전까지 13.6%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보였고, 도쿄권의 경우 무려 68.6% 수준의 급격한 상승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일본 부동산 시장은 간만에 활황인 것 같습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0년 도쿄지역 주택가격을 100이라고 했을 때, 2020년에는 120 수준, 그러니까 약 20% 정도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일본 부동산 시장을 낙관하는 것은 침소봉대라고 봅니다. 2020년 주택가격이 10년 전보다 20%나 올랐다고요?


아니요, 이거 1990년에는 무려 250이었습니다.


도쿄권 주택가격은 아직 전고점의 절반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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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이후 도쿄 지역 부동산 가격을 나타낸 그래프. 파란색이 주택인데, 1990년대 250까지 건드렸다가 지금은 간신히 100 부근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아파트를 나타내는 붉은색 그래프의 가파른 우상향도 눈에 띈다. (출처: AZUKI PARTNERS)




다시 말씀드리지만, 부동산은 누군가가 구매력이 있어야 가격이 오릅니다. 누군가의 지갑이 두둑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값은 떨어집니다. 일본 사례 보셨잖아요.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지금처럼 다들 부동산에 큰 돈을 넣을 수 있는 시대가 계속 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실 지금도 사람들이 그렇게 잘 살고 있지가 않아요. 지금도 우리나라 부동산이 계속해서 신고가를 뚫고 있잖아요? 근데 이거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가 잘 살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거 다 빚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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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나라의 가계대출 증감 추이. 지난달 6조5천억원의 가계빚이 또 늘었는데, 이 중에 6조2천억원이 주담대다. 모든 사람들이 집 때문에 빚을 내고 있는 거다. (출처: 중앙일보)



2025년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총 1,880조입니다.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91.7%로 세계 2위, 평균인 60.3% 대비 1.5배가 넘습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숫자에요.


이 중에서 1,130조가 주담대고요, 330조가 신용대출입니다. 주담대에 신용대출에 엄빠론을 포함한 지인찬스까지 더해 소위 '영끌'로 '똘똘한 한 채'를 장만하는 작금의 분위기를 보면, 사실상 대부분의 가계부채가 부동산 매매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요, '빚도 능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아요. 은행에서 아무나한테 큰돈을 막 빌려주지는 않죠. 은행은 충분히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대출 승인을 해줬을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이해하면 되겠네요. 은행에서는 최소한 1,880조 이상을 우리 가계에서 더 벌어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요. 저 정도는 충분히 갚을 능력이 된다고요. 왜냐면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할 거고, 경제는 성장할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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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외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어두운 미래를 점친다. (출처: 대한상공회의소)



자, 근데 이제 그게 안 됩니다. 이게 두 번째 이유에요. 우리는 이미 고속성장기를 진작 끝낸 사회입니다.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예측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나라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소위 '뉴노멀 시대'입니다.


쉽게 말해서, 앞으로 미래의 수요자들은 탄탄한 자금력을 갖추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고요, 미래의 수요자들에게는 은행이 지금처럼 많은 돈을 잘 안 빌려줄 거라는 얘기입니다. 왜냐면 '미래의 미래'는 '현재의 미래'보다 성장률이 더 낮을 테니까요. 레버리지를 할 수 있는 미래소득 성장률이 지금보다 낮아질 테니까요.


더 극단적으로 말해볼까요. '대한민국 고점론' 얘기입니다. 다들 아시는 얘기일 테니 한 문장으로 말할게요. 출생률 0.7명인 국가는 결코 경제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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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인구가 감소하는 사회의 총생산량은 필연적으로 감소한다. 사진은 인구 변화에 따른 경제 성장을 설명하는 모델인 솔로우 모형(The Solow Model)의 그래프 중 하나. (출처: 위키백과)



결론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위해서는 자금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거, 이제 장담 못합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요.




물론 미래에 대한 예측은 틀릴 수 있습니다. 그게 예측이죠. 늘 맞기만 하면 그게 신점이지 어디 예측입니까.


다만, 백 번 양보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미래가 불확정적이라는 겁니다. 이미 고점을 찍었다는 분석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지배적일 정도로요.


그런데 우리, 지난번에 한번 짚지 않았던가요. 재테크 수단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바로 미래에도 가치가 유지될 거라는 믿음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매력을 크게 떨어트립니다. 그 불확실성이 크다면 말 다 했죠 뭐.




인구 감소는 단순히 구매력 하락만으로 대강 갈음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훨씬 더 많은 얘기가 필요한 결정적인 변화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요, 우선 이번편은 '구매력 하락'에 대한 얘기로 이만 마무리를 하고요, 인구 하락에 따른 부작용들은 또 다른 편에서 보기로 하고요, 다음편에서는 그 직접적인 결과인 '소비자가 증발하는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송두칠 doo7@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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