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의 속뜻
▲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출처: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이 기습 발표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습 발표입니다. 무언가 대책이 있을 거라는 예상들은 했지만, 취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당장 내일부터' 적용되는 '고강도 규제'를 시행할 거라는 예측을 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당장 쏟아지는 핵심 내용들만 봐도 정말 임팩트가 강합니다. '6억원 초과 주담대 금지'부터 '다주택자 대출 전면 금지'까지. 저는 제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누군가는 '금융실명제' 얘기까지 하더라고요. 거의 그 정도의 기습 발표고, 그 정도로 메가톤급이라고요.
사실 제가 기획했던 <부동산 종말시대>의 첫 화는 이런 내용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다루지 않을 수가 없는 내용이라 급히 구성을 바꿨습니다. 이거, 진짜 제대로거든요.
이번 정책은 우리 부동산 시장의 핵심을 제대로 짚은 정책이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행간에 담고 있는 정책이라고 봅니다.
이번 정부가 부동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6.27 부동산 대책이라고 불리는 이번 정책의 주요 내용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이번 정책은 공식적으로 '부동산 대책'이 아닙니다. '가계부채 관리방안'입니다. 공식 명칭은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고요, 그래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가 아니라 금융권 대출을 소관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했습니다.
▲ 6.27.(금)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소위 '6.2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
보통 부동산 관련 정책은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공급 확대 정책. 둘째, 세금 부과 정책. 셋째, 대출 규제 정책. 이번 대책은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발표된 내용에는 아파트를 더 짓겠다는 등의 얘기가 없죠. 애초에 이건 금융위원회 소관도 아닙니다.
즉, 이번 정책은 어디까지나 '대출 규제'이고요, 그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주택구입목적 주담대 최대한도 신설: 6억원 초과 대출 전면 금지
다주택자 주담대 전면 금지: LTV 0%
소유권 이전부 전세대출 전면 금지
주택 구입시 전입의무 전면 부과
디딤돌 및 버팀목 한도 최대 25% 축소
신용대출 한도 최대 50% 축소
대출만기 최대기간 신설: 30년 초과 대출 전면 금지
다시 봐도 정말 미쳤네요. 핵심을 기가 막히게 찌르는 규제들입니다. 무릎을 몇 번을 쳤나 모르겠네요.
하나 하나 살펴봅시다.
먼저 주담대 최대한도가 6억으로 정해졌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총량을 제한했다(cap)고 표현하는데요, 이거 소위 '똘똘한 한 채'를 정밀타격하는 정책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여러 부동산 대책들을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똘똘한 한 채' 전략은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요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위 '상급지'라고 불리는 입지에 있는 좋은 아파트 한 채를 사는 전략인데요, 아무래도 '상급지'라는 곳이 워낙 물량이 제한적이다보니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가격이 많이 오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최근 젊은층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맞벌이 부부가 그간 모은 자산에 더해서 대출을 최대 한도까지 끌어모아, 자신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집을 사는 방식은 이제 보통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게 안 통합니다.
▲ 영끌족으로 인한 가계대출 증가 관련 보도(출처: 중앙일보)
예를 들어, 합산 연봉 2억인 부부가 50억짜리 아파트를 산다 칩시다. 그동안에는 주담대로 40억을 받고(LTV 80%), 4억을 신용대출 받아서(연소득 200%), 그간 모은 6억 만으로도 일단 구입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44억 대출에 따른 원리금 상환이 살인적이었겠지만,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믿고 일종의 재테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배팅이죠.
하지만 이제 40억 주담대가 불가능해졌습니다. 최대 6억이에요. 그러면 이 부부는 50억짜리 아파트는 꿈도 못 꾸게 됩니다. 그간 모은 돈 6억에, 주담대 6억에, 신용대출 4억으로 간신히 18억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겠네요.
아니지, 18억도 안 되네요. 이 사람들은 이제 신용대출도 4억까지 안 나오네요. 연소득이 2억이면, 이제 신용대출도 2억까지만 내주겠다잖아요. 그렇다면 이 부부는 이제 아무리 영끌을 해도 최대 16억짜리 주택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좌)와 아크로리버파크(우) 전경. 래미안원베일리는 2024년에 국내 최초로 평당 2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출처: 뉴스1)
이렇게 되면 50억짜리 아파트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실제 그만한 자산이 수중에 있는 사람들 뿐입니다. 절대적으로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을 고려하면, 고가 아파트 값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제인 겁니다.
그럼 중저가 아파트 시장은 어떨까요?
무엇보다도 고가 아파트 값이 잡히면, 그 밑도 따라갈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간 우리 부동산 시장은 고가 아파트들이 선제적으로 치고나가면 그 이후에 2급지 3급지들이 따라가는 모습이었거든요.
조금 다른 측면에서도 살펴볼까요. 방금 봤던 부부는 연소득이 2억원인 고소득자였죠. 그런데 많은 서민들은 디딤돌 대출이나 버팀목 대출로 주택값을 충당합니다. 이 수요가 중저가 아파트 시장의 수요죠.
이제 그것들마저 축소됐습니다. 예를 들어, 청년 버팀목 대출은 2억에서 1억 5천만원으로 5천만원이나 줄었고요, 신생아 디딤돌 대출은 5억에서 4억으로 1억이나 줄었습니다.
▲ 6.27.(금)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중 일부
단기적으로는 주택 수요자들의 아우성이 클 겁니다. 당장의 주택 자금이 곤란해졌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집값이 잡힐 거라고 봅니다. 유동성이 줄어들어서 실제 지불 가능한 최대 금액(WTP)가 낮아지면, 거래량도 줄어들지만 실제 매매가(또는 전세가)도 내려갑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쨌든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들도 쌓일 테니까요. 급해지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부동산 시장에서 '급해지는 사람'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장기적으로 중저가 아파트를 구입하는 서민층의 부담이 경감될 거라는 얘기입니다. 고가 아파트 시장만큼은 아니겠지만, 중저가 아파트도 가격이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출을 왕창 껴서 고가아파트를 매수하려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중저가 아파트 수요자로 전환되어야 하니까요. 즉, 공급은 정해져있는데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이건 중저가 아파트 가격을 높일 수 있는 요소입니다.
요약하면, 가격을 올릴만한 요소도 있고, 낮출만한 요소도 있는데, 둘 중 어느 영향이 더 클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다만, 6억까지는 무조건 대출이 되니까 중저가 아파트 값이 오를 거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DSR이니 뭐니 하는 기존 규제들은 다 그대로에요. 당초에도 6억을 못 빌리던 사람은 앞으로도 6억을 못 빌릴 거라는 겁니다. 6억을 덜썩 덜썩 무조건 대출해준다는 말이 아니에요.)
여기에 하나 더. 대출 만기 기한도 30년으로 제한됐죠. 이것도 생각보다 굉장히 큰 효과를 가져옵니다.
만약 6억원을 5% 금리에 30년 만기로 대출했다고 칩시다. 이 경우,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대략 322만원입니다. 40년 만기라면 289만원씩, 50년 만기라면 272만원씩이에요.
사실 1개월 단위로 보면 끽해야 50만원 정도의 차이에요. 그렇지만 평생 갚아야 하는 원리금을 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6억원을 5% 금리에 30년 만기로 대출한 경우, 평생 상환해야 하는 총액은 약 11억 6천만원입니다. 6억을 빌렸는데, 이자로만 5억 6천만원이 더 나간다고요. 40년 만기라면 13억 9천만원이고요, 50년 만기는 16억 3천만원입니다. 가계는 4억 7천만원의 대출 부담을 더 짊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 앞으로 부동산 시장에서는 "묻고 더블로 가"다간 정말 묻힐지도 모른다.
여기에 아까 살펴본 정책대출 최대 한도 금액 축소까지. 금융당국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집 사는 데 빚 좀 덜 지라는 겁니다.
이제 자기네들이 집값을 잡을 거라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어요. 여하튼 빚져서 배팅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제 부동산으로 그렇게 할 시대는 지났다는 겁니다.
부동산을 재테크로 놀리는 사람들은 더욱 대놓고 표적으로 삼았죠.
주된 목표는 갭투자 차단입니다.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전세보증금으로 집값을 치를 때 사용하는 전세대출을 원천적으로 전면 금지했습니다. '세끼고 매매'는 여전히 가능합니다만 이렇게 되면 갭투자 하려는 사람들이 매수할 수 있는 매물 자체가 극단적으로 제한되죠.
다주택자 주담대 전면 금지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세상에, LTV가 0%에요. 부동산으로 재테크하는 너희들에게는 돈을 아예 한 푼도 빌려줄 수 없다는 거에요. 이보다 강력한 대출제한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한시적 2주택자 규정을 악용하려는 시도도 딱 막아섰습니다. 무조건 6개월 안에 기존 주택을 팔고 다시 1주택자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동산 매매 해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6개월 안에 집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압박인지요. 어쩌면 제 값을 다 못 받고 팔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번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숨겨져있더라고요.
공무원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어요. 바로 핵심적인 내용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무 충격적이고 강한 얘기는 반발이 너무 세거든요. 그래서 진짜 중요한 얘기는 본문에 쓰지 않고 별표(*) 당구장(※)으로 어물쩍 넘기곤 합니다.
이번 대책에 대해 금융위원회에서 낸 보도자료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갸웃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번 규제가 적용되는 지역이 '수도권·규제지역'이라는 문구였습니다.
그간 몇 차례의 지정과 해제를 반복하면서 현재 규제지역은 강남3구와 용산구, 딱 이렇게 4곳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찾아봤는데 역시나 이게 전부였습니다.
그렇다면 규제지역은 이미 수도권 내인데, 왜 굳이 '수도권·규제지역'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그 답은 금융위원회 보도자료에 있었습니다.
▲ 6.27.(금)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중 일부. 공무원들은 페이퍼 워킹의 달인들이다.
금융위원회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의 한 부분입니다. '규제지역'이 어디인지를 설명하면서 '현재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용산구가 지정'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현재"입니다. 네, 지금 이렇다고 앞으로도 이러리란 법은 없죠.
풍선효과가 나타난다면, 정부는 지역까지 얼마든 확대할 수 있다는 말을 한 겁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실과 국회 이전으로 부동산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세종지역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6.27 부동산 대책, 아니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의 핵심 내용은 이상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정부가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로 이겁니다. "부동산으로 재테크하지 말아라."
제가 한 가지 더 주목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발표됐다는 겁니다. 이 회의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주재했는데요, 이 사람은 실장급(고공단 가급)입니다. 장관도 아니고, 차관도 아니고, 일선 실무 관료가 발표했다는 겁니다.
▲ 대통령실은 이번 정책을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가, 1시간 뒤에 "부처 현안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추가 입장을 냈다. (출처: 조선일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24차례의 부동산 대책은 대부분 장관급이 발표를 했습니다. 대부분은 국토부장관이 했고요, 경제부총리가 한 적도 있었고, 금융위원장이 한 적도 있었죠.
이번 대책이 차관급도 아닌 실무자급에서 발표되었다는 것은 "부동산으로 재테크하지 말아라"라는 방향은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라, 마땅하고 당연한 정책 방향이라는 신호입니다.
(참고로 이 정도 정책은 대통령실과의 사전 논의 없이는 결코 내놓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막강한 행정 추진력을 자랑하는 대통령의 임기 극초반이면 더욱 그렇죠. 요즘 대통령실 분위기는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이번 정책이 대통령실 컨트롤 밖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책이 굴러가는 과정을 전혀 모른다는 얘기에요.)
우리 윗세대들은 대출을 극히 조심했습니다. 남의 돈 빌리는 거 아니라고 했죠. 그래서 부동산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월세 단칸방부터 시작해서, 야금야금 집 크기를 키워나갔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부동산 시장에서는 대출 없이 집 사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똘똘한 한 채'부터 이러한 경향은 훨씬 심해졌죠. 레버리지로 부동산을 장만해야 이득이 되는 시대가 된 겁니다. 부동산이 재테크인 시대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있는 돈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없는 돈은 빌려서 만들어내니까 그 상승폭은 어마무시했죠.
▲ "강남·서초 아파트, 매매거래 3건 중 1건 신고가" (출처: 아주경제)
무주택자들의 한숨은 깊어졌지만, 사실 내심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빚내서 사면 되니까요. 빚내서 사면, 팔 때 더 이득이니까요. 집값은 무조건 오르니까요. 부동산은 재테크니까요.
이제 그거 그만하자는 겁니다. 갭투자니 빚잔치니 하지 말라는 겁니다. 집은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번 대책은 그겁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이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입니다. 만약 이번 정책이 의도대로 된다면, 중장기적으로 아파트 가격은 안정화될 거고, 가계 대출 부담은 꽤 줄어들 수 있습니다. 즉, '사다리 걷어차기'가 아니라 '가계 부담 경감'입니다.
그나저나 브런치북 1화가 이런 내용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글을 쓰는 이상, 어제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도저히 다루지 않을 수가 없었네요. 다룰 가치가 차고 넘쳤던 발표였습니다.
다음 화부터는 당초 예정했던 호흡대로 연재를 진행해보겠습니다.
송두칠 doo7@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