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이 꼭 있어야 하나요?
신혼 초, 같은 지역에 사는 시부모님 댁에 자주 들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가서 저녁을 먹고 놀다가 왔다.
“아버님~ 어머님~ 저희 왔어요. 잘 지내셨죠?”
“그래~ 별일 없지?”
“별일 없지~ 일주일 전에 봤는데 별일 있을 게 뭐 있어요? ㅎㅎ"
“네~ 잘 지냈어요.” ^^
시댁에 도착하면 아버님이나 어머님의 첫인사는 항상 "그래~ 별일 없지?"셨다.
어머님께서 만들어주신 맛있는 저녁을 먹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나면 디저트를 먹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님의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반찬들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형님과 아주버님도 함께 와서 저녁을 먹었던 날, 둘이 있을 때 형님이 물었다.
“동서, 어머님이 동서한테는 그 말 안 하셔?”
“무슨 말이요?”
“별일 없느냐는 말.”
“별일 없냐고요? 아~ 만날 때 인사로 이야기하시죠. 잘 지냈냐고 물으시는 거잖아요. “
“아니야~. 그거, 좋은 소식 없냐는 뜻이야.”
“네?”
별일 없냐고 만날 때마다 말씀하시는데 그게 그 말이었다고? 나는 그냥 잘 지냈냐고 물으시는 건 줄 알았는데 그 속에 그런 숨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냥 안부인사라고 그런 뜻은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형님의 말을 듣고 나니 그 후부턴 어머님의 별일 없느냐는 인사가 조금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그게 그런 뜻인데 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나 보다고 이야기하자 "에이~ 아니야."라고 했다.
그래, 너는 아니라고 하겠지. 그런데 너는 아들이지만 나는 며느리라서 눈치가 없으면 안 된단다.
신혼을 즐기고 싶다던 남편이었다. 우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신혼을 마음껏 즐겼고 별일 없느냐는 인사를 매주 들었고 별일은 없었다. 웃으며 별일 없다고 대답하던 나의 웃음이 조금씩 옅어져 갈 때쯤 모두가 기다리던 별일이 생겼다. 하지만 “별일 없지?”라는 인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인사를 하신다. 별일은 정말로 그냥 안부인사였다. 아마 형님도 나처럼 생각하다가 먼저 결혼한 누군가에게 그게 좋은 소식이 있는지 물으시는 거라고 들었을 테지.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나에게 함께 눈치를 챙기자며 알려주었을 것이다. 생각해 준 형님의 마음이 참 고마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는 별일이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사촌도련님의 결혼식에서 만난 먼 친척 어른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집 행사를 가도 마찬가지다.)
"아이고, 많이 컸네. 동생 한 명 있으면 좋을 텐데."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다정하신 여사님들께서 반찬을 더 갖다 주시며
"아이고 잘 생겼네. 엄마한테 예쁜 동생 하나 낳아달라고 해~"
그냥 하는 인사치레의 말이다. 먼 친척 어른은 앞으로 결혼식과 같은 큰 행사가 있어야 다시 뵐 테고, 식당의 여사님은 밥을 먹으러 다시 가더라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실 게 분명하다. 주위에 다른 엄마들에게 들어보면 아이가 둘이어도 다를 게 없었다. 딸이 둘이면 "든든한 아들 하나는 있어야지." 아들이 둘이면 "요즘에 딸 없으면 안 돼." 하하하. 결론을 내렸다. 아들 둘, 딸 둘이 있어야 그 이야기는 끝이 난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아들 둘, 딸 둘이 있으신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계신다면 경험담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산에 갔다가 곤돌라를 탔다. 우리 가족 셋, 그리고 친구사이로 보이는 50대 초반 정도의 두 부부가 함께 탔다. 이든이에게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를 물으시고 간식도 주시며 살갑게 대해주셨다. 그리고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이 하나예요?"
"네."
"더 늦기 전에 빨리 하나 더 낳아요. 내가 아이가 하나라서 그래. 나는 다시 돌아가면 애 많이 낳을 거야. 하나라서 좋은 점도 많은데 애가 외로워. 아직 젊으니까 더 낳아요."
남편과 이따금 이야기했었다. 이든이의 동생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이 딱 좋은데. 이든이를 생각하면 동생이 있는 것이 좋은가? (아이가 하나라 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이해 바란다.) 그러기에 이든이는 동생을 몹시도 원하지 않았다. 사실 이든이가 원했다면 동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하나라서 하나가 좋은 거고 이든이가 아들이라서 아들이 좋다. 아이가 하나인데 셋, 넷을 간절하게 원하고 내 아이가 아들인데 딸의 좋은 점을 자꾸 생각하면 어디 스트레스받아서 살 수 있겠는가.
임신을 했다고 주변에 알렸을 때,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넌 딸이 어울린다며 딸일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양쪽집에 모두 먼저 태어난 아들이 있었기에 딸이면 엄청 사랑받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딸이면 거의 직장을 그만두고 쫓아다닐 기세였다. 딸과 예쁜 원피스를 함께 입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성별을 알 수 있는 주수쯤에 남편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갔다. 초콜릿우유를 마시면 아이가 활발하게 잘 움직여서 알기 쉬울 거라는 말을 전해 듣고 편의점에서 초콜릿우유도 하나 사 마셨다. 결과는 너무도 선명하게 그것이 보였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아이에게 괜히 미안했다. 맹세코 아이의 성별을 콕 찍어서 바랬던 적은 없었다. 나는 딸이든 아들이든 중요하지 않고 이든이가 우리에게 와준 게 고마운 건데 내가 그동안 잠깐씩 했던 생각들을 이든이가 몰랐기를 바랐다.
아들은 아들이라서 좋고 딸은 딸이라서 좋다. 누가 더 좋고 누가 더 안 좋은 건 없다. 둘 다 좋은 점만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목욕탕에 갈 때와 수영장에 갈 때이다. 이든이가 어릴 때부터 형아는 남탕에 가는 거라며 아빠와 함께 남탕에 갔다. 생각만큼 남자들은 목욕탕에 오래 있지 못했지만 그 시간만큼은 자유시간이다. 마음껏 여유롭게 목욕탕을 즐길 수 있다.
결혼을 하면 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또 하지 않은 대로 좋은 점이 있을 테고, 아이가 하나면 하나라서, 둘이면 둘이라서, 또 셋이면 셋이라서 좋은 점이 있다. 부부 둘이서만 산다면 또 그만의 좋은 점이 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언제 결혼하느냐고,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고, 하나를 낳고 나면 둘째는 언제 낳느냐고, 둘을 낳고 나서도 감사한 관심과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예전에 남편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일에 왜 그렇게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냥 하는 말들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웃으며 넘기라고 이야기해 주어도(남편에게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정작 나도 어떤 말들은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결혼도, 아이도, 둘째도 셋째도 본인들이 알아서 하는 일이지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던 남편이었다. 곤돌라를 내리며 남편이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제 그냥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생각되고 뭐 네~ 하고 웃으며 넘어가도 될 것 같아."
"그래~ 아까 저분은 본인도 한 명인데 진짜 그런 마음이 드셔서 그런 거고 뭐 다른 친척 어른들도 얼마나 자주 본다고. 언제 또 뵐지도 모르는데 그냥 네~ 하고 웃어넘기고 실제 마음도 그러면 되지.^^“
민족 대명절 설이 다가온다. 모든 딸과 아들, 며느리와 사위가 평안하고 따뜻한 명절을 보내기를. 사랑과 관심이 오해 없이 모두에게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