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이던 것들이 불편해지다-1
1. 여유로운 사람들
한국에서의 삶은 항상 쫓기 듯한 일상이었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한다.
버스를 타기 전에는 버스카드가 손에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에는 손에 돈이나 카드를 미리 들고 있어야 한다.
커피를 시킬 때에도 미리 무엇을 시킬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바로 주문해야 한다.
캐나다에 와서 놀란 점은 사람들이 정말 여유롭다는 것이다.
버스 운전을 하다 말고 팀홀튼에 커피를 사러 가는 버스기사님과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기다려주는 승객들.
버스를 타서 기사님과 수다를 떨며 천천히 버스비를 꺼내는 승객들.
마트에서 뒤에 사람이 기다려도 수다를 떨며 천천히 동전을 세는 손님과 캐셔.
이런 여유로움이 가능한 캐나다가 좋았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캐나다가 좋았다.
그런데 이런 게 가끔은 짜증 난다.
대중교통으로 어디를 가려고 해도 무조건 시간을 넉넉잡아야 한다.
캐네디언들이 입에 달고 사는
"TTC always has problems." 때문이다.
버스에 커피를 들고 타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버스기사님은 이 사람이 안전하게 자리를 잡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준다.
다른 손님들도 빨리 가라고 기사님을 보채지 않는다.
나만 마음이 급해져서 얼른 이 사람이 앉길 마음으로 바란다.
물건을 사고 캐셔에게 가서 구매를 하려고 하면 앞에 사람과 수다를 떠는 캐셔 덕분에
징징대는 아이들과 한참을 서서 기다리는 건 일상이 되었다.
빨리 계산하고 나가야 할 때에는 찬 난감하다.
2. 무상의료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교수님이 준 과제가 있었다.
무상의료와 유상의료 중 나는 무엇을 지지하는가.
그때 나는 무상의료를 지지하는 글을 썼었다.
그러면서 캐나다의 의료와 한국의 의료를 비교했었다.
한국은 환자에게 돈을 받기 때문에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본다.
그래서 과잉진료도 생기는 것이고 약물 오남용이 생기는 것이다.
반면 캐나다는 모든 의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정말 이 사람이 아픈 것에 집중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학생으로 왔을 때 대상포진에 걸려 항생제를 먹어야 할 때가 있었다.
다행히 유학생 보험이 있어서 돈을 100% 내지는 않았지만
일단 워크인(Walk-In)에 가서 진료비 $50불 정도를 선결제하고
(2014년 기준이다. 지금은 더 비쌀지도 모르겠다.
헬스카드가 있는 사람은 무료이다.)
몇 시간을 기다린 후(2-3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의사를 만나서 의사가 항생제를 일주일치 처방해 줘서
약국에 가서 일주일치를 받고 그 당시 돈으로 $100 냈던 걸로 기억한다.
항생제가 일주일치가 10만 원이라니.
유학생 보험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난다.
이 모든 과정을 무료로 제공받는 자국민들이 부러웠다.
몸이 아플 때면 영주권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더 절실하게 만들어준다.
내 가정의(Family Doctor)가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나의 전반적인 히스토리를 알고 가족이 다 그 의사와 상의하니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오래 살다 보니 병원에 갈 일도 많아진다.
몸이 아픈 것도 있고 아이들이 아픈 것도 있고.
한국에서 몇 년 살다 온 캐네디언 할아버지가 한국의료가 그립다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은 한국의료는 나이키(Nike) 같다고 했다.
"Just Do It"
엑스레이나 피검사 등 필요하면 바로 가서 검사하고 의사도 바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캐나다는 모든 것이 리퍼(Refer)와 기다림의 연속이다.
예를 들어 자궁이 불편한 것 같다고 해보자.
패밀리닥터(Family Doctor, 내 가정의) 혹은 워크인(Walk-In)에 가서 의사와 이야기를 한 후
피검사와 초음파를 할 수 있는 종이(Requisition)를 받는다.
그러면 나는 집에 와서 온라인이나 전화로 피검사할 수 있는 LifeLab이나 Dynacare에 예약하고,
초음파를 검사할 수 있는 곳에 전화해서 예약한다.
초음파 검사하는 곳에 전화를 다 돌려서 가장 빠른 곳으로 예약을 잡는다.
가장 빠른 날도 주로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
예약한 날짜에 가서 검사를 받고 집에 온다.
검사결과는 주로 일주일에서 2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집에 와서 패밀리닥터 오피스에 전화를 해서 안전하게 2주 뒤로 예약을 잡는다.
다음 패밀리 닥터를 만나서 검사결과를 듣는다.
워크인은 의사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큰 문제가 있을 때에 리셉션(오피스 직원분)이 전화를 주고
언제 오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그날 가면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른 의사가 있다.
이 의사는 검사결과를 보며 이야기를 해준다.
이 과정들이 주로 한 달에서 3달까지 걸린다.
우리 딸은 다래끼가 나서 6개월 이상 고생 중이다.
아직도 아프다고 말하는데도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감기로 병원에 가면 의사는 어이없어한다.
아이가 한 달 동안 기침감기로 힘들어해도 의사는 청진기로 들어보고
아이 면역력을 길러서 이겨내야 한다며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폐렴으로 넘어가면 그제야 약을 처방해 준다.
한국인의 마인드로는
더 심해지기 전에 약을 줘서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캐나다 의사들은 사람의 면역력으로 이겨내야 하고 감기는 약으로 낫는 병이 아니라고 한다.
이럴 때는 정말 한국이 그립다.
응급실은 더 심하다.
무료인 만큼 대기자도 많다.
기다리는 시간이 기본이 9시간 이상이다.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첫째 딸의 친구가 구름사다리(Monkey Bar)를 하다가 떨어졌다.
머리를 다쳤는지 살짝 의식을 잃었다가 몇 초 후에는 토를 하고
팔이 아프다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워크인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금방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패밀리 닥터는 예약제도라 당일에 만날 수 없다.)
의사는 두 가지 옵션을 주었다.
1. 엑스레이(X-Ray) 찍을 수 있게 Requisition을 줄 테니 예약 후 엑스레이 찍고 다시 와라.
2. 응급실을 가라.
아이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손목은 부러졌는지 퉁퉁 부어있어서 응급실로 달렸다.
식키즈(SickKids)라는 다운타운 어린이전문 종합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달렸다.
도착하고 생각보다 진행이 빨랐다.
접수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는 단계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고
간호사 분들이 친절하고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의사가 엑스레이를 보고 팔목과 팔꿈치가 부려져서 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기다리면 부르겠다고 말을 하고 그 후로는 깜깜무소식이다.
아이는 아프다고 울고불고 난리여서 진통제를 몇 번 주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아이는 드디어 깁스를 하고
병원에 들어간 지 15시간 만에 병원을 나왔다고 한다.
학교가 끝난 후 다친 상황이라 오후에 병원에 가고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날이 밝아 집에 와서
아이는 진통제를 먹고, 엄마는 긴장이 풀려 하루 종일 기절하듯 잠을 잤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나를 만나서 캐나다 의료에 대해서 말만 들어봤는데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나니 정말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다며 하소연을 했다.
한 엄마는 유학생으로 와서 아이들 3명을 키우고 있는 기러기맘이다.
'설마 아픈 일이 생기겠어.'
하는 생각으로 유학생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갑자기 심장이 너무 아프다고 해서
응급실에 가고 응급실에서 급하게 MRI, 초음파, 피검사 모든 검사를 다 했고
몇 시간을 기다린 후 의사를 만났는데 결과는 이상 무.
아무 이상 없으니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집으로 병원사용 청구서가 도착했다.
모든 검사비용과 간호사 만남비용, 의사 만남비용이 다 청구돼서
천만 원 가까운 금액이 청구되었다.
그리고,
의료는 무상이어도 약값은 비싸다.
좋은 직장에 다녀서 베네핏이 좋아 약값을 보험적용받으면 무료이거나 저렴하다.
그러나 나처럼 보험이 없으면 약값은 정말 비싸다.
지난번 몸이 안 좋아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며 이약, 저 약 써보고
퇴원 후 먹으라는 약을 사고..
한 달 동안 약값만 100만 원 넘게 지불했었다.
캐나다에서는 의료는 무상이지만 아프면 안 된다.
혹시라도 캐나다에 오게 된다면 여행자 보험, 유학생 보험 등 아플 상황에 항상 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