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 기능 보존 주사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하면, 난소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그런 난소의 기능을 보존해 주는 주사를 맞는다. 채혈 검사를 통해 난소의 기능을 확인하고, 항암 차시에 따라 주사를 몇 회 맞을지 결정한다.
나는 4번 주사를 맞았다. 누워서 뱃살(?)에 맞는 건데, 아플 때라 그런지 뱃살이 많이 없어서 주사 맞는 게 불편하고 아팠던 것 같다. (제 엉덩이에는 많은데….)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맞았는데 혹처럼 딱딱해지고 가려움증이 생겨서 집에서는 얼음찜질을 해줬다. 뭉쳤던 기억이 있어서 안 아프게 천천히 놔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엄살이 심한 환자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주사를 놔주시던 간호사분께서 달래주시다가 내 몸에 타투를 보시더니 웃으시며 "에이, 타투도 하셨으면서 이건 하나도 안 아파요."라고 하셨다. 쳇
항암 치료를 받고 생리를 뚝 안 하게 되는 게 아니었다. 적은 양이지만 생리를 했고 그때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때 썼던 글에 ‘꼬챙이로 척추 마디마디를 찌르고, 몸 곳곳마다 접히는 기분‘이라고 썼다. 생각하면 몸이 저릿해질 만큼 끔찍한 고통이었다. 어떤 게 더 아팠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진부하게도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주사를 맞게 되면 '갱년기 증상'이라는 걸 접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에게 더없이 죄송해진다. 이런 것들을 혼자 겪었구나 싶어 진다. 5분 전에는 더워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가 5분 후에는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오한이 느껴진다. 머리카락이 없으니 두피에서 흐르는 땀이 맺혀 있을 곳이 없으니 그저 주르륵하고 땀이 흐른다. 잘 때는 베개에 항상 수건을 올려놓고, 손이 닿는 곳에 핸디 선풍기를 여러 개 두고 잤다. 에어컨을 틀고 잤다가 이불을 돌돌돌 말아 올렸다가를 반복하고 땀을 식힌다고 선풍기를 얼굴에 갖다 댔다가 돌뜸을 찾기도 했다. 감정도 비슷했다. 짜증이 솟구쳤다가 슬펐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꾹꾹 참아댔다. 혼자 숨죽이고 우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항암 주사를 맞고, 다시 맞기 직전을 휴지기(?)라고 부르는데, 그때 가장 쌩쌩한 컨디션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시기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거나 활동적인 일들을 한다. 난 이 시기에 내 집으로 도망쳤다. 아픈 나를 하염없이 보고 있는 부모님께 며칠이라도 휴가를 드리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가 숨을 쉬고 싶었다. 마음껏 울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집에 돌아오면 편하면서도 참 힘들었다. 그때 당시에 헤어진 사람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귀신이랑 한 집에 사는 기분이 들었고, 곳곳에 물들어 있는 흔적들이 괴로웠다. 그래서 이사를 갔는데, 돌이켜 보면 그렇게 유목민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사 관련 이야기는 논외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풀어보려고 한다.
실제로 곧 산부인과 검진을 앞두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채혈검사를 통해서 난소 기능을 점검한다. 이전 글에도 설명한 적이 있지만, 나는 항암 전에도 난소의 기능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 그때 당시에 자연 임신 가능성도 높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년 검사에서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담당 교수님은 이제 다음에 올 때는 난자 동결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과 낳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비혼주의에 출산 계획이 없더라도 그런 몸이라고 판정받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니깐 말이다. 아무튼 그때 당시에 쓴 글을 첨부한다. 조금 격정적인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걱정은 떨어진 수치로 인한 호르몬 치료를 하게 되는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것들에 산정특례가 끝나가는 상황에 비용문제까지 머리가 좀 아프기 시작한다.
흉선암_항암 치료 후 세브란스 산부인과 검진 (난소 기능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