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6일 토요일, 오늘은 안양천 신정교 아래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마라톤 출발 시간은 9시. 3시간 전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서 온도를 재보니 10도입니다. 오후에는 21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추위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반팔 티셔츠에 얇은 잠바를 걸치고 나왔습니다. 잠바를 입은 채로 뛰다 더우면 벗어야겠습니다.
지난 한 달간은 거의 매일 6km 정도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30분 정도씩 매일 헬스를 하고 근력을 키웠습니다. 다리 근육과 허리, 어깨 근력 운동을 했는데 그런 노력이 이번 마라톤에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궁금합니다. 지난번 달릴 때보다는 좀 더 편해지고 빨라지겠지요.
2호선 신도림 역을 거쳐 도림천 역에 도착하니 8시 10분입니다. 온도는 13도로 올랐습니다. 그래도 다리 밑으로 내려가니 공기가 쌀쌀합니다. 금방이라도 겨울바람이 불 것 같습니다. 하늘은 유독 파랗게 보입니다. 평소에 태극기의 파란색이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했는데 바로 저 하늘의 푸른 색깔이 바로 그런 파란색입니다. 멀리 안양천을 따라 늘어서 있는 나무들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여름 기운이 짙게 남아 있습니다.
신정교 아래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 안내원에게 참가자 숫자를 물었습니다. 1,5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이고 다른 마라톤 대회에 비하면 소규모입니다. 간단한 식전 행사를 마치고 먼저 10km 참가자들이 출발선으로 나갔습니다. 10km 1진이 먼저 출발했습니다. 9시 현재 기온은 14도, 달리는 동안에 많이 올라봐야 16도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5분 정도 있다 또 2진이 출발했습니다.
5km 참가자들이 출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회자는 오늘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상세한 안내를 합니다. 힘들면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쉬엄쉬엄 뛰라고 합니다. 저는 5km만 11번째로 뛰니 여기서는 고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5km를 몇 번이나 뛸까, 몇 번 뛰고 10Km로 올라갈까? 아니면 평균 몇 차례나 뛰고 마라톤을 중단할까? 궁금합니다. 땅! 출발신호가 울렸습니다.
뛰기 시작하면서 깜빡 잊고 나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혈압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잊었습니다. 마라톤을 뛰면 혈압이 올라가고 날씨가 서늘해도 혈압이 올라가는데 오늘은 두 가지가 겹치니 오랫동안 먹지 않았던 혈압약을 한 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깜빡하다니.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습니다.
혈압을 떨어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달리면서 왼발, 왼발 하면서 숨을 천천히 마십니다. 또 왼발, 왼발 하면서 숨을 내쉬고 왼발, 왼발 하면서 숨을 들이마십니다. 이렇게 두 발자국 뛰면서 숨을 내쉬고 두 발자국 뛰면서 숨을 들이마시기를 반복합니다. 한참을 가다 생각해 보니 좀 더 느리게 숨을 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 발자국 뛰고 숨을 마시고 네 발자국 뛰고 숨을 내쉽니다. 이런 호흡을 계속합니다. 최대한 깊이 숨을 쉬어 온몸에 시원하고 맑은 산소가 깊숙이 퍼지도록 합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하고 개운해졌습니다.
왼편으로 안양천 개울을 따라 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습니다. 시원한 가을 공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옵니다. 참가자들이 많지 않으니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달립니다. 먼 곳을 바라보며 달리던 자세를 바꿔 고개를 숙이고 도로 위에 그어진 하얀 선을 바라보며 달립니다. 이렇게 달리면 속도감이 느껴지고 지루하지 않아 좋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벌써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참가자들이 보입니다. 시계를 보니 출발하고 11분 27초 지났습니다. 또 조금 있으니 서양인 참가자가 힘을 써가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사람인가 지나가고 이제는 여성 주자가 달려옵니다. 13분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환점은 어디지? 아직도 한참을 달려야 하는 모양입니다. 달리면서 반환점이나 식수 주는 곳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안내원이 길을 막아서서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곳이 반환점인 모양입니다. 출발한 지 17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기록은 17 x 2 = 34분 정도가 될까?
반환점을 도니 식수대가 보입니다. 거기서 물을 한 컵 집어 마시고 또 뛰기 시작합니다. 너무 천천히 뛰었는지 뒤에서 따라오던 사람들이 저를 추월해 지나갑니다. 그 사람들은 팀을 이루며 달리니 속도가 빠릅니다. 쫓아가 추월하고 싶으나 발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오목교 300m 전까지 왔습니다. 그럼 오목교에서 신정교까지는 얼마나 될까? 1km쯤 될까? 그렇다고 한다면, 앞으로 1,300m를 더 달려야 합니다. 많이 달린 것 같은데 전체 코스의 1/5 넘게 남았습니다.
달리다 보니 갑자기 안내요원들이 또 나타나 길을 막습니다. 그리고 달리는 사람들을 하천 쪽 길로 유도합니다. 이제는 코스가 하천에 바짝 붙어 있습니다. 멀리 신정교가 보입니다. 그럼 공기는 더 좋아지고 더 시원해져서 달리기가 편해지겠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개천 쪽에서 뭔가 불쾌한 냄새가 흘러나옵니다. 멀리 개천에서 포크레인 두 대가 흙을 퍼올리고 있습니다. 준설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퍼올린 흙에서 아주 더러운 시궁창 냄새가 납니다. 흙 색깔도 오염에 찌든 시궁창 흙입니다. 아! 최악입니다.
호흡이고 뭐고 속도를 최대한 올려서 뛰어 나갑니다. 가능한 한 개천에서 멀리 떨어져서 도망치듯이 달립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습니다. 숨을 깊이 쉴 수 없으니 얕은 호흡이 계속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앞으로 앞으로 박차고 나갑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머리가 잠시 몽롱해졌습니다. 곧바로 속도를 늦추고 다시 심호흡을 하면서 달립니다. 하나 둘, 하나 둘 규칙적으로 깊은 호흡을 하면서 달리니, 머리가 다시 맑아집니다. 다리가 가벼워졌습니다.
멀리 오른 쪽으로 둥그스럼하게 하천 한 가운데 땅을 비집고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이 분홍빛의 코스모스입니다. 중간 중간에 하얀 코스모스, 붉은 코스모스가 하늘거립니다. 파란 가을 하늘과 어울러 그 색깔이 더욱더 아름답습니다. 코스모스를 계속 더 바라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달리는 속도에 맞추어 코스모스는 물결을 따라 뒤로 뒤로 사라져갑니다.
어쨌든 시궁창 냄새와는 좀 멀어졌으니 다시 천천히 속도를 내봅니다. 추월해서 달려간 사람들을 따라잡아야겠습니다. 멀리 그 사람들이 보입니다. 더 멀리 신정교 다리 밑에 대회장이 보입니다. 골인 아치가 보이는데 하필이면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빙 둘러 들어갑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나 이제는 속도를 낼 순간입니다. 옆에서 달리던 사람도 "이제 마지막 스퍼트다." 외칩니다. 그런데 제 다리는 헛바퀴를 도는지 빨라지지 않습니다.
약 400m쯤 앞에서 결승 골인점을 향해서 힘껏 내달립니다. 두 손바닥을 쭉 펴고 바람을 가르듯이 힘을 다해 내달립니다. 앞에서 팀을 이루며 달리는 사람들을 추월했습니다. 급격히 혈압이 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리하면 안 되는데 골인지점이 바로 앞입니다. 33분 24초. 드디어 골인했습니다. 그동안 골인은 36분 정도에 했는데 오늘은 마지막 구간에서 잘 달렸습니다. 1,000미터쯤 남은 지점에서는 하천의 시궁창 냄새를 피하느라 또 잘 달렸습니다.
시간은 오전 9시 45분. 간식을 받고 대회 메달을 받았습니다. 메달 모양은 특이합니다. 둥그렇지 않은데 한쪽을 보면 마치 왕관 비슷한 모양으로, 월계수 잎이 양쪽에 새겨져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FINISHER(완주자) BRAVO UR RUNNING 5KM 완주 기념 Share Sarangbat(함께하는 사랑밭)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FINISHER는 완주자, BRAVO UR RUNNING는 '당신의 달리기 만세'(?)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표기하지 않고 "당신의 5Km 달리기 완주를 축하합니다."이렇게 써서 주면 좋았을 것인데, 영어를 쓰니 복잡합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준비한 사람들도 거의가 한국인일 텐데 왜 영어를 쓰는 것인지. 불만입니다. 메달의 다른 한쪽은 대회 마스코트가 그려져 있고 'BRAVO UR RUNNING'이라 쓰여있습니다.
그 외에도 빵과 물, 주스, 그리고 조그만 젤리 몇 개를 받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한쪽에 주저앉아 물과 주스, 빵을 먹고 젤리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기념사진 찍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거기서는 자기 이름표를 기계에 갖다 대면 이름과 기록이 나오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도록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이 10km 참가자들인데, 남자들의 완주 기록은 대개 53분이나 55분 정도입니다. 빠른 경우 50분이나 그 앞의 기록도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1시간 5분, 1시간 10분 등 1시간이 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10km를 달리게 되면 1시간은 계속 달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귀가를 하려고 하는데 공연이 있고 이어서 상품권 추첨도 있다고 합니다. 공연이라면 여자 아이돌 그룹이 올까? 생각했는데 요즘 아무리 싼 아이돌 그룹도 한 번 출연에 수천만 원하니 그런 공연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가뜩이나 화상 환자들을 돕는 기부행사입니다. 참가자들에게 참가비로 3만 원, 4만 원씩 받았으니 총수입은 많아야 4천, 5천만 원일 텐데. 어림없습니다. 그리고 상품권 추천도 어떤 마라톤 대회처럼 자가용이나 세탁기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돌아서서 가려고 했으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무대 쪽으로 가서 기다렸습니다.
공연은 3팀이 했었는데 초등학생들의 힙합 댄스 공연, 트럼펫과 탭댄서 및 보컬로 구성된 3인조 악단 공연, 그리고 맨 마지막에 사물놀이 공연이 있습니다. 공연은 모두 상당히 좋았습니다. 신정교 아래는 정말 오페라하우스처럼 음악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공간입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커다란 음악 소리가 적당한 울림을 만들어 내면서 양쪽의 터진 공간으로 웅장하게 퍼져나갑니다. 아무리 크고 높은 음이라도 청중들이 듣기에 부담 없이 좋았습니다. 이 공연을 보면서 주최하는 사람들이 참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다면 아주 작은 예산으로 이런 공연과 행사 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했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공연 뒤에 시상식이 있었는데 10km 남자 1등 기록은 33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5km를 뛴 저와 비슷한 시간입니다. 여성 1등 기록은 37분 정도였습니다. 5km 남성 1등은 16분 59초, 2등은 안드리앙이라는 프랑스 사람으로 17분 정도였습니다. 저보다 모두 2배 빠른 속도로 달린 것입니다. 여성은 1위, 2위가 21분 정도였습니다. 마라톤은 정말 만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결코 만만하지 않은 운동입니다. 등 수에 들어가 상금을 탄 분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지막에 경품권 추첨이 있었습니다. 저는 배번호가 오천구 십몇 번인가로 되어 있는데 '오천'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런 번호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번호로 추첨을 한 것이 아니고 대회 시작하면서 팔목에 채워준 번호로 추첨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205번이었는데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아쉽지만 제가 당첨됐다고 하더라도, 저 대신 다른 참가자가 받게 되었으니 덕을 베푼 것입니다. 상품은 쌀과 양말 등이었습니다. 경품에 당첨된 사람들 숫자도 꽤 되었는데 정말 추최 측의 정성과 배려에 감탄했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