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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Oct 01. 2024

1.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

정신병원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느 시골마을에서 다음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탔을 땐 마침 등교 시간이어서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로 가득 차 서서 가야 했다. 한 30분을 가다 보니 어느덧 모두들 내리고 버스는 서서히 시내를 벗어나 시골 마을로 들어섰다.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하여 승객 네다섯 명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시골마을이라면 넓은 도로에 파란 잔디밭이 있는 꽃들로 단장된 단독주택들이 띄엄띄엄 있으리라 여겼는데, 웬걸… 차 두대가지 나가기 힘든 좁은 골목에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심지어 띄엄띄엄 차들을 도로에 주차해 놓아 한쪽에서 양보를 해 줘야 반대편 차량이 앞으로 이동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시골도 있네. 하긴 시골이라고 모두 정원 딸린 자기 집을 가지고 있으라는 법은 없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호기심 반 걱정반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내 손에는 그 전날 인터넷에서 적은 버스정류장 이름과 버스시간표가 쥐어져 있다. 스마트폰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을 때가 있어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약속 장소, 시간, 가는 방법을 수첩에 적어 사용한다. 전에 가본 적 없고, 이름마저 낯선 곳을 (몇 년을 독일에 살아도 독일어는 귀에 와 박히지도 혀에 감기지도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는 일은 나에게 긴장되는 일이다. 시골 마을을 벗어나니 가도 가도 다음 버스정류장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그냥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지날 뿐이다. 독일 초창기 시절 누군가 그랬다. 독일에서는 밭두렁 밖으로 나와있는 작물은 따도 된다고… 그래도 그것이 도둑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단지 독일에서 키우는 옥수수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찰옥수수가 아니라 사료용 옥수수이기에 맛이 없다고 했다. 그 후 몇 년 뒤에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한국인 학생들 몇 명이 산책을 하다 옥수수를 보고 고향생각도 나고 들은 이야기도 있어 재미로 밭두렁 바깥에 있던 옥수수를 각자 몇 개씩 땄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주인아저씨가 나타나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학생들은 자기네들이 들은 이야기를 하며 이것이 도둑짓인지 몰랐다며 사정사정을 했다. 주인아저씨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그래도 그냥 보내 줄 수 없다며 옥수수값을 치르라고 했다. 학생들은 비싼 옥수수값을 치르고 옥수수를 가져갔다고 한다. 그 옥수수는 어떤 맛이었을까?  


버스시간표에 따르면 버스는 다음 버스정류장에  지금쯤 도착했어야 한다. 난 그곳에서 다음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환승 시간은 1분이다. 버스는 계속 달린다. 나는 버스가 전정류장을 떠나자마자 하차버튼을 미리 눌러 두었다. 달리는 버스가 느리게만 느껴진다. 저 운전사가 조금만 더 빨리 운전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조급함에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버스는 드디어 어느 시골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모든 승객들을 내려주고 떠났다. 갈아타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함께 내린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오로지 나와 마흔 정도 보이는 아저씨 한 명만 버스 정류장에 남았다. 길 위에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다. 차들이 새~앵~ 지나쳐 갈 뿐이다. 버스 정류장에 걸린 버스시간표를 본다. 다음 버스는 2시간 후에나 있다. 


나는 버스정류장에 있는 아저씨를 흘깃 쳐다보았다. 검은색 반팔티셔츠에 카키색 반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아래에 문신으로 가득한 시커먼 팔과 다리가 보인다. 머리는 모자를 눌러썼다. 그는 그새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을 걸었다.

„혹시 105번 버스 기다리세요? “

„네 “

„버스가 지나갔을까요? “

그는 어깨를 으슥해 보인다.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얼마 후 문신한 아저씨가 내 쪽을 보더니 눈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저 멀리에서 버스 하나가 오고 있다. 그 버스가 토토로의 고양이버스 마냥 반갑다. 내 안의 긴장이 풀린다. 버스에 오르면서 아침에 산 버스표를 보여주고 빈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버스는 20분가량을 꾸불꾸불한 산길을 지나고 몇 개의 시골마을을 지나 빨간 벽돌 건물들이 몇 채 있는 곳에 나를 내려주었다. 문신한 아저씨도 같이 내리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 건물들 중에 어떤 것이 정신병원건물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푯말도 보이지 않는다. 사라지는 문신아저씨를 뒤따라 잡으며 물었다.

„정신병원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아세요? “

„ 저 길을 따라가면 언덕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나와요. 그 샛길을 따라 올라가세요. “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후 샛길을 찾아 올라갔다. 길이 가파르다. 숨이 차고 땀이 난다. 마음이 급해 다리가 꼬인다. 드디어 언덕을 올랐다. 주차장이 나오더니 왼편에 하얀 건물이 보였다. 오른편엔 철조망이 쳐진 하얀 건물이 서 있다. ‚언덕 위 하얀 집‘드디어 도착했다. 나의 첫 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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