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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Oct 31. 2024

드디어 출산

2012. 1. 31


~ 2012. 1. 31. 새벽 1:23 ~

잠깐 잠이 들었는데 뱃속에서 무언가 "툭" 터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꿀벌이 태동인 줄 알았는데..
잠시 후 바로.. 무언가 주르륵 흐르는 느낌!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양수란 것이 터진 거 같다는 직감이었다.

다행히 아빤 운전할 수 있는 상태(?!)였다.
,..
...
...

그리도 빨리 진행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이지 땀 한 방울도 나지 않고 두 번 만에 너가 나왔다. 간호사는 너를 내 배 위로 올려놓고 선생님은 이것저것 처치를 하셨다.

난.. 말이지..
너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너무도 기쁜 "웃음"을 웃고 말았다~
간호사가 "태변 먹은 것치곤" 양호하다는 말을 하곤 내게 보여주었다. 너를 본 순간 내 느낌은 너무도 똘똘해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너는 인큐베이터에서 나는 6인실 병실에서..

나의 상상대로라면 너를 첫 대면하는 순간 너무도 감동이지 않을까 했었다.  하지만 인큐베이터 안의 너를 처음 봤을 때 그저 신기하고 안타깝지만 감동(?)은 미안하지만 아니었던 것 같다.

날 처음 뭉클하게 한 건.. 너가 아니라 아빠였다. 첫날 아침 먹고 오라니까 [김밥 + 라면]을 먹고 왔단다. 맛있는 거 먹으라 했더니 그게 먹고 싶더란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담날 아침엔 진짜 맛있는 거 먹으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병실 복도를 천천히 운동삼아 걷고 있는데. 커다란 컵라면을 하나 들고 오는 아빠 모습이 보였다. 속이 좋지 않아 이걸 먹기로 했단다. 한참 후에 사실은 다른 곳에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식당 앞에 갔다가 컵라면이 젤 싼 것 같아서 사들고 왔더란다. 순간 뭉클해졌다.
안쓰럽고.. 고맙고.. 미안하고...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눈물이 핑 돌았다.

컵라면을 먹던 배선실에서  한 아주머니에게서 들었던 "기분 좋은" 말을 적어두지 않을 수 없어 간략히 적어두련다. 이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는 우리에게 "하나로도 충분한" 녀석이란다. 무슨 뜻인지 잘 새겨들으라면서 너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될 거라는 기분 좋은 예언(?)을 해주는 것이다.]
사실 점이란 것이 믿거나 말거나지만 기분 좋은 말은 귀에 꽂히는 법이다.

손이 아프다.
팔도 아프다.
다리도 마찬가지..

한동안 기록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

너가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오늘은 전해 들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 면회를 가지 못했거든..ㅠ)
예쁘고 건강하게 있다가 집에 가자~

요즘도 그렇지만 남편은 일 끝나고 집에서 반주를 즐기는 것이 하나의 낙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은 저녁에 술을 안 먹겠단다. 그러더니 갑자기 양수가 터져 출산이 이어졌다. 평소처럼 술을 마셨더라면 급히 병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운전도 못하고 어찌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날이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갈 시간. 응급실에 실려가며 언니랑 여동생에게 연락하니 (내가 다니는 병원이 있는 대전에 살고 있던) 언니랑 여동생이 달려왔다. 동생이  병원 간호사인 것이 일처리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겐 처음 있는 일! 언니는 두 번을 겪은 일! 엄마가 누워 계신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엄마가 제일 먼저 달려오지 않았을까.

진통이 다가올수록 겁도 났지만 난 너무 추웠다. 발도 너무 시리고 춥기만 했다. 언니는 내 손 발을 열심히 주물러 주며 최대한 언니가 가진 온기를 나에게 나눠주려고 애썼다.  더 해주지 못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간호사는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며 통증이 심해지면 부르라고 했지만 난 가끔 간호사가 올 때 빼고는 따로 부르지 않고 참았다. (옆 침대에서는 젊은 산모가 연신 신음을 하며 간호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산모의 진통과 나의 진통이 뭔가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옆 침대의 산모는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 담당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 한 토막이 들렸다.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께 나의 상태를 설명하는데, "pain을 잘 참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이 정도 자궁이 열렸을 통증이면 소리를 질러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출산이 임박하고 있었다. 보호자들을 다 내보내고는 침대를 분만실로 옮기나 보다. 병원 천정을 바라보며 침대의 바퀴의 진동을 느끼는 기분은 좀 어색하고 두려웠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내게 말한다.

"윤정아, 이제부터는 니 혼자 해야 해~!"

언니가 도와주고 싶지만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담겨있었다. 막연히 겁에 질려 있던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분만실에서는 연습한 대로 호흡하고 힘주라는 요구에 따라 했더니 진짜 아기가 나왔다. 곁에 도와줄( 경험 많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난 배 위에 올려진 내 아기를 한 번 보고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병실이었다.


한 생명이 태어났다.

내게 무한의 책임감과 행복감을 안겨주는 아기였다.

처음에는 내가 모성애가 없나.. 싶을 정도로 약간의 어색한 감정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커지는 그 애틋함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부모가 되는 과정이 모두 같으리라 생각한다.


내겐 기적 같이 찾아온 첫아이였기에 아니 그렇지 않았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그 아이를 사랑했으리라. 부모 자식의 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가 한 해 한 해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행복 그 이상이었다. 물론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버텨낼 만하였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칠까 합니다.

그동안 보잘것없이 작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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