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를 성장시킨 것은 무엇일까
대학 졸업후 내가 선생님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삶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결국에는 중학교 때 꿈꾸었던 영어 교사로서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교편을 잡게 된지 20년도 더 되었다. 선생님이 되고 보니 학창시절의 선생님들이 자주 떠오른다. 시골 중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여러가지로 나를 챙겨주셨다.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공부에 대한 욕심으로 평소 열심히 공부했기에 나를 눈여겨 보셨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께서는 필요한 참고서와 문제집을 챙겨 주셨고, 도시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공부에 게을리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자주 해주셨다.
"OO아, 영어는 어떻게 공부하니? 공부하는 영어 문법책은 있니?"
"아니요, 선생님~"
"시에 사는 아이들은 고등학교 가기전에 영어 문법책을 열심히 공부한단다. 문법 책 하나 줄테니 열심히 공부하렴."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사 주신 책은 <Man to Man 영어 문법> 책이었다. 처음보는 책이었다. 그리고 내용도 방대하여 상당한 양의 공부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책이었다. 한번 봐서는 안되는 내용이고 여러번 반복해서 공부해야 하는 문법책임을 알게 되면서 많은 시간을 영어 공부에 쏟았다. 책을 받은 이후로 나는 처음으로 학교 공부 이외의 개인적인 영어 공부를 계획적으로 하게 됐다. 앞으로 어떤 진로를 갈것인지 누군가가 옆에서 묻지 않아도 자연스레 교사든 통역이든 영어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이런 선생님이 계셨기에 학교 가는 게 매우 즐겁고 자신이 뿌듯했다. 굳이 친한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나를 인정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동기 부여가 됐는지 모른다. 이런 경험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지, 어떤 기억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하는지 늘 생각해 보게 했다.
중학교 시절 만났던 세 분의 영어 선생님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영어 발음에 매우 신경써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영소설이나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면서 아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선생님도 계셨다. 무수히 많은 단어들을 매주 암기하게 하시고 퀴즈로 아이들의 학습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셨다. 중학교 들어서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했으니 아직 귀가 트이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의 4가지 기능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듣기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영어 듣기 학습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온 영어 지문을 수시로 들려주셨다. 생각해보니 그 모든 교수법이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아무튼 <Man to Man> 영어책으로 문법을 공부해 놓았기에 나름 자신감은 있었던 터라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도 다른 아이들에게 주눅이 들지 않았다. 어떤 마음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아마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들은 선견지명으로 예측하시고 나를 독려해 주셨기에 나는 단단한 마음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혼자 자취생활만 3년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집을 나서면 학교까지 걸어서 20분 정도가 걸린다. 집에 있기 보다는 학교에 일찍 가는게 내 정서에도 좋다고 느껴서 아침 일찍 하교로 출발했다. 어떤 날은 너무 일찍 학교에 가서 대문을 여는 바람에 당직을 섰던 기사님?께서 왜 이렇게 일찍 오냐고 한 소리 하시기도 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일찍 독립하여 살아보라고 하면 결코 그렇게 허락하지 못할 것 같은데, 당시의 나는 대견하게도 잘 해냈던 것 같다. 일찍 독립하여 살면서 외로움도 많이 느끼기도 하고, 직접 음식도 만들어 먹어야 했기에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 삶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긴 터널임을 안 뒤로는 그냥 묵묵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혼자 자취하면서 학교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시고 용기도 주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불어 선생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불어 선생님은 예쁘장한 용모의 아담한 여선생님이셨다. 혼자 자취하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알아보시고 각별히 신경써 주셨다. 혼자 생활하는게 힘들지는 않은지,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여러가지로 챙겨주셨던게 기억난다. 점심시간마다 흘러나오던 여러 샹송곡은 불어 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사랑의 기쁨', '눈이 내리네' 등 수업 시간에도 샹송곡을 열심히 가르쳐 주셨으니 말이다. 벚꽃이 흩날리던 4월의 어느날 점심시간에 흘러나온 '사랑의 기쁨'의 가사와 멜로디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쁠레지흐 다무~레 디흐 꾕 모망 샤그랭 다무~~..." 6월의 어느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께서 갖고 있는 자습서 몇 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바로 직접 주면 다른 학생들이 눈치챌테니, 교실로 쓰지 않는 OO교실 책상 서랍에 둘테니 찾아가라는 것이다. 다음날 그 방으로 갔더니 문이 잠겨 있어서 다음에 와야지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날에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자습서를 찾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사흘쯤 지난 뒤에 불어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왜 자습서를 가져가지 않았냐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큰 서운함을 내게 비치셨다. 속으로, 그런게 아닌데 되뇌었지만 결국 사태는 돌이킬 수 없고, 여러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만 것이다. 선생님의 호의를 거절한 학생으로 말이다. 선생님께 이런 저런 변명이라도 해야하는데 변명을 하지 않았으니 선생님께서 느끼신 서운함은 더욱 컸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이 경험은 이후 내 삶에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상대의 호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여고 정문 앞에는 딸기밭이 있었다. 야간 자습이 있던 시절이라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선생님들도 여러 방법으로 격려를 해주셨다. 딸기철이 되면 딸기밭에서 딸기를 한아름 사와서 삼삼오오 모여서 먹을 수 있게 해주셨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교를 개방하여 언제든지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다. 이러니 고등학교 3년은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대부분일 수 밖에 없다. 그시절은 좋은 대학을 가기위한 공부였겠지만, 최선을 다해 뭔가에 몰입해 보는 경험,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일들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여러 선생님들을 만났었고, 내 삶에 영향을 준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니, 삶에 있어서 의지와 앎에 대한 호기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것 같다. 똑같은 상황이어도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결과가 매우 다르다. 그런 호기심이 없었다면 내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으로 모험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적 갈망이 있어서 순례를 떠나는 사람도 있고, 배움에 대한 욕구가 더 커서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모두 같은 근원에 있다고 본다. 앎에 대한 의지이다. 지금도 그런 의지와 호기심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