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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쌤의 spots of time

7. 장미 정원이 있는 집

by 제이오름
ChatGPT Image 2025년 8월 27일 오후 09_11_13.png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장미넝쿨이 아름다운 집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 유일한 집이었다. 돌담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장미들을 보면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대문도 아치형이다. 넝쿨이 아치형 대문을 두르고 있으니 이국적인 분위기가 난다.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애니메이션에 나온 아름다운 장미 정원이 떠오른다. 그 집을 지나갈 때는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이 한참동안 꽃을 들여다보다 지나가곤 했다. 이 집에는 누가 살까. 첫번째로 궁금했다. 지금이야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을 갖고 귀향해서 정원을 예쁘게 가꾸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1980년대의 시골은 상황이 다르다. 우리 마을에는 어른들 대부분 농사일로 바쁘다. 한가롭게 사는 분들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시골에서 이렇게 여유롭게 장미 넝쿨을 손질하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 있다니, 그는 분명 개인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어머니와 산책 길에 물어보았다.

"이 집에 누가 살아요?"

"박 OO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지."

"그 사람도 농사를 지어요?"

"당연하지. 그런데 우리처럼 많은 농사를 짓는 건 아니고, 적당한 정도의 농사일만 하고 있단다."

"그 분은 다른 시골 사람들과 다른 것 같아요. 이렇게 장미꽃도 가꾸시고."

"장미꽃을 좋아하고 집과 정원을 깔끔하게 가꾸는 사람이란다. 보통 사람이 아니지.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그분은 적당한 수입으로 자신의 취미를 살리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신 분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로 살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화려한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을 보는 재미에 살아가는 분이라는 것이다.


어린 아이임에도 아름다운 장미 정원을 갖고 계신 그 사람이 매우 부러웠다. 팍팍한 시골 삶에서 그런 취미를 갖고 계시다니 더욱 부러웠다. 속상하고 질투도 났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 마당에도 꽃들이 가득했으면 좋겠고, 집에 들어오는 입구도 아치형 대문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매일매일 농사일로 바쁘셨기 때문에 그런 꾸미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먹고 살 일, 자식들 공부시키는 일이 가장 큰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정을 알기에 부모님도 원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기억이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름다운 장미 정원의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분이 갖고 있던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갖고 살아가고자 했던 의지 말이다. 그리고 장미를 보면서 사색했던 시간들은 그 분의 영혼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고 살아간다. 직장의 상실, 돈의 상실, 사랑하는 지인들과의 이별 등 불안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누군가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미래를 대비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거나 마음을 단단하게 다스리기 위한 훈련을 받기도 한다. 알랭드 보통은 <철학의 위안>에서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이 가장 좋은 처방이라고 말한다.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83)


우리 마을에서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었던 그 분이 가장 원했던 것은 불안을 없애기 위한 사색이었을지도 모른다. 장미 정원이 주는 미적 아름다움 외에, 정원을 거닐면서 할 수 있는 사색을 원했을지 모른다. 사색을 통해 자신이 현재 처한 불안을 다스리고자 했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그분처럼 장미정원을 꾸밀 수 없으니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고 글로 적어보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글을 통한 사색은 혼란과 마음의 고통을 예방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말이다.


물론 내 부모님도 그런 멋진 장미 정원을 꾸미진 못했지만 각자의 나름대로 사색을 즐겼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소를 키우면서, 오름 근처를 걸어다니면서 사색을 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밭일을 가기 위해 걸어야 했던 긴 길에서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을지 모른다.


몇 해 전에 구입한 클로드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정원> 그림은 분명히 이유가 있었다. 비록 내가 직접 장미정원을 꾸미지는 못하지만 그림으로도 충분하다. 그림 속에 그려진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들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 장미정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자 했고, 사색에 동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왜 그림을 그리는지, 사람들은 왜 그림에 열광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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