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엘리너와 메리언, 서로를 통해 성장하기
『이성과 감성』에서 엘리너 대시우드는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통제하면서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녀의 동생인 메리앤은 감정을 모두 쏟아내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반면, 엘리너는 때로는 이성적 판단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녀의 침묵은 당시 여성에게 요구된 자기 검열이기도 하다. 이성을 미덕으로 찬양하는 사회 속에서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발산은 품위를 잃어버린 행태로 여겨졌다. 제인 오스틴이 소설의 제목을 <이성과 감성>으로 정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이성과 감성은 사건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두 자매의 성향과 진심을 드러내는 중요 열쇠가 된다.
이에 대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제인 오스틴이 낭만주의적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녀는 낭만주의적 감정 표현을 전적으로 비판했을까? 아니면 일부 수용했을까? 메리앤은 감정에 충실하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 그리고 메리앤으로 대변되는 낭만의 열정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소 위험하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메리앤이 지닌 낭만주의적 감정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제인 오스틴은 낭만주의적 이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절제된 감정의 아름다움을 옹호하고자 했다. 결국 감성은 억압이 아니라 세련된 통제 속의 진실성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절제된 감정이야말로 제인 오스틴이 생각하는 고귀한 미학인 것이다.
엘리너는 동생 메리앤의 열정과 사랑을 인정해주고 격려해 준다. 그러나 메리앤의 낭만적 열정은 종종 엘리너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된다. 메리앤이 윌러비와의 관계에서 낭만주의적 감정에 압도되어 도에 넘는 행동을 하려고 하면 엘리너가 나서서 넌지시 충고를 해준다. 그러면 메리앤은 처음에는 툴툴대다가도 언니의 조언을 따른다. 예를 들어, 윌러비가 메리앤에게 말을 줄테니 마부를 고용하여 사용하라고 했을 때, 그것이 그들의 재정적 상황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엘리너는 메리앤이 그것을 거절하라고 얘기한다. 메리언은 처음에는 거절하기가 매우 싫었지만 끝내 언니의 조언을 따르고 윌러비에게 말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
메리앤은 아주 신이 나서 하는 소리가, 윌러비가 말을 한 필 주었다는 것이다. 서머싯셔 장원에서 그가 직접 키운 말로, 여성이 타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말을 가지는 것이 어머니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고, 혹 어머니가 이 선물을 기화로 마음을 바꾸는 경우에는 하인이 탈 말을 또 한 필 사야 하고 그 말을 탈 하인도 구해야 하며 말들을 들일 마구간을 지어야 할 판임을 고려하지도 않고서, 그녀는 덜컥 그 선물을 받아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들뜰 대로 들떠서 언니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엘리너는 별로 잘 알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아주 최근에 알게 된 사람한테서 이런 선물을 받는 것이 과연 예의 범절에 어울릴까 생각 좀 해보라고 했다. (80)
메리앤은 동생의 기질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민감한 문젱에 대해서 반대해 보았자, 자기 소견에 더 집착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동생의 애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혹 하인 수를 늘리자는 것에 동의라도 하는 경우 마음 약한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을 알아듣게 설명해 주었더니, 메리앤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괜히 그 제안을 들먹여서 어머니가 혹여 이렇게 도를 넘은 친절을 받아들일 유혹을 느끼지 않게 하겠다고, 다음번에 윌러비를 만날 때 사양하겠다고 약속하였다. (80-81)
브랜든 대령의 초대로 엘리너와 메리앤 일행은 휘트웰 영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으나 브랜든 대령이 급한 일로 런던에 가는 바람에 약속이 취소된다. 그 후 메리앤과 윌러비는 이륜마차를 타고 몰래 둘이서 알렌험 저택과 영지로 드라이브를 간 일이 있었는데, 이 비밀은 제닝스 부인에 의해 탄로 난다. 이때 엘리너는 동생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나무란다. 아직은 결혼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본인 소유가 됐을때 둘러봐도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메리앤은 이런 잔소리를 듣는게 싫었지만, 결국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언니에게 사과한다.
"그렇지만, 얘, 메리앤. 벌써 남한테 무례한 소리를 몇 마디 들은 셈인데, 이제는 네 행동거지에 혹 신중하지 않은 점은 없엇나 하는 회의가 안 드니?"
"제닝스 부인한테 뻔뻔스러운 잔소리를 들은 게 예의범절에 어긋한 행동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면, 우리 모두 매순간마다 잘못을 저질러온 셈이게. 부인의 칭찬에 조금도 솔깃하지 않듯이 비난에도 별로야. 스미스 부인의 땅을 걷는다거나 저택을 둘러본다 해서 무슨 나쁜 짓을 했다고는 생각 안 해. 그곳은 언젠가 윌러비 씨의 것이 될 거고, 또...."
"그곳이 언젠가 네 것이 된다고 해도, 메리앤. 네가 한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을 거야."
그녀는 이 언질에 얼굴을 붉혔으나, 흡족해하는 기색이 완연하였다. 십 분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뜸을 들인 후에, 언니한테로 다시 와서, 아주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
"엘리너 언니, 알렌험에 간 건 내가 좀 잘못 판단 했던 것 같긴 해. 그렇지만 윌러비 씨가 워낙 그 영지를 보여주고 싶어 해서 말야..."(93-94)
이렇듯, 엘리너의 적절한 조언은 메리언이 자신의 기쁜 감정에 압도된 나머지 이성적 판단이 부족할 때 쯤에 효과를 발휘하여 그 감정을 누그러뜨리게 한다. 동생을 사랑하는 언니의 마음에서 나온 조언이기에 이는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엘리너와 메리앤은 서로 자매이지만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여성 간 연대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통해 윤리적 성장을 보여주는데,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서 진실된 사랑을 배우고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의 실패를 통해 두 사람은 감정의 진정성과 책임의 중요성을 배우고 서로의 상처를 통해 성숙한다. 서로가 없었다면 각자는 내적, 윤리적 성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각자의 개인의 성장 서사로 보이지만 여성간 이해와 연대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특히 메리언은 병에서 회복된 뒤, 가족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감정에 치우쳤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이성적이고 절제있는 충고를 해주었던 언니를 이해하게 된다. 윌러비와 관계된 일에 관하여 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그녀를 성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엘리너의 이성적 태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기에 과잉된 감정을 걷어내고 보니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게 되고,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정말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 모든 걸 알고 난 다음에야,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되었을 테니까 말이지만, 난 절대 그이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을 거야. 아무런 신뢰도 아무런 존경도 없었을 거고, 아무리 해도 그것을 내 마음에서 떨쳐내지 못했겠지."(464)
이 소설에서 엘리너가 루시 스틸에게서 에드워드 페라스의 약혼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받는 모습은 독자를 마음아프게 한다. 그런데 그녀가 얼마나 성숙한 여성인지는 이 소식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보인다. 엘리너는 내면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가 얼마나 품위를 지키는 여성인지 보인다. 에드워드가 루시와의 약혼이 깨졌음을 전하며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엘리너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엘리너의 꾹꾹 눌러왔던 감정은 폭발하고 만다. 그녀가 처음으로 눈물을 터뜨리며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그렇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주에 결혼했고, 지금은 돌리시에 있습니다."
엘리너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방 바깥으로 거의 뛰어나가다시피 하였고, 문이 닫히자마자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는데, 처음에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에드워드는 그때까지는 그녀 쪽이 아닌 어딘가로 눈길을 두고 있다가 그녀가 허둥지둥 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아마도 그녀의 감정이 격해진 것을 보았거나 아니면 우는 소리를 들었을 수조차 있었을 것이다. (478)
동생에게나 주변 사람들에게 늘 절제된 감정을 보여주었던 엘리너이기에 그녀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은 지금까지의 그녀의 이성적 태도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녀가 드러내는 감정조차도 매우 고귀하게 만들고 있다.
요컨대, 제인 오스틴은 낭만주의적 감정을 존중하면서도 과잉된 감정보다 사회적 품위를 지키는 선에서 절제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엘리너와 메리언의 서로 대비되는 성향은 상대의 감정과 성향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서로의 내면적, 윤리적 성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