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브랜든 대령과 윌러비 사이에서
제인 오스틴 소설의 인물들 중에서 성향이 일부 서로 상반된 인물은 있어도, 『이성과 감성』의 브랜든 대령과 윌러비처럼 노골적으로 서로 완전히 대립각에 있는 인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제인 오스틴의 초창기 소설이어서 제인 오스틴은 인물 설정에 있어서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으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성과 감성』으로 출판되기 전에 『엘리너와 메리앤』으로 소설명을 지은걸 보면 이성과 감수성 면에서 서로 대립적인 인물을 보여주려 했던 작가적 의도가 보인다. 처음의 제목이 『엘리너와 메리앤』이었다면, 남자 인물을 구성할 때도 이들의 성향에 대응되는 인물을 마음 속에 그려봤을 터인데, 『브랜든과 윌러비』라는 가상의 제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브랜든 대령과 윌러비는 어떤 인물인지 제인 오스틴의 문장을 찾아 보자.
브랜든 대령은 존 경의 친구로 35세의 부유한 사람으로 17세의 매리앤에게 마음 속에 연모의 정을 키운다. 레이디 미들턴(존 경의 아내)의 어머니인 미망인 제닝스 부인은 『에마』의 에마처럼 미혼의 남녀들을 서로 짝지어주려고 애를 쓰는 수다쟁이 여성인데, 존 경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브랜든 대령이 메리앤에게 보이는 시선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브랜든 대령이 메리앤을 좋아한다고 단정한다. 그 이후로 제닝스 부인은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기 위해 애를 쓴다. 메리앤의 어머니인 대시우드 부인 또한 이성적이고 차분하며 생각이 깊은 븐랜든 대령이 메리앤과 결혼했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친다.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메리앤에게 브랜든 대령은 나이든 불구의 아버지뻘 어른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엄마,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그렇게 몰아붙이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잖아요. 브랜던 대령님이 제닝스 부인보다 나이가 적은 건 사실이지. 그렇더라도 그분은 나한테는 아버지뻘이잖아요.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적이 있으신지 몰라도. 그런 감정 같은 것은 오래전에 사라진 것 아니겠냐구. 정말 웃겨! 남자가 나이가 들도 불구가 되어도 이런 놀림을 받을 거라면 도대체 언네나 되어야 벗어날까?"
"불구라니!" 하고 엘리너가 말했다. "너 브랜든 대령님을 불구라고 하는 거니? 아무래도 네 눈에는 어머니한테보다는 그분 나아기 훨씬 더 들어 보이는 모양이네. 그렇지만 그분이 사지가 멀쩡하다는 것까지 부정하면 곤란하지!"
"류머티즘이 있다고 불평하는 소리 못 들었어? 그게 노년에 가장 흔한 불구 아냐?" (53)
메리앤은 브랜든 대령이 얘기한 플란넬 조끼조차도 견디지 못한다. 그녀에게 플란넬 조끼는 노인들이 흔히 입는 옷이며, 등통, 경련, 류머티즘 같은 것이고 노인들이 걸리는 온갖 흔한 질병을 떠올리게 하는 매체이다.
"그렇지만 플란넬 조끼 얘기를 했잖아." 하고 메리앤이 말했다. "나한테 플란넬 조리는 등통, 경련, 류머티즘 같은거. 노약자가 걸리는 온갖 질병을 떠올리게 한다고."
어느날 메리앤과 마가렛은 바턴 코티지 인근 언덕으로 산책을 나간다. 산책 중에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달리다가 메리앤을 발목을 접질러서 넘어지게 된다. 멀리서 그녀를 발견한 한 신사가 그녀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이 신사는 바로 윌러비다. 윌러비는 당시 메리앤에게서 몇 야드 떨어진 곳에 포인터 종 사냥개 두 마리를 거느리고 총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당시 윌러비가 총을 들고 사냥 중이었다는 설정은 제인 오스틴의 의도된 설정이다. 젊은 20대의 남성이 총을 들고 사냥개를 대동하여 사냥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윌러비의 남성성을 보여주기에 매우 충분한 것이니 말이다. 메리앤을 안고 집안에 들어선 윌러비의 첫 인상은 "보기 드물게 잘생긴 외모에다 매너가 너무 솔직하고 품위가 있고 목소리와 말투까지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남자답게 잘생긴 용모와 범상치않은 품위는 메리앤 뿐만 아니라 대시우드 부인, 엘리너에게도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메리앤이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 요인 중에는 브랜든 대령의 의상과는 반대로 사냥 재킷이 있다.
그의 생김새와 태도는 좋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그녀가 마음속에서 그려왔던 모습과 그대로 부합하였다. 그리고 무슨 격식을 차리지 않고서 그녀를 집 안으로 데려온 행동도 머리가 아주 빨리 돌아간다는 뜻이니 그녀에게는 특히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그와 관련된 모든 여건이 관심을 끌었다. 이름도 멋있고 거처도 그들이 좋아하는 마을에 있었다. 곧 그녀는 남성의 옷 가운데서는 사냥 재킷이 가장 멋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상상력은 바삐 움직였고, 회상은 즐거웠으며, 삔 발목의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61)
존 경 저택에서 파티가 있었을 때 메리앤은 자신이 잘하는 연주와 노래를 보여주는데, 그녀가 노래할 때 브랜든 대령만이 귀담아 듣는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성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잘 듣기'는 이성의 가장 근본으로서 엘리너는 브랜든 대령처럼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여성이다.
존 경은 노래하는 동안에는 큰 소리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곡이 끝날 때면 목청을 높여 칭찬해 댔다. 레이디 미들천은 몇 번이고 남편엑 좀 조용하라며 도대체 어떻게 음악에서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딴 데 팔 수 있느냐고 하면서 신청곡을 내놓으셨는데, 아뿔싸 메리앤이 방금 끝낸 곡이었다. 브랜든 대령만이 일행 가운데 유일하게 괜히 흥분하지 않고서 노래를 들었다. 그는 오로지 주의를 기울여 음악을 들어주는 성의를 보였던 것이다. (51)
윌러비가 대시우드 부인의 딸들과 이야기할 때 그의 멋진 용모에도 불구하고 윌러비는 상대의 말을 찬찬히 듣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싶은 말만을 한다. 그리고 윌러비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한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경박함을 보여준다. 엘리너는 윌러비의 이런 조심성 없는 태도가 걱정이 된다.
대시우드 부인도 메리앤과 마찬가지로 그를 흠 하나 없는 인물로 보았다. 엘리너도 그에게서 별로 비난할 점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주위 사람이나 여건에 상관없이 무슨 일이든 자신의 생각을 마구 토로하는 성향만은 좀 걸렸다. 이런 성향에서는 자기 동생을 빼닮았는데, 동생은 또 동생답게 이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하여간 남에 대해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말했으며, 마음을 둔 사람에게 몰두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예의를 지키지 못하였고, 세상살이에 필요한 예의범절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등, 그와 메리앤이 아무리 옳다고 할지라도 엘리너로서는 그가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것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68)
자신의 기질에 맞게 루퍼와 스콧 등 낭만주의 시인을 좋아하는 메리앤은 위러비 또한 자신과 같은 문학적 취향을 갖고 있다고 자랑한다. 신고전주의 시인인 알렉산더 포프에게는 찬사를 보내지 않는 점도 자신과 공통점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브랜든 대령이 메리앤과 얘기를 나누었다면 그의 기질답게 포프에게 더 많은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메리앤." 그가 떠나자마자 엘리너가 말했다. "내 생각에 말야. 한번의 아침 만남으로서야 넌 참 잘하더구나. 거의 모든 중요한 문제에 대한 윌러비 씨의 의견을 벌써 확인했거든. 쿠퍼와 스콧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고, 이 시인들의 아름다움에 응분의 평가를 하고 있다는 확신도 얻었고, 또 포프에게 정도 이상의 찬사를 바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속속들이 알게 되었지."(66)
이 소설에서 비가 오는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메리언이 동생 마가렛과 산책하다 비를 맞아서 급히 달리다가 발목을 접질려서 넘어지는데 이때 윌러비가 나타나 그녀를 안고 집에 돌아온다. 그런데 윌러비의 악행이 드러나고 그가 변명을 하겠다고 찾아왔을 때도 폭풍우가 부는 밤이었다. 이때 메리앤은 병들어 누워있었고 언니와 브랜든 대령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비로 사건이 시작되고, 폭풍우가 부는 밤에 윌러비와 메리언은 결국 이별하고 메리언은 마음 속에서 그를 지워버린다. 제인 오스틴은 낭만주의 작가는 아니지만 낭만주의 시와 소설을 좋아하는 메리앤을 주인공으로 쓰면서 일부 자연적 요소(비나 언덕 등)를 소설의 장치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 장치가 소설을 매우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