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31. 샬럿 루카스와 루시 스틸을 비교하며 읽기
제인 오스틴 소설 인물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결혼을 택하는 여성 인물은 『오만과 편견』의 샬럿 루카스와 『이성과 감성』의 루시 스틸이다. 같은 성향으로 보이나 결이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을 한번 알아보자.
『이성과 감성』에서 묘사된 루시 스틸은 다음과 같다.
루시는 천성이 영리하였다. 하는 말을 듣다보면 그렇구나 하는 대목도 많고 재미도 있었다. 반 시간 정도 친구하기에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때가 꽤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능력은 있었으나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녀는 무식하고 교양도 없었다. 잘나 보이려고 늘 애씀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발전의 미비라든가 누구나 알 만한 것들을 모른다는 것이 대시우드 양의 눈을 벗어날 수 없었다. 교육을 받았더라면 훨씬 버젓해졌을 그런 능력이 이렇게 묻혀 버리고 만 것을 엘리너는 안됐다고 여겼다. 그러나 파크에서 그녀가 눈치를 보면서 빠릿빠릿하게 아부를 하는 데서도 드러나다시피 정신의 세심함, 올곧음, 고셜성은 조금도 없다는 것이 그리 탐탐할 리 없었다. 그녀는 무지한 데다 불성실하기까지 한 사람과 교제하는 것에서 지속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아는 것이 없다 보니 만나도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한 행실로 보면 자기에 대한 관심과 존중도 가식이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던 까닭이다. (169)
엘리너와의 대화에서 루시 스틸은 에드워드 페라스와 약혼한 사이임을 고백한다. 엘리너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어머나!" 엘리너가 소리쳤다. "무슨 뜻이죠? 로버트 페라스 씨를 아세요?" 당신이 혹...?" 그녀는 이런 동서를 가진다는 생각이 별로 탐탁치가 않았다.
"아니요." 루시가 대답했다. "로버트 페라스 씨하고가 아니에요. 생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게 아니라," 엘리너에게 눈길을 꽂으면서, "그분의 형하고에요."(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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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비밀을 꼭 지켜주실 것을 세상없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 일이 우리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그이의 어머니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테니까요. 그분은 약혼을 인정 안하실게 분명해요. 저한텐 재산도 없을 테고, 짐작키로는 무척 거만한 분일 것 같은데."(175)
두 여성 인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 결혼은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여성의 생존을 결정짓는 사회적 제도였다. 샬럿 루카스와 루시 스틸 모두 사랑이 아닌 현실적 이유로 결혼을 택함으로써, 제인 오스틴이 비판하고자 했던 사회 구조의 부조리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들의 성향이나 결혼의 방식 등은 서로 상반된다. 살럿 루카스는 다소 이성적이고 절제된 여성으로 보인다. 그녀는 결혼 시장에서 자신이 경쟁력이 낮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결혼은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는 수단"이라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갖고서 감정이 결여된 결혼을 체념 속에서 받아들인다. 그녀의 선택은 개인의 낭만적 욕구 보다는 현실에서의 생존이 우선시되는 당시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 제인 오스틴은 당시의 이런 결혼관을 비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살럿에게 약간의 동정과 그녀를 이해하도록 하는 여지를 준다. 왜냐하면 샬럿은 결혼 제도의 희생자 이지만 그 속에서 부단히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합리적 생존자라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도 처음에는 샬럿의 결혼을 이해못하고 비판도 했지만 그녀가 선택한 결혼을 차츰 이해하게 된다.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 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 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이제 마침내 그 예방책을 손에 넣은 것이니, 스물 일곱의 나이에 한번도 예뻐 본 적이 없는 여자로서는, 이번만큼은 정말 운이 좋다고 느꼈다. (p. 177)
반면 루시 스틸은 사회의 위선을 내면화한 인물이다. 그녀는 엘리너를 찾아와 자신이 에드워드 페라스와 약혼한 사이이며 그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재산이 불확실해지자 바로 태세를 전환하여 그의 부유한 형인 로버트와 결혼한다. 루시 스틸은 샬럿 루카스 보다 더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녀 또한 사회적 업압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 안정 없이는 어떤 여성도 행복할 수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녀도 그런 기회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에서 루시 스틸을 도덕적 비판의 대상으로 보면서 풍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 행위가 악독한 행위가 아니라 '여성의 제한된 생존 전략'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루시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그녀의 행동은 이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감정이 이끄는 대로 선택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감정과 도덕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상승하려는 인물로써, 제인 오스틴이 가장 비판적으로 묘사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루시 스틸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레이디 수잔>에서 악녀인 수잔을 닮은것 같다.
루시 스틸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성격은 엘리너에게 자신은 에드워드 페라스와 약혼한 사이라고 고백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겉으로는 친근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지만 그 고백의 목적은 엘리너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즉 겉으로는 순수하고 순박하고 친절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계산적인 인물이다.
"저에 대한 에드워드의 사랑은," 하고 루시가 말했다. "우리가 처음 언약을 한 이래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워낙 시험에 들어 있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이 시련을 아주 잘 견뎌냈고요. 지금 와서 그걸 의심한다면 전 용서받을 수 없을 거에요. 그이는 처음부터 그 점에 대해서는 한순간도 걱정을 끼친 적이 없으시다고 해도 무방하답니다."(195)
루시 스틸은 사랑의 감정도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에드워드와 약혼한 이유도 그를 사랑했다기 보다는 사회적 상승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에드워드가 상속에서 제외되자 곧바로 그의 동생 로버트 페라스와 결혼한 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사랑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조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는 엘리너의 진실된 이성적 사랑과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비밀과 아첨이라는 처세술로 에드워드의 어머니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비밀 약혼이 발각되어 그녀의 분노를 유발시킨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처세술을 끝까지 이용하여 에드워드 대신 로버트와 결혼한다.
에드워드 페라스의 모친인 페라스 부인은 루시 스틸이 자신의 아들인 에드워드와 비밀약혼을 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분노하는데, 사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 그 약혼을 절대 용납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라스 부인은 자그맣고 야윈 여성이었다. 몸매는 꼿꼿하다 못해 딱딱해 보일 정도였고, 태도는 진지하다 못해 심통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안색은 누렇게 떠 있었고, 이목구비는 작았고, 미모도 아니었고, 당연히 표정도 없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이마가 찡그려져 있어서 따분한 용모가 되는 불명예는 가까스로 피하였다. 그것이 교만과 심술궂음이라는 강한 성격을 거기에 부여하였던 덕분이다. 그녀는 말이 많은 여성이 아니었다. 대개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딱 자기 생각을 나타날 정도의 말만 하였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몇 마디 안 되는 말 가운데 대시우드 양의 몫으로 떨어진 것은 단 한마다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싫어하기로 작심을 한 그런 눈으로 대시우드 양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306)
페라스 부인은 자신이 루시 스틸 양과 에드워드의 약혼 소식을 아직 몰랐을 때는 엘리너를 깔아뭉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루시 스틸 양을 환대하면서 차별대우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진실을 잘 알기에 엘리너는 마음 속으로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페라스 부인의 이런 모습은 나중에 루시 스틸이 결혼했을 때 그녀가 어떤 부인이 될지 미리 짐작하게 만든다. 이기적인 루시 스틸의 성향을 보면 페라스 부인을 능가하고도 남을 것이다. 페라스 부인을 보면 그녀의 딸인 패니의 성향이 보인다. 마치 거울처럼 말이다. 엘리너를 무시하고 조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페라스 부인의 특기였는데, 루시 스틸도 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샬럿 루카스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었다.
루시 스틸과 비교하면서 다시 소설을 찬찬히 읽으니, 샬럿 루카스를 다시 보게 된다. 그녀가 매우 현명한 여성이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