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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Jun 28. 2024

일상에 예술을 적시고 싶을 땐, 안양 예술 공원으로

쓸모있고 아름답고 의젓한

자연과 예술 그리고 건축

안양예술공원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클래식2 (다크네이비)


아직 열대야가 오기 전 여름밤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인문학 계열 전공자들이 2차를 가기 위해 걷는 중이었다. 문학, 사회학, 철학, 미학. 우리가 좋아하던 것들은 어쩌다 시대에 맞지 않는 무용한 학문이 되어버렸을까. 그렇다고 한숨을 쉬기보다 돈이 아무리 세상을 흔들어봐라 우리가 거기 넘어가나 흥, 콧방귀를 뀌어대며 술을 마시고 한 잔 더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다가 보았다. 좁은 땅에 길쭉하게 올라가고 있는 심심하고 못생긴 건물을. 


“저건 뭐예요?”


“청년주택이잖아요.”


“주택이라기에 창이 너무 작은데?”


벽돌 한 장 이어 붙일 줄도 모르는 인문학 전공자들은 아직 채 완성되지 않은 그 건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거처’라는 건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청년주택을 너무 임시 거처의 의미로 생각하고 짓는 것 같아요. 주거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공을 들이면 좋겠는데.”


“‘거처’라는 건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임시’라는 단어가 붙어 꿈을 꾸기도 그냥 삶을 운영하기도 애매한 공간을 만드는 것 같아요.”


세상 만물이 이야깃거리인 인문학 전공자들은 과연 삶을 운영하기 적합한 아름다운 공간은 어떤 모습이냐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내기 시작했고, 목소리가 높아질 즈음 골목 끝에 새로 단장한 이자카야에 도착했다. 

하이볼을 앞에 두고도 주제는 바뀌지 않았다. 이야기는 흘러 흘러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말년을 살았던 4평 오두막까지 갔고, 더 흘러 흘러 전쟁이 한창이던 50년대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 일하며 건축을 배웠던 김중업까지 화제에 올랐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클래식2 (다크네이비)


그렇게 우리는 늦은 밤까지 그동안 보아왔던 가장 좋았던 공간과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기억나지 않을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야기들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술자리에서의 대화란 원래 그런 법이다. 술잔이 오고 가는 사이 무게를 잃은 말들이 한없이 가볍게 날아가버린다. 다음 날이면 그중 하나 정도 손에 쥐어지려나. 가볍게 날아다니는 말들 중 김중업건축박물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안양에 예술공원이 있는데 그 안에 건축가 김중업이 제약회사의 의뢰를 받아 지은 옛 공장 건물이 있다고 했다. 


심각한 얼굴로 우리나라의 놀이 문화에 대해, 인간의 유희에 대해 떠들고 또 떠들었다


지금은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반복되는 패턴과 벽을 분할한 모습이 르코르뷔지에가 파리 교외에 지은 메종 자울과 비슷하다면서 공장의 느낌보다는 건축예술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아, 궁금한걸? 생각하는 사이 잔이 채워졌고 이야기는 계곡 상권과 놀이 문화로 옮겨져 있었다. 안양예술공원이 계곡 옆 유원지였다가 얼마 전 정비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 나와서였다. 아, 아는 것도 정말 많은 인문학 전공자들은 자못 심각한 얼굴로 우리나라의 놀이 문화에 대해, 인간의 유희에 대해 떠들고 또 떠들었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클래식2 (다크네이비)


평소 한 달 동안 하는 말보다 더 많은 말을 쏟아내고 헤어져 새벽녘에야 집에 도착했다. 늦게 나타났다고 두 배로 반가워해주는 강아지를 신나게 쓰다듬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쓰린 속을 달래며 해장라면을 먹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고요한 나의 하루. 강아지와 아침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원고를 쓰는 하루. 지난밤 쉬지 않고 말을 했던 게 지난 세기의 일처럼 아득해지는데 단톡방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한 차로 갈 거냐, 각자 만날 거냐, 시간은 어쩔 거냐 질문이 쏟아졌다. 내가 읽기만 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자 사회학 전공자가 나를 콕 집어 한마디를 던졌다. “L씨 왜 이렇게 조용해요. L씨가 가자고 해놓고.” 네? 저요? 제가 가자고 했다고요?


여행온 듯 사진도 찍고 파전에 막걸리 한 잔씩 하고 오자고 했다


그랬다. 나였다. 말하는 만큼 술도 많이 마셨던 나는 그날 긴 술자리에서 떠다니는 말들 중 김중업 건축박물관이 있다는 안양예술공원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 같이 가야 한다고 만 번쯤 제안하며 동행을 강요했다(고 한다). 다음 주에 다 같이 유희의 인간이 되어보자면서 옛 유원지였던 계곡가에서 놀아보자고, 예술 작품도 감상하고 메종 자울이라고 생각하고 김중업건축박물관 앞에서 여행 온 듯 사진도 찍고 파전에 막걸리 한 잔씩 하고 오자고 했다(고 한다). 


즉흥을 낭만이라고 생각하는 인문학 전공자들


즉흥을 낭만이라고 생각하는 인문학 전공자들은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그렇게 며칠 후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맙소사. 그랬었지. 기억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그냥 공중에 떠다니다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 말이었다. 술이 다 깨고 나니 조금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일을 벌린 내가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연스럽게 약속이 깨지기만 기다리는데 어쩜 그렇게 다들 시간이 잘 맞는 건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대하며 즐겨보자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계획에 동참했다. 


안양예술공원은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를 끼고 우회전을 해야 나타났다. 흑백의 아파트 단지를 찍은 사진에 유화로 그린 숲을 오려 붙인 것처럼 이질적이었다. 안양예술공원은 현실을 페이드아웃시킨 뒤에 새로운 장면이 펼쳐지는, 단박에 무드가 바뀌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산자락의 맨 아래 초입에 있었다. 붉은 벽돌에 흰색의 패턴으로 멋을 낸 건물이 보였다. 


부와 권력의 부스러기로 남겨진 것들이 주지 못하는 친근함이 좋았다


“제약회사의 공장이었대. 김중업 선생이 의뢰를 받아 1959년에서 1960년 사이에 지은 건물이라고 하더라고.”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지어졌다기에 너무 세련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근사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이 오래전 노동의 장소였다는 게 반가웠다. 부와 권력의 부스러기로 남겨진 것들이 주지 못하는 친근함이 좋았다. 


“이런 공장이라면 일할 맛이 났을 것 같아.”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달랐겠지.”


아름답고 의젓한 것이 다시금 대자연 속에 되돌려지는 것


저기 T세요?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우리는 박물관으로 들어가 김중업과 김중업의 건축에 대한 전시를 살펴봤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프랑스에 있는 르코르뷔지에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기까지의 여정, 이후 한국 건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던 시간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김중업 선생은 손으로 쓴 글에 이렇게 적어놨다. 


“작가가 정성껏 꾸민 것을 시간이 인간에게 되돌려 주는 것, 사람이 반기고 아끼고 그러다가 하루는 신의 소유물이 되는 것. 쓸모가 있고 아름답고 의젓한 것이 다시금 대자연 속에 되돌려지는 것.” 


이 시대의 수많은 청년주택도 부디 사람이 반기고 아끼고 있는, 쓸모 있고 아름답고 의젓한 건물로 세워지길


전시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다시 떨어져서 그의 건축물을 바라봤다. 김중업이라는 건축가가 정성껏 꾸민, 사람이 반기고 아끼고 있는, 쓸모 있고 아름답고 의젓한 건물이 눈앞에 있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짓고 누군가의 어떤 시간이 담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들. 이 시대의 수많은 청년주택도 부디 사람이 반기고 아끼고 있는, 쓸모 있고 아름답고 의젓한 건물로 세워지길. 


모든 것이 조화롭게 연결된 곳이었다


아담한 박물관 부지 내에는 건축물뿐 아니라 보물인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국가유산인 고려시대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었다. 푸릇한 잔디와 붉은 벽돌이 어우러진 휘휘 둘러보기 딱 적당한 부지 안에 고대와 근대와 현대가 어울려 있었다. 타임슬립 판타지 드라마에 나올법한 공간이라니. 생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아직 예술공원의 입구에는 가지도 못했다면서 길을 재촉했다. 개천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잘 정비된 안양예술공원은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왜 이 산자락 아래 오래전부터 유원지가 형성됐는지 알 것 같았다. 공원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경사와 적당한 깊이의 물과 숲. 모든 것이 조화롭게 연결된 곳이었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클래식2 (다크네이비)


“예전엔 인근 주민들이 계곡에 발 담그고 백숙 먹으며 물놀이하던 곳이었다나 봐.”


“재정비 사업을 했구나. 깔끔하고 아늑하기까지 하네.”


유원지를 예술공원으로 재정비하면서 곳곳에 놓인 설치 작품들을 하나하나 지나며 인문학 전공자들은 또 말이 많아졌다. 인간의 삶에 왜 예술이 필요한지로 시작해 그런 것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의 유무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걷기 좋은 편안한 신발로 충분히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길


데크길을 따라 올라 나무 가득한 흙길을 밟고 돌아 내려오는 길은 걷기에 딱 좋았다. 관악산으로 넘어가 등산을 할 계획이 아니라면 그날의 우리들처럼 걷기 좋은 편안한 신발로 충분히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길.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클래식2 (다크네이비)


볕을 식히는 여름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또 길고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에 대해 유희에 대해 우리의 아름다운 삶에 대해. 




반려길이란?

길을 입양해서 가꾸며 평생을 돌보는 나의 반려길 프로젝트, 르무통이 시작합니다. 


* 나만의 반려길을 소개해주세요

댓글에 나만의 반려길을 소개해 주세요. 그 길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 길의 위치, 역사, 길에 얽힌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에디터 L씨가 그 길을 소개합니다. 매주 3명의 당첨자를 선정해 르무통 공식몰 적립금 5만원과 르무통 매거진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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