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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Jul 05. 2024

옛 사람들을 떠올리며 걷고 싶은, 백제 유적 반려길

사철 화창한 날을 꿈 꾸던 

그 시절 사랑의 흔적 

익산 미륵사지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다크네이비)


그의 이름은 장이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장은 어려서부터 경제활동을 해야만 했다. 장은 아버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물으면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이었다고 얼버무렸다. 그럴 때마다 장은 더 캐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궁금하지 않은 척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장은 어머니의 남편이 죽고 나서 생긴 아이였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다크네이비)


이미 여러 소문이 마을을 돌고 돌았고, 자연스럽게 장도 어머니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떠도는 말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어머니를 다그칠 수 없었다. 장은 세상에 유일한 어머니의 편이었다. 자신까지 어머니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이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걸 볼 때면 장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없는 건 나의 선택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에 집중하자. 


장은 산이 준 선물을 팔아먹고 살았다


장은 집 앞의 산을 누볐다. 산에는 돈이 되는 것들이 있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귀한 것들이 장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장은 산이 준 선물을 팔아먹고 살았다. 장은 묵묵히 어머니와 자신의 생계를 위해 매일 산을 올랐다. 어느 날 장은 숲을 헤치고 산을 넘다가 사람들을 만났다. 마을 사람들과 스타일이 좀 다른 말재간이 좋은 중년의 남녀들이었다. 지나는 길에 마주친 그들은 친절했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다크네이비)


장에게 산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묻고 가져온 물 한 잔을 권했다. 장은 산 너머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잠시 그들 옆에 앉아 물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들은 엄청난 미모를 가졌다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얼마나 예쁘길래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만 하는 걸까. 목소리도 얼굴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장은 누군가의 대화만으로 사랑에 빠졌다. 좀처럼 찾을 수 없던 자신의 사랑이 산 너머에 있을지도 몰라. 장은 다음날부터 사랑에 빠진 그녀가 있는 산 너머 마을까지 다녀왔다. 


소문은 계속해서 거짓을 덧입으며 나아갔다


그녀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경비가 삼엄한 커다란 집. 그녀는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당연히 그녀를 볼 기회도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피가 뜨거워지던 장은 참을 수가 없었다. 눈을 마주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장은 거짓도 진실로 둔갑시키는 소문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사실은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마을의 아이들에게 슬쩍 던졌다.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그녀는 밤마다 남자를 방으로 몰래 불러들이는 부끄러운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게 뭐라고. 남자가 있다는 건 그녀에게 치명적인 흠이 됐다. 소문은 계속해서 거짓을 덧입으며 나아갔다. 결국 그녀의 부모 귀에 들어갔고, 그녀는 집에서 쫓겨났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다크네이비)


쫓겨날 줄 알았다는 듯, 산 너머 마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은 그녀의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났다. 그 소문의 출처가 자신이라는 건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갈 곳 없는 그녀는 눈앞에 나타난 친절한 훈남에게 빠져버렸다. 자기를 망가뜨린 남자라는 것도 모른 채. 둘은 산을 넘어 장의 마을로 향했다. 장은 그렇게 사랑을 쟁취한다. 말 같지도 않아, 장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분노했었다. 진실을 밀어낸 거짓에 대해, 자신의 비루한 목표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덧입힌 비열함에 대해 화가 치밀었다. 장의 부부가 진짜 사랑에 빠져 해로했다는 건 나중 일이고, 어쨌든 정정당당하지 않지 않은 일이라고 성을 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거야


인터넷 소설 깨나 보던 옆자리 짝꿍은 그런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었다. “쯧쯧, 사랑을 이렇게도 몰라.” 나는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순 거짓말 뻥만 가득한데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겼다. “잘 생각해 봐. 소문이니 과정이니 그런 거는 아무 의미가 없어.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사랑이 이루어졌다는 거야. 마침내 이루어진 사랑인 거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위해 돌진한 남주와 그 남자를 알아본 여주만 존재하는 거야. 사랑 얘기는 사랑으로 받아들여야지, 분석하지 마. 남주 이름도 너무 멋져. 장이잖아. 종, 중 아니고 장.” 짝꿍은 로맨스 소설의 페이지를 닫듯 국어 교과서를 덮으며 책상에 뺨을 대고 엎드렸다. 천년 전의 사랑이라니, 라고 되뇌면서.  


무왕의 지시로 백성들은 못을 메우고 긴 회랑이 이어지는 커다란 절을 지었다


십 년 전인가, 익산에 갔다가 공사 중인 미륵사지를 지나며 또 한 번 일행들과 서동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다. 미륵사는 사랑을 이룬 장과 선화가 지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부부가 된 둘은 절에 가고 있었고 산 아래 못 가에 다다랐다. 미륵삼존이 나온다는 영험한 못 가를 그냥 지나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장이 수레를 멈추게 했고, 일행 모두 미륵불을 향해 경례를 건넸다. 그때 선화가, 이곳에 미륵불을 기리는 큰 절을 지으면 어떻겠느냐고 말했고 장은 선화의 말을 들어줬다. 대부분의 이야기 속 남자 주인공들이 그렇듯 장은 어느새 왕이 되어 있었다. 장이라는 이름 대신 그를 무왕이라 불렀다. 무왕의 지시로 백성들은 못을 메우고 긴 회랑이 이어지는 커다란 절을 지었다. 


남은 것이라곤 무너진 채 살아남은, 서쪽의 외로운 석탑 하나뿐이었다


천년하고도 4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세월에 풍화되어 다 사라진 그곳에 둘의 흔적을 찾기 위한 발굴이 시작됐다. 목조 건축물은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이라곤 무너진 채 살아남은, 서쪽의 외로운 석탑 하나뿐이었다. 그 주변을 파헤치니 늪지에 세우느라 높은 주춧돌로 받쳐진 터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사랑의 흔적이어야 하는 절 터에서 사리봉안기가 발견됐다. 발원문에 그곳을 세운 건 ‘백제 왕후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선화가 아닌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한 것이다! 장,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진실은 장과 장의 여인만이 알고 있겠지


이들의 사랑은 현재 수수께끼다. 학자들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사택적덕의 딸은 선화공주가 사망한 뒤 들인 후처일 거라는 사람고 있고, 후궁일 거라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선화공주와의 이야기는 픽션이라는 사람도 있다. 진실은 장과 장의 여인만이 알고 있겠지. 학창 시절 짝꿍의 말대로 따져 묻지 않을 것이다. 그저 마침내 사랑을 이룬 이야기로 마음속에 남겨두기로 했다. 미륵이 도래한 세상을 용화세계(龍華世界)라 부른다고 한다.


외롭게 혼자 남은 서쪽의 석탑은 동탑이 복원되면서 조금 덜 쓸쓸해 보인다


그 세계는 사시사철이 화창하고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곳이다. 사시사철 화창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화목하길 바라며 사랑하는 두 남녀가 못을 메워 지은 절. 이제 그 절터는 초록의 잔디가 너르게 펼쳐져 있다. 잔디 사이 주춧돌이 놓여 있고, 터에서 출토된 석조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외롭게 혼자 남은 서쪽의 석탑은 동탑이 복원되면서 조금 덜 쓸쓸해 보인다. 


미륵사지를 거닐면 풋풋한 기운이 느껴진다


무왕의 사랑이라고 부르기보다 원래 그의 이름을 붙인 사랑 이야기가 좋다. 미륵사지를 거닐면 풋풋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모하는 마음을 주체 못 해 꾀를 냈던 청년 장의 씩씩하고 설레는 마음이 손에 잡힐 것 같다. 오래된 사랑 이야기가 있는 절터에서, 애처롭게 남은 탑 앞에서 많은 청년들이 사랑의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이번 반려길 산책을 함께한, 나의 반려신발 르무통 스타일2 (다크네이비)


사랑, 사시사철이 화창해지는 마법. 미륵사는 사라졌지만 그 땅만큼은 사철 화창한 세계로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곳을 걷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면서.



반려길이란?

길을 입양해서 가꾸며 평생을 돌보는 나의 반려길 프로젝트, 르무통이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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