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릇을 보며
우리가 나눌 대화를 상상해요
도자기 가득한 이천의 거리
싱그러운 녹음 아래 흰색 테이블보를 씌운 야외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앞마당이라기보다 가족들만 아는 뒤꼍의 숨은 장소 같다. 숲으로 이어지는 마당의 끝부분쯤. 부드러운 둥근 잎을 늘어뜨린 활엽수가 다정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며 길을 만든 덕에 잡초 하나 없이 고운 흙바닥이 하얗게 빛난다. 나뭇잎이 만든 그림자로 얼룩진 테이블 위에는 물이 담긴 듯한 커다란 은주전자와 아담한 사이즈의 은제 티포트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원형 테이블의 아래쪽으로 아름다운 접시 위에 찻잔 세트와 냅킨 3명분이 놓여 있다. 올리브오일, 발사믹, 화이트 비니거가 담긴 예쁜 유리병을 모아 놓은 은제 랙과 과일을 담은 접시와 디저트를 보관하는 케이크 돔이 보인다. 그사이 빨간 꽃 한 송이를 꽂아 무심하게 멋을 낸 목이 긴 유리잔이 곁들여져 있다. 테이블 곁으로 주름이 풍성한 흰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 쟁반에 유리병을 받쳐 들고 다가온다. 그 여인의 사이로도 은주전자의 표면으로도 의자 위로도 햇빛이 사정없이 떨어져내린다. 무대 위 실수로 켜진 조명처럼 사방으로 골고루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스웨덴의 20세기 화가 한나 파울리의 작품 <아침 식사 시간 breakfast>다. 아직 더웠던 8월의 스톡홀름에서 이 작품을 만났었는데 얼마 전 우리나라에 전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가 다시 한참을 보고 왔다. 잠깐 한나 파울리를 처음 만났던 스톡홀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8월의 스톡홀름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북쪽의 도시는 백야의 시기에도 냉기가 살아 있었다.
스톡홀름은 다른 유럽에 비해 길도 단조롭고 건물도 심플했다. 키가 크고 표정 없는 사람들이 무덤덤하게 거리를 지나갔다. 관광객에게 자신들의 일상을 내어준 여느 유럽 사람들 같지 않았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호들갑스럽지도 너무 차분하지도 거칠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눈금의 딱 정중앙에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아닌 0으로 수렴되는,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밋밋한 사람들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유명하다는 관광 스폿을 전부 다녀온 뒤 남은 며칠은 그저 걷자는 생각으로 골목골목을 걷기로 했다. 그들만의 커피 문화인 피카가 있어 동네마다 작은 카페들이 많았는데, 골목마다 있는 동네 카페를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지도도 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골목을 걸었다.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걷다가 나는 한낮에 은은한 조명이 켜진 창과 마주하게 됐다. 타원형의 테이블이 놓인 누군가의 거실이었다. 디자인 체어 6개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테이블의 가운데로 베르판의 조명이 떨어졌다. 테이블 위엔 로스트란드의 몬아미 시리즈의 식기들 그리고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이딸라 화병에 튤립이 가득 꽂혀 있었다. 남의 집을 들여다보는 게 실례인 줄 알면서 나는 점점 앞으로 다가갔다. 한나 파울리의 그림을 보듯 누군가의 일상을 하나하나 살폈다.
북쪽의 추운 도시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표정은 각자의 일상 속에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었다. 한나 파울리의 그림 속 테이블과 누군가의 거실을 통해 만난 테이블. 그 위의 매일 쓰는 별것 아닌 사물들이 놓여 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상의 사물들. 별일 없는 어느 하루 그 순간의 웃음과 대화, 들숨과 날숨의 특별함. 인생에서 가장 필요하고 또 가장 중요한 건 매일 쓰는 접시나 그릇, 컵과 화병 같은 테이블 위의 것이었다.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룬 채 일만 쫓던 나에게 그 사물들은 깊은 위로가 됐다. 한낮의 햇살과 한밤의 불빛을 받아내는 아늑한 테이블과 식기 몇 개만으로도 충분히 눈부신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테이블을 외롭게 두지 않기로 했다. 테이블을 바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의 개인이 각자 고립되어 있을 때 나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복잡하게 엮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고, 혼자 지내는 게 훨씬 내면을 풍성하게 해준다고 믿었다. 습관은 코로나 이후에도 이어져서 그게 편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일상이 납작해졌다. 단순하다는 표현으로 전달할 수 없는 간이 되지 않은 음식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간이 되지 않는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모든 감각을 잃게 하듯, 내 생활도 갈수록 감정이 흐릿해졌다.
이천 도자기마을을 찾은 건 그때부터였다. 식기를 산다는 건 그 그릇을 앞에 놓고 나눌 대화를 미리 상상해 보는 것이기도 했다. 친구들이 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별것 아닌 평범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특별해졌다. 편한 신발을 신고 모아둔 에어캡을 넣은 커다란 에코백을 메고 도자기 마을의 입구에서 끝까지 걷는 일은 그래서 신이 났다.
12만 평 가까이 된다는 커다란 마을이지만 상점마다 공방마다 모양과 빛깔이 제각기 다르므로 지루한 줄 몰랐다. 걷다가 만나는 흰 백자, 수더분한 옹기와 테이블에 올라갈 맛있는 것들을 조용히 품고 있는 항아리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어느 날은 가방 가득 득템을 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빈 가방으로 왔다.
어느 쪽이든 괜찮았다. 가만히 창 너머 진열된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그릇을 보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어쩌다 연락이 뜸해져 버린 오랜 친구나 남보다 더 어색해진 사촌들이나 한때 일거수일투족을 나눴던 옛 동네의 이웃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안부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
도자기 마을을 걷는 건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을 기억해 내는 일이다. 한낮의 햇살과 한밤의 불빛 아래 아담한 나의 테이블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은 벗을 생각하는 일이다. 인생의 중대사는 이런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나 파울리는 그림을 공부하던 파리에서 함께 유학 중이던 화가 게오르크 파울리와 결혼했다. <아침 식사 시간 breakfast>는 결혼한 해에 완성된 작품이다. 한나는 결혼 후 육아와 가사에 더 힘을 쏟았는데 <아침 식사 시간 breakfast>이라는 작품을 그린 한나라면 화가 이전에 가정주부로 살아야 하는 삶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테이블 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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