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엄마는 남편이 없지만, OO 이는 아빠가 없는 게 아니야.
8살 남자아이, 5살 여자아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두 존재.
나는 금메달리스트이다. :D
이혼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지만,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러한 책임의 중심에는 '육아'에 대한 역할이 있다.
부모님이나 주변의 누구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서 아이들의 등하원과 식사, 학원과 숙제를 챙기고, 더운 날 아침저녁으로 목욕을 시키는 일, 배 위에서 서로 잠들려는 아이들을 양팔 베개를 해주며 재우는 일.
가끔 배 위나 다리 사이에서 잠들거나 새벽에 팔이 아파서 깨기도 한다.
그래도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내가 아이들을 지켜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나를 지켜주는 것 같다.
셋이 케미가 나름 좋아 같이 있으면 무척 재밌다.
지난 주말은 아이들과 함께 집안 대청소를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좋아하는 나는 집에 안 쓰는 물건은 바로 당근에 팔거나 나눔 하거나 또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정말 필요한지 고심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각자의 세계가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기지(아지트)에 뭔가를 자꾸 넣어두고 가지고 있으려 한다.
그래서 어느덧 보면 뭔가 장황해진다. 집안 바닥 여기저기 물건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아이들도 지금 집 상태를 보고 청소가 왜 필요한지를 얘기하니 선뜻 함께 청소에 나서겠다고 한다.
버릴 것, 남겨 둘 것 이렇게 나누어 놓고 엄마와 함께 정리해 보자고 했다.
하다가 자꾸 장난을 치거나 오랜만에 꺼내 본 장난감에 심취하여 옆길로 새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가 끝났다.
고마운 아이들, 엄마 혼자였음 안 했을지 몰라. 근데 같이 하니까 하게 된다.
청소가 된 집을 보더니 처음 이사 왔을 때처럼 넓어졌다며 쿵쿵 뛰고 좋아한다.
깨끗한 공간이 주는 무의식의 평화로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
볼 때마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자꾸 보게 된다.
그러다 첫째 아이가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남편이 없어?'
한 세 번째 정도 물어본 질문이다.
맨 처음에는 당황했고, 지금은 뭔가 아이한테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번 내 대답은 아래와 비슷한 편이다.
'응, 엄마도 남편이 있었는데, 같이 있으려고 엄청 노력해 봤거든. 그런데도 안 되는 걸 알게 돼서 같이 있지 않기로 결정을 한 거야. 엄마한테 남편이 없는 거지, OO를 엄청 사랑하는 아빠는 있는 거야. 알지?'
아이들은 2주마다 만나는 아빠와의 면접 교섭시간을 즐거워하고 있고,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상호 간의 험담이나 비방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아이들이 내 앞에서 아빠 얘기를 스스럼없이 자주 하는 편이다.
이렇게 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고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안정되었구나 싶다.
아이들이 자기 삶의 일부분으로 부모님의 이혼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엄마 아빠 각자의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충만한 사랑을 주고,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핑계 없이 변명 없이 주체적으로 삶을 결정하고 결정한 것에 책임을 지며 충실히 살아 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믿음의 유산'이다.
나는 지금 남편이 없어서 너무 좋다.
10년의 세월을 왜 그렇게 꾹 참고 견뎠나 할 정도로.
하지만 가장 좋은 때에 모든 일들이 순적하게 이루어졌음 또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어떻든 간에,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되었다면 나는 그 또한 견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아이들을 위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혼을 하고 싶어도, 또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스스로 두렵고 자신이 없어서 안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인생을 잘 살아왔다고 말하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는 두려움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힘들 더라도 정말 원하는 것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그 모습을 선물하고 싶다.
사랑해.
엄마는 너희를 많이 많이 사랑해.
나의 심장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