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끔 나의 용기를 시험하는 일이 생길 때
매주 연재하는 브런치에 글감을 채워 넣는 일이 종종 부담이 되곤 했다. 특히 이번 주는 더욱 그랬다. 소재가 떨어질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 걱정은 보기 좋게 기우에 불과했다.
정말 '대단히 멋진' 이벤트가 발생했으니까. 물론, 그 멋짐이라는 표현은 다소 역설적이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 삶을 다시 깨우는 강렬한 경험이 되었고, 진정한 강함을 깨닫게 해 준 특별한 기회로 자리 잡았다.
수화기 너머로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차 좀 빼주세요!차 좀 빼주세요!!”
공교롭게도 바로 옆집 아저씨였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이곳으로 오다가다 마주친 이웃분들께 주차 얘기를 대강 들었다. 나는 비어 있는 자리에 주차를 했고 별일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주차를 다하고 시동을 끄려는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시작됐다.
갑자기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차 빼세요! 차 빼! 여기 내 자리야.”
그 말투는 고압적이고 거칠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물었다.
“여기 비어 있던데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욱 황당했다.
“내 자리니까 빼라고 했잖아!”
반말과 고성. 너무나 무례한 태도에 나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저씨, 반말하시네요? 저도 애들 있고 짐도 많아서 오늘은 못 옮겨요.”
그 아저씨는 격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랑이를 하는데, 갑자기 배달기사가 그 아저씨에게 오더니
"OOO호 맞으시죠?" 물었다.
아, 이런 제길. 바로 우리 옆집이었다.
“너 여기 이사 왔지? 미친 아줌마네 이거. 앞으로 여기서 사는 거 힘들어질 줄 알아. 두고 봐!”
이유도, 배려도 없는 위협적인 태도였다.
나는 뒷자리에 아이들도 타고 있고, 앞으로를 위해서 태세를 빠르게 전환했다.
"아저씨, 여기다가 대서 죄송한데, 아이들도 있고 짐도 있어서 오늘만 좀 여기 댈게요. 양해 부탁드려요."
그날따라 다른 주차자리도 보이지 않았고, 아이들과 함께 얼른 그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아 사정을 하고 피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간 속앓이를 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최대한 그 자리를 피해 주차를 했다. 어쩌다 마주쳐도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며 살았다. 처음엔 무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그날 밤, 내가 늘 대던 주차 자리에 입주민이 아닌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전화를 여러 번 걸었지만 받지 않길래 옆자리에 잠시 차를 대 뒀다. 혹시나 싶어 아저씨의 차가 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가서 별소리하지 말고 차나 빨리 빼주고 말자.'
내려가니 아저씨는 이미 본인 자리에 차를 댄 상태였다. 다른 주차 자리가 많았는데도 굳이 내 차를 옮겨달라고 했다.
“차 빼 주세요! 당신 저번에도 여기 댔지? 어쩌고 저쩌고.”
“전화받자마자 지금 빼려고 왔잖아요. 어쩌라고요?”
나는 바로 차를 옮겨 주차하고 아저씨도 바로 이동주차를 했다. 주차를 끝냈는데도 그의 고성과 삿대질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는 112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녹음버튼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아저씨 : "너 통로에 있는 택배박스 있지, 다 치워. 내일부터 박스 있으면 내가 발로 다 차버릴 거야. 너는 아이 키우는 엄마가 인성이 안 됐어. 어쩌고" 삿대질과 반말을 계속하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너 이리 와봐!"
나는 이번에는 동영상 녹화 버튼을 켜고 들어갔다.
"내가 너 여기 우산 놓는 것도 얘기 안 했는데, 다음부터 보면 내가 다 짓밟아 버릴 거야."
비 오는 날 말리려고 잠시 펼쳐놓은 우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_-;;
나에게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과 고성, 막말, 반말, 비하하는 모습이 모두 영상에 담겼다.
그런데 이 아저씨한테서 술냄새가 났다.
"근데 아저씨, 술 드셨어요?"
"그래, 마셨습니다, 왜"
"아저씨, 그럼 술 먹고 운전하신 거네요."
속으로 "오호, 요놈, 당신 오늘 잘 걸렸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아,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술 먹고 이렇게 당당할 수가.
술 먹고 주차하는 것을 보았으니 내가 이 아저씨의 음주운전 목격자가 되기도 한순간이었다.
그때 도착한 경찰이 연락이 왔다. 나는 내려가서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아저씨가 술을 마신 것 같다고 전했다.
경찰은 시비 이런 것은 관심 없고, 음주운전에 꽂혔다.
그 아저씨에게 간이 음주검사를 했다. 면허취소 수준으로 나왔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경찰이 내 말만 믿는다며 경찰관 소속과 이름을 적고, 신분증 확인을 하며 계속 112에 전화해서 이 사람 경찰 맞냐고, 근무복은 사면되는 거 아니냐며,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했다.
경찰들은 고소고발 하고 신고자인 나는 무고죄로 고소할 거라는 둥 별 X소리를 해댔다.
나는 조금 먼발치서 그 광경을 보며, 요즘 한창 피어나던 인류애가 사그라지고, 갑자기 인간 혐오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가끔은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대충 패딩하나 챙겨 입고 갔는데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아님, 내 마음이 더 추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저씨가 한창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길래, 나는 집에 아이 둘 만 남겨놓고 온 상황이기도 해서 집에 잠시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얘기 좀 하고 택배박스도 치우고 오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는 '왜 나를 들여보내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경찰분들도 기세가 등등한 아저씨한테 밀리는지 나보고 들어가지 말라고 여기 좀 있으라고 핀잔을 줬다.
그르든지 말든지, 나는 아이들을 지켜야 했다. 어차피 집 앞이니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의 상태를 얼른 살폈다. 다행히 아이들은 이 상황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조금이라도 꼬투리 잡히기 싫어 혼자 낑낑대며 통로에 있던 택배박스를 모두 옮겼다.
그리고 다시 내려오라는 경찰의 전화.
그 아저씨는 경찰을 못 믿는다며 계속해서 깽판을 치는 중이었다. 다시 112에 신고해서 이 경찰관이 경찰이 맞냐며 확인하는 전화를 계속했다. 아저씨는 자기가 피해자인데, 가해자 취급을 한다며, 음주측정도 미루고 있었다. 결국 경찰차 한대가 더 오고 신원확인을 한 다음 머리수가 많아지니 찍소리 안 하고 음주 측정을 했다.
불쌍한 미친 똥이다.
내가 힘세고 덩치 큰 마동석 같은 남자였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 심보가 참 고약하고 괘씸하다...
아이들이 엄마가 계속 집에 오지 않으니 창문으로 '엄마~엄마~'이렇게 불렀다.
나는 창가 쪽으로 가서 손을 흔들며, '엄마, 여기 있어, 얼른 들어갈게.' 씩씩하게 대답했다.
음주측정이 끝나자, 경찰은 나에게 진술서를 써달라고 했다. 그런데 진술서를 다 쓰고 제출했더니 시비가 아니라 음주운전 건으로 신고되는 거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과 같이 있기도 하고, 저 아저씨가 해코지할까 봐 무서워서 연락한 건데, 그 건이 아니라 음주운전만 접수가 된다고? 중재할 것도 아니고 그럼 나를 도대체 왜 안 들여보낸 거야?
경찰들의 배려 없는 태도에 나는 화가 났다. (나중에 경찰분들께 사과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을 밤 12시나 돼서 겨우 재우고, 그 날밤 전기 충격기 같은 호신용 무기를 검색했다. 그리고 이 아저씨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 나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이리저리 가늠하기 시작했다.
혼자 아이 둘 키우는 엄마에게 찾아온 위기의 밤이었다.
내가 덩치 크고 힘센 남자였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아저씨가 나에게 반말과 막말을 던지며 삿대질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매일 운동하며 체력을 키워왔지만,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 힘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속상하게 다가왔다.
특히 내가 혼자 아이 둘을 키우는 모습이 주변에 알려져 있어서 더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 없이 나 혼자라는 사실이 그 아저씨에게 만만하게 보이게 한 건 아닐까.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내게 부족한 물리적 힘과 사회적 인식이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을 감고 누워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봤다. 괜찮은 척했지만, 많이 무서워하고 있었다. 나와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나와 아이들을 주의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겠다고 아무 걱정 말라는 응답을 받고 금세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어젯밤 사건을 맡게 된 교통조사 형사라고 하셨다. 그 아저씨의 음주운전 건을 조사 중인데, 내가 신고자이자 목격자로서 진술조서를 쓰는데 협조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옆집이 있어 어젯밤 별일 없었냐며, 신변보호도 요청하라고 했다.
경찰서를 방문해서 2시간에 가까운 진술조서를 마치고, 녹음파일과 찍어둔 동영상도 증거로 모두 제출하고, 신변보호 요청도 했다. 아이들이 있고 너무 근거리라 다행히 신변보호 요청이 바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나는 거치만 해두었던 블랙박스를 다시 세팅하고 현관문 앞 cctv 설치예약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두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 그래야 선명한 응답을 기대할 수 있기에 나는 생각하면서 계속 움직였다.
경찰에 신고되고, 주의를 받은 덕분인지, 요 며칠간 옆집 아저씨는 아주 밤늦게 들어오고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날의 녹음과 동영상 촬영을 다시 보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옆집아저씨도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 겁먹은 쫄보라는 것을 깨달았다. 쫄보들의 특징은 신체적 가해 등 직접적인 물리행사는 하지 않는다. 본인들이 그 상황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10년의 결혼생활에서 깨닫게 된 마음 읽기 훈련 덕을 톡톡히 본 순간이었다.
비록 며칠간은 안 그래도 바쁜 내 삶이 더욱 복잡해지긴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이 있었다. 나는 그 아저씨의 부당한 행동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나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행동을 취했다.
일요일 그날 밤의 공기가 무척 차가웠었다. 처음엔 두려웠고, 곱씹어보면 씁쓸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작은 승리감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의 무례함과 폭력적인 태도에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인분께도 영상을 보여드리며, 건물 내 CCTV 설치를 제안드렸고 주인분은 흔쾌히 알아보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참 마음이 좋은 주인분께서는 인형같이 이쁜 아이 둘 데리고 정말 잘 살아야 한다며, 항상 응원한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평소 같으면 쑥스러워 인사만 하던 나이지만, 주차를 하다 우연히 만난 이웃분들께도 적극적으로 이 일을 전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당장 어떻게 도와달라는 건 아니지만, 주변 분들이 함께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힘이 된다.
예전에는 "무너지면 안 돼!" 하고 붙잡느라 힘을 썼지만, 이제는 무너져도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을 알기에, 좀 더 의연하고 담대해질 뿐이다. 내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나는 끝까지 해낼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강함은 반드시 물리적 힘만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었다. 녹음기를 켜고, 경찰에 신고하고, 필요한 증거를 남기며 나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 내가 분명히 있었다.
내 약점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보완하려는 나의 선택과 용기가 진정한 강함일지도 모른다.
내게 필요한 건 세상을 향한 적대적 힘이 아니라, 내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당당한 엄마로 살아가는 용기와 지혜일 테니까. 이 경험은 내가 가진 약점과 한계를 직면하게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로서 강해지고 있다.
이러다 헐크가 될 것 같다. 하하!
우리 모두는 두려움보다 큰 존재이며, 다가오는 사건보다 귀한 존재임을 기억하길...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