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보다 훨씬
살짝 추워 알람이 울리기 전 4시 18분쯤 눈이 떠졌다.
서늘한 공기에 움츠려든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 줬다.
집이 워낙 따듯하지만, 이제 새벽에는 보일러를 틀지 않으면 꽤 춥다.
특히, 새벽녘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무릎이 시린 느낌이 있다.
쌀쌀한 공기, 새벽에 택배를 포장하고 발송준비를 해두었다.
별거 2년 차의 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왔다.
내일은 고대하던 메리크리스마스!
나는 예전부터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왠지 설렜다.
크리스천이라서도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주는 뭔가 몽환적이고 따스한 설렘이 아주 어릴 적부터 좋다.
아이들은 선물보다도 내일 유치원, 학교 안 가고 논다는 사실이 더 즐거운 듯하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갖고 싶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아이들에게 기쁜 감정으로 기억되었으면 해서 여러 차례 선물을 고심했다.
첫째 아이는 무한동력 진자 운동하는 장식품을 사달라고 했고, 둘째는 캐치티니핑 컴퓨터가 갖고 싶다고 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정확히 접수해야 한다고 해서 쿠팡 페이지를 보며 골라보라고 했다.
첫째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되니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는 듯도 하지만, 선물을 받고 싶어서인지 왠지 모른 척하는 느낌이다. :) ㅎㅎ
아직 순수한 둘째를 위한 티니핑 컴퓨터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제품이 없어 물어보니 유치원 같은 반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을 거라고 자랑했다고 했다. 아이 마음에 친구가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자기도 받고 싶었나 보다. 산타 대리인 엄마의 탐색 능력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다른 게 뭐가 있을까 하고 찾았다. 요즘 부쩍 소꿉놀이를 좋아해서 요리 만들기 세트를 사주면 좋을 듯싶었다.
감동인 것은 둘째는 소꿉놀이로 이쁘게 한 상을 차려놓고, 등원 전 이렇게 말해준다.
"엄마, 일하다가 배고프면 이거 차려놓은 거 먹어. 그럼 배고프지 않고 맛있을 거야."
엄마를 챙길 줄 아는 기특한 마음이 예뻐, '그 이쁜 마음으로 우리 둘째는 잘 살 거야.'
이렇게 혼잣말이 나왔다. 첫째 아들도 물론 이쁘지만 딸의 표현이, 또 둘째라서 그런지 귀엽고 이쁜 구석이 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엄마를 위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상을 차려준 적이 없는 것 같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둘째는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할까.
선물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교회에서 아이들 달란트를 모아 선물을 사주신다고 했다.
달란트를 넘은 금액은 입금드리겠다고 했는데, 2만 원이 넘지 않는다며 안 줘도 된다고 하셨다.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둘째의 감기가 옮았는지 첫째도 귀가 아프다고 했다. 일을 급하대로 마무리 짓고 아이를 데리고 이비인후과로 갔다. 둘째만큼 심하지는 않다고 했지만 건강한 아이들이 연달아 아프니 엄마인 내가 괜히 잘못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할 일은 많고 아이들이 아프니 정신이 아득해져 '하나님,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만 연신 돼 내었다.
병원 건물 1층에 파리바게뜨가 있었는데, 첫째가 초콜릿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기념 케이크를 샀다. 초코를 좋아하는 첫째와 딸기를 좋아하는 둘째를 위해 초코반 딸기반 케이크를 샀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서 들고 가니 왠지 부자가 된 느낌이다. 풍요로움이 마음 한가득 밀려왔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BGM으로 깔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과 '예수님 생일축하 합니다~'하면서 축하파티를 했다.
이렇게 셋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수 있어서 사건사고 이벤트를 무사히 넘기고 이 자리에 올 수 있어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예상치 못하게 일 최고 매출을 찍었다.
다음날 새벽, 오랜만에 말씀을 보는데,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런 구절을 봤다. 내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다 아시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조금 났다.
부지런히 움직인다고 했는데도, 10분 늦게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기념 예배를 갔다. 아이들이 혹여나 아플까 봐 미리 약과 해열제도 챙겨 먹이고, 선물 교환식을 위해 새벽에 선물도 정성스레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예배와 서로 가져온 맛있는 음식들을 나누며, 사랑의 마음을 나누었다.
나는 디저트 간식을 맡아 쿠팡 로켓프레시 새벽배송으로 교회로 도착하게 해 두었다. 예상대로 교회에 새롭게 온 손님들의 간식 선물이 많아 내 간식 선물은 앞으로 교회 식량으로 하면 될 터였다.
샐러드 파스타, 짜장볶이, 닭강정 등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을 보니, 그 정성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도 사람들에게 더 베푸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숨을 헐떡이며 겨우 참석에만 의미를 두어야 하니 감사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길어지자 힘이 든 지 찡찡거리기 시작했던 둘째는 캐치 티니핑이 그려진 귀여운 포장지의 가장 부피가 큰 선물을 맨 처음 받게 되었다. 좋았는지 연신 입이 귀에 걸렸다. 집에 와서 연일 소꿉놀이로 바쁘다.
정신없이 보냈던 2024년, 두 아이들과 즐겁고 안전하게, 또 값없이 품어주는 따뜻한 교회 식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감사인지......
다행히 아이들도 컨디션이 빠르게 호전되었고, 물어보니 정말 신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했다.
엄마 미션 성공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셋이 있을 때 느껴지는 평안한 행복감이 있다.
그리고 관계의 따뜻함을 경험하게 해주는 친구들과 교회가 있어 감사했다.
그렇게 별거 후 맞이한 두 번째 크리스마스는 내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지금의 일들이 마무리되고, 내가 좀 더 힘이 생기면 이혼 가정들이 함께 모여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받은 사랑을 더 크게 돌려주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아니, 이 마음을 그냥 묻어주지 말고 작게 할 수 있는 무어라도 내 주변부터라도 해봐야겠다. 내가 알고 있는 힘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사랑이기에.
Merry Christ & Happy New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