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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나무 Dec 30. 2023

사랑하면서 얻은 것은 서글픔 밖에 없는데

호스로우(1253~1325년), 서정시 1229번

이렇게나 비천한 내가

누구에게 마음의 슬픔을 고하리?

그대를 사랑하면서 얻은 것은

서글픔 밖에 없는데.


선풍이여! 내 마음의 상태를

마음의 주인에게 말하지 말아다오.

그대를 사랑하다가 온 세상이

혼도했다고 말하지 말아다오.


나는 그대와의 추억들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는데

마음이 이리 멍든 나를

그대 또한 잊지 않았으면.


씨앗을 탐하면서 찾아왔다가

덫에 걸려버린 새처럼

씨앗 같은 그대 볼의 점을 보고

나도 애상의 덫에 걸려버렸네.


신을 섬기면 낙원에 올라

처녀들과 영복을 누린다지만

나는 그대만을 원하거늘

굳이 신을 섬겨야 할까.


그대를 만나고 난 이래

그대가 다시 오기만을 희망했으나

내 온갖 생각들은 그릇되었고

내 모든 망상들은 부질없었네.


심판의 날에 나 호스로우는

내 사랑의 억울함을 신에게 호소하리라!

그대와의 재회라는 축복이

왜 끝끝내 이뤄지지 못했는지.



(페르시아어 원문)


이 시의 형식은 가잘(غزل ghazal), 즉 서정시이다. 가잘 시의 형식적 특징은 서정시 1110번 글에 소개되어 있다.


중세 무슬림들은 사후 낙원에 승천한 신자를 위해 후르(حور hur)라는 아름다운 처녀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낙원의 처녀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모욕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지상이 천국이 되는 게 아닐까?


이렇듯, 중세 페르시아의 서정시는 이슬람교의 이미지를 상당히 불온하게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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