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3
언젠가 한 번 다녀와야지 싶었던 서울은 3월의 막바지에 충동적인 여행의 목적지가 되어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 여천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몸을 싣게끔 하였다. 군 복무 시절 많이도 타곤 했던 ktx는, 제대 후 출근과 광주 방문 외에 특별한 이동사항이 없던 내게 있어 어느새 다소 멀어진 기억이 되어 있었다. 부지런히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엔 전라도의 시골길 풍경이 드러났다 흩어지길 반복하고 있고, 이 글을 쓰는 좌석 주변의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붙이며 이른 아침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고 있다.
나는 기차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기차와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 탑승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하철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던 광주였기에, 어렸을 땐 버스를 종종 이용하곤 했다. 성인이 되어 가끔씩 찾았던 서울에서는 지하철을 통해 움직였고, 입대 후엔 휴가를 나올 때면 늘 ktx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각각 시간과 장소, 상황이 달랐지만 정해진 선로를 유유히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빈 좌석을 찾아 앉을 때면, 왠지 모를 편안함과 더불어 어디론가 떠난다는 설렘이 공존하곤 했다. 이동하는 동안 재생할 플레이리스트를 세팅한 후,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차창 너머 변해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난 채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자기는 대중교통이 싫다며 얼른 차를 사고 싶다던 친구가 있었다. 이동 시간이 정해졌으며, 정해진 경로에 그저 몸을 맡겨야 하는 제한된 상황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럼에도 대중교통을 좋아하는가 자문했다. 출발과 도착 예정 시간은 고정된 채 변하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활동을 비롯한 기타 움직임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통제 불가능한 시공간 안에서 탑승객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간단한 독서와 영상 시청, 사색이 전부일 것이다. 얼른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다는 이용자의 간절한 바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차량은 그저 일정한 속도로 파도처럼 흘러간다. 그럴 때면,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무력감이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대중교통은 세상의 모습을 닮은 게 아닐까. 우리의 존재와 상관없이 세상은 스스로의 작동 원리에 따라 순환하며 움직인다. 그저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낚아채기 위한 존재의 부단한 노력을, 우리는 삶이라 통칭한다. 존재의 소멸로 귀결되는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자 건강을 챙기며, 변하는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군락을 이루고 사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결국 한계가 드러난다. 유한함의 법칙이 흐르는 세상 위에선 모든 게 마모되기 마련인 것이다. 통제의 한계를 맞닥뜨린 인간의 인식에는 세상의 부조리함이 틈입한다.
대중교통은 그러한 세상과 삶의 원리를 옮겨놓은 듯하다. 목적지를 향하는 차량은 묵묵히 흘러갈 뿐이며, 규정과 신뢰로 약속된 규칙은 신체적 자유를 일부 포기하게끔 한다. 소비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는 없기에, 탑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정해진 제약을 받아들이며 그저 몸을 맡기는 것밖엔 없다. 시간이 자본이 된 현대사회에서 이를 낭비라 여기며 가슴 아파할 수 있지만, 나는 도리어 잠시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순간을 감각하는 데서 오는 쾌감을 느낀다. 시공간을 치열하게 낚아채며 매 순간 지난한 삶을 살아오지 않나. 삶이 고통스러운 노력의 소산이라면, 불가항력적인 상황은 도리어 잠시의 쉴 틈을 부여한다. ‘아, 모르겠고, 그냥 밖이나 바라보자.’ 나태함을 지우개로 지우고, 그 위에 느긋함을 새겨 넣는다. 인식의 틈에서 벗어난 평화 속에는, 도착할 목적지에 대한 기대 또한 자리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기차는 오송역을 지나가고 있다. 충청도의 시골길은 전라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여전히 차량 안은 고요함이 감돈다. 옆에 커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이른 기상의 나른함이 주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매번 뻣뻣한 군복을 입은 채 앉곤 했던 의자는, 청바지와 폴리 혼방의 스웨터가 닿으니 한결 편안하다. 약 한 시간 뒤면 서울이 보일 것이며, 부산한 움직임과 함께 탑승객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보면, 열차에서 잠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목적지로의 이동 자체가 현실로부터 유리된 하나의 꿈과 같으니 말이다.
한때 뉴진스의 ‘홍대 밈’이 유행했다. 릴스와 숏폼을 통해 우후죽순으로 퍼지던 밈은 당시 복무하던 부대에도 닿게 되어 생활관 복도 곳곳에서는 하입 보이 챌린지가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밈이 퍼지는 과정을 보며, 마케팅 담당자는 무릎을 쳤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홍대는 힙함의 상징이 아닌가! 유입과 복제가 용이해진 시대에, 트렌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몰개성화되어 대중의 피로를 유발한다. 그의 반대급부로 떠오른 ‘힙함’은 과거 Y2K와 같이 개성과 주류에 대한 반항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뉴진스’라는 돌풍의 중심에는 바로 이 힙함이 있는 것이다. 한동안 판을 달구었던 홍대 밈은 뉴진스에 ‘힙’이라는 디자인을 이식하기에 강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사실 뉴진스는 태생부터 이러한 힙함을 차용하여 브랜딩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민희진 디렉터는, 그룹의 데뷔 앨범을 담당할 전속 프로듀서로 250과 FRNK를 영입했다. 기성 K-POP 음악 프로듀서가 아닌 이들은 힙합의 테두리 안에서 본인만의 색깔로 작업물을 내던 사람들이다. 기존의 대중 친화적 작법으로 시장에 접근했던 문법을 비틀어, 뉴진스의 앨범은 장르 특화적 전문가들이 일말의 대중성을 녹여 탄생한 복합적인 산물이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흐름에 질렸던 대중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이후의 앨범들 역시 이러한 흐름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싱글 <Ditto>는, 역시 250이 저지 클럽을 차용하여 작곡하였으며, 작사로는 인디 씬에서 흐름을 만들어 내던 검정치마와 우효가 참여했다. 더블 싱글 <OMG>의 뮤직비디오는 돌고래 유괴단이 전담했으며, 이 앨범의 첫 프로모션은 침착맨 유튜브에서 이루어졌다. EP 2집 역시 250과 FRNK, 빈지노와 김심야 등 뚜렷한 예술적 성취를 보인 이들의 협업으로 탄생하였다. 곡 길이가 2분 대에 머무르는 이지 리스닝의 기류를 따라가면서도, 그 안의 여러 요소들은 치밀한 사유를 통해 세심히 직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민희진 디렉터가 한 방송에서 밝혔던 헤겔의 변증법 원리가 투영된 작업물들은, 뉴진스의 성장 동력이 우연에 기인한 것만은 아님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뉴진스의 이러한 흐름 역시 언젠가는 공식화되어 순간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뉴진스의 성공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공산품이 어떻게 특이점을 성취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 기저에는 흐름의 본질에 대한 명징한 사유가 있으며, 외연을 읽는 시선의 감각 또한 공존한다. 이는 아직 성장 중인 이 그룹의 다음 앨범이 어떤 흐름을 선보일까 많은 기대를 품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