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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Jul 04. 2024

사랑은 운명적으로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언젠가 시각장애의 본질은 보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이 듦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각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타인의 감각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 위험한 재회


주인공인 기태는 해트 트릭을 하다가 동맥이 터져 병원에 가게 된다. 그는 앞으로는 화내는 일도 하면 안 되고, 되도록이면 인생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연습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 회복을 취하며 과거의 연인 화영을 생각한다. 백두대간 공주를 마치고 온 기태에게 화영은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방치하고 남는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기태는 그게 아닌데,라는 생각만 한 채 그녀의 말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결국 화영은 기태를 향해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헤어진다. 아마도 그때 첫 번째 동맥이 터진 것이 아닐까, 하는 경험을 회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 남은 동맥의 막, 이것마저 터진다면 기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고, 살아남지 못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에서 우연히 화영을 만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는 장치를 위트 있게 사용하는 작가의 발상이라 생각하여 웃음이 나왔다.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냐는, 또는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이쯤 되면 기태와 화영은 서로를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들은 전보다 훨씬 서로에게 솔직하다. 우리가 왜 헤어졌지, 네가 다른 남자를 만났어, 그리고 너는 나를 방치했어, 와 같은 각자가 아는 이야기. 물론 그것이 사실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화영의 마지막 말,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사랑하면 절대 헤어지지 않아. 이 부분은 나의 완벽한 공감을 얻었다는 소소한 의견, 사랑하면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들도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게 절대적인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 일련의 경험으로 인해 스스로에 대해 약간 실망하는 경험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진짜 사랑은 그런 것이라 정의해 본다.     


그리고 기태는 하나의 동맥막을 두고 말한다.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얼마나 로맨틱하고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일까. 어떤 사랑은 끝을 말하며 영영 잊히기도 하고 추억과 재회라는 과거의 시간에 묶여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말한다, 기태가 그렇게 계속 그의 생을 이어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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