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아침에 눈을 뜨고 동네를 거닐다가 이르게 핀 꽃을 보았는데 그것이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 보여 애통하였다 점심에 사촌 내외가 찾아와 함께 식사하였는데 아이가 복통을 일으켜 황급히 병원에 갔다 저녁에는 오래도록 기다려왔으나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었는데 결국 다 읽지 않고 그만두기로 하였다
꿈에서는 기쁜 얼굴로 웃는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이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아 곤란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동네를 돌다가 전날 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생각났는데 꽃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니 치우지 않은 책상이 보여 그것을 정리했다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배불리 먹었고, 상하기 직전의 키위를 꺼내어 잘라먹었다
종종 마당에 빛이 내려와 한동안 머문다 떠났다 자주 슬픔을 느꼈으나 까닭이 떠오르지 않았다
/음애
일상생활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하지만 우리는 그 간극을 보는 사람. 너무나 평범하고 어쩌면 고루한 그 인생을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넘길 때의 여운, 그것은 부정적인 정서이며, 애처로움이다. 매번 큰 이벤트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직관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너무나 몽상적이다. 하지만 일상이 주는 낯섦이 있다. 행복과 기쁨 긍정적인 이야기에 대한 간구와는 다른, 오히려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한 일상을 깨고 부수고 싶다는 충동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모두 박살내고 싶다는 파괴적인 감상을 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암전, 심호흡 한 번이면 누그러질 감정이다. 다시 시작된다 처음부터 다시 쌓인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들이.
표기에 오류가 있었어요
여기 표기가 표고라고 되어 있어요
사무실에서 선생님이 내게 말한다
이런, 정말 그렇군요
나는 표고를 표기로 고친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선생님이 묻지만 나는 그냥 머리만 긁는다
역시 영혼일까요?
정오가 지나면 점심시간도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시 일해야 한다
나는 회사를 나와 오류동 집으로 돌아간다
/ 증오
시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대부분의 화자가 정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다정하고 조금은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차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약간의 서사만 첨가한다면 시의 화자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종종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 다정하게도 죽지 마세요,라고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화자는 바라보고 있는 호수의 아름다움에 회의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아름답지? 또는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에 대한 환멸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것에 대해 자기부정이라는 단순한 우울감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화자는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느 감정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해지지 않은 채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단 한 번도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고 삶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것에 의아한다. 나는 여기에 덧붙인다. 나는 그런 것들에 큰 환멸을 느낀다고.
“저기요, 죽지 마세요.”
누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마포대교를 걷다 가만히 멈춰서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수면에 반사되는 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아름다움이 싫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왜 아름답지?”
그건 네가 해안 절벽에 돌기둥이 서 있는 풍경을 보며 한 말이었다
돌기둥을 보고
사람을 기다리다 돌이 된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정말 사람 같네”
내 말에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 하해
하늘은 에메랄드빛
마음은 잿빛
주말의 어둠을 짊어진 아이들이 줄 서서 대화하고 있다
- 죽고 싶다는 생각은 일주일에 한 번만 하자
- 왜?
- 건강을 위해서
(잠시간의 침묵)
점점 줄이 줄어들었고 그 줄의 끝에는 아이들의 어둠이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미술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으므로
아무도 기록될 수 없다
밖으로 나와서는
건강을 위해 허리를 폈다
/ 미술관에 갔어
항상 웃고 있는 사람을 조심하세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다지 나에게... 큰 흥미를 주지 못한다. 그것은 그것 자체일 뿐 아무런 의미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계의 이세계를 좋아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없이 착하고 다정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음험한 상상력 같은 것들을 헤집고 싶은 것이다. 보이는 것만 믿고 들리는 것만 듣는 단순 명료한 삶이 더 현실적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너머의 것을 보기 원한다.
머그잔에 얼음을 담았고
거기 커피를 내렸습니다
쩍 하고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바깥은 분홍 하늘
어제도 그제도 봤지만 매일 놀라는 마음입니다
요즘은 휴거가 제철입니다
창밖을 내다보면
아이와 놀던 엄마가 혼자 들려 올라간다거나
산책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나온 사람들이 놓여 있다거나
봄날 저녁의 풍경입니다
너는 웃으면서 이곳을 보고 있습니다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반투명 처리가 되었군요
플레이한 적도 없는 게임의 엔딩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익숙한 일입니다
/ 중계
책을 펼치면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그게 참 재미있다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개를 끌고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을 구하거나 끝낼 때도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게 진짜는 아니라는 것
이것은 네가 쓴 책의 부분이다
하늘이 푸른데 하늘이 푸르다고 책에 쓰여 있다 마음이 무너졌는데 슬픔에 빠져 매일 술에 취해 있다고 쓰여 있다 내 영혼의 불꽃, 그렇게 쓰여 있다 눈밭 위의 고독이라고도 쓰여 있다 너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책에 있는 것
멀리 지나가는 새들의 이름이 책에 있다 새의 모양과 생활사도 있다 책을 덮으면 새를 무서워하는 네가 있고 흘러가는 시간이 있고 새가 지나갔으나 보이지 않는 궤적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모르는 것
너는 사람들이 잠들면
아주 큰 책이 나타나 모든 것을 덮기 시작한다고 썼다
/ 내가 아는 모든 것
시적 재현은 그에게 랑그와 파롤로 이루어진 발화 행위라기보다 이미지를 현상하는 행위에 가깝다* (볼 수 있는 것에는 이미지를 이루지 않는 것도 있으며, 오로지 말로만 이루어진 이미지들도 있다. / 자크 랑시에르)
글을 갈무리하며, 마음이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볼 수 있는 다양한 현상들이 있다. 시인은 그것을 보여 주려고 다양한 장면들을 연출해 낸다. 그 과정에서 나는 파노라마의 표현 방식을 건져냈다. 옴니버스식의 각각 분리된 내용이 아닌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그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고 말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별도 사랑해야 할 수 있고, 만남도 사랑이 있어야 시작이 된다, 내가 사는 생활과 삶을 둘러보면 결국 사랑이 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다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유약하고 연약하며 그것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과는 다르다. 그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 주세요, 귀하게 여겨 주세요, 그 마음은 정말 소중한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