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여름과 루비
박연준 시인의 책을 몇 권 샀었는데 첫 장편소설도 구매했었다. 이번 책에 대해서는 두 가지 형식으로 써 보려고 했다. 하나는 줄글의 형식, 하나는 원래 내가 쓰던 작품을 발췌해서 짧게 감상을 남기는 것으로. 모쪼록 여러 모로의 시도가 나의 글 쓰기에 좋은 영향을 미쳐 주기를, 최근 블로그에도 썼지만 쓰지 않으면 닳기 마련인가 보다. 책 읽기도 글 쓰기도 매일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핑계를 대기 좋아졌다. 그래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다짐을 해 본다.
소설이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 화자는 여덟 살 소녀 여름이지만 등장인물과 이름이 갑작스레 등장하여 친절한 글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인 나는 여덟 살 소녀로 이름은 여름이다. 젊은 아버지가 나를 낳고 고모에게 맡겨진다. 그렇게 보수적이고 예의를 따지는, 고질적인 신경증을 가진, 피아노 네 대로 학원을 운영하는 고모와 혼이 날 때 옆에서 (주인공에 말에 따르면) 사랑의 속삭임으로 혼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겨울이라는 친척 언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분명 고모의 엄격함이 나에게도 불안함과 긴장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주었지만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겨울과 여름이 등을 밀어주는 과정을 볼 때 다정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동화와 동요를 필사하고 엄격하지만 나는 이 행동이 분명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이 되었다. 배운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적 허영심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젊은 아빠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와 새어머니라는 호칭을 붙여 주고 새어머니와 나는 자주 싸우곤 한다. 여자와 나는 열여섯 살의 차이를 가지고도 소위 ‘동등한’ 다툼을 한다. 너무나 편견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편견이 없는 것과 같다는 문장을 떠올린다.
그렇게 여름은 루비를 만난다. 좋아하는 아이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사랑을 감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중 루비가 말한다. ‘누가 너를 괴롭히는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니?’ 그리고 여름은 그제야 이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느끼게 된다.
루비는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허세를 부리지 좋아한다. 남들에게 우스워 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거짓말에 대한 훗날의 증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루비와 평소 아는 체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여름은 결핍이 있는 아이이다. 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결핍인데, 친척 언니의 이름을 딴 겨울 피아노와 괴테의 신곡을 사 주는 루비의 어머니를 보며 이런 점들을 상기한다. 다만 글에 적히기로는 이런 것들이 자신의 결핍이라는 점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루비와 여름은 친구이지만, 친구가 아니다. 일정한 거리가 있다. 루비에게는 친구가 여름뿐이지만 여름에게는 많은 친구 중에 루비가 있다. 다만 루비는 여름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뒤라스의 글이 나왔을 때에는 나도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열두 살에 읽는 뒤라스라, 역시 루비는 멋진 녀석이군 생각했다. 와중에 어린 여자아이들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데 그 부분이 무척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었지만 동시에 축축한 느낌이 들게 하는 여름의 말, 루비 너는 ‘난삽하다’고 이후로 둘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암묵적인 절교의 상태가 되었을 때 여름은 토를 하고 코피를 흘리면서도 학교에 빠져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학교를 간다. 이런 부분마저도 나의 큰 공감을 샀는데 나 또한 초, 중, 고등학교를 개근했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 법이지만, 성실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나 없나 생각해 보았다는 농담. 그리고 여름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계단에 토를 하는데 알고 보니 루비가 옆반에서 나와 그 토를 치웠다는 이야기를, 루비가 자신의 엄마 미옥과 새벽에 떠났을 때에라야 듣게 된다.
세상에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 마음 아픈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