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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May 27. 2024

나만의 생각에 글을 입히다.

제32회 군포백일장 (24. 5. 11.)

모름지기 뜻을 강구하고 고찰하여 그 정밀한 뜻을 깨달았으면 깨달은 바를 수시로 기록해 두어야만 바야흐로 실제 소득을 얻게 된다진실로 외곬으로 낭독하기만 한다면 실제 소득이 없을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말씀이다.


언어의 4대 영역 중 가장 어려운 영역이 바로 쓰기다. 매일 같이 한국말로 말하며 휴대폰이나 책 속의 한글을 보며 살지만, 실상 내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햇살 좋은 봄날, 아이들과 함께 백일장에 나가기로 했다. 작년에 처음 백일장에 다녀온 후 아이들의 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 경험과 추억을 토대로 올해도 여러 사람과 함께 글 쓰는 재미를 느껴보기로 한 것이다.

     

지난 5월 11일. 한국문인협회 경기군포지부에서 주관하는 제32회 군포 백일장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집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서 글쓰기 축제가 열린다니 아이들과 알찬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철쭉동산에서 예정되어 있던 백일장은 비 예보로 인해 군포시 평생학습마을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탁 트인 야외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간식을 먹으며 끄적이는 맛이 좋은데, 그걸 포기하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궂은 날씨에도 대강당에 마련된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우리는 옆 건물에 있는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참여가 가능한 이번 백일장에는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또래 아이들을 유심히 살피던 첫째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저는 산문 쓸래요. 수필에 자신 있거든요.”     


이에 질세라, 둘째 아이가 말했다.   

  

“저는 운문이요. 저는 동시 쓰는 게 재미있어요.”   

  

심사 결과와는 무관하게 아이들의 이런 말이 듣고 싶어 가깝지 않은 거리를 달려왔다. 글 쓰는 게 싫지 않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하얀 원고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면 아주 큰 성공이다. 

    

우리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시제가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군포문인협회장의 개회사가 끝나고 드디어 시제가 발표되었다.    


 

“엄마는 어떤 글감으로 쓸 거예요?”

“음, 엄마는 스마트폰에 대해 써보고 싶은데?”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대강당 입구에서 빗방울을 맞으며 깔깔대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이 되어 글감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떤 글감을 골라 어떻게 나만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까.     



글쓰기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주어졌다. 글감이라는 뿌리에 나의 경험담이라는 물을 주면 땅속에서 작은 새싹이 쑥 올라온다. 거기에 나의 진솔한 감정까지 덧붙이면 멋진 한 송이의 글꽃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녹록지는 않지만, 한 편의 글이 완성되고 나면 기쁨과 성취감이 뒤따른다.     

모두 조용히 글을 쓰는 가운데 둘째 아이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엄마, 저 다 썼어요! 제 글 한번 보실래요?”

“와 기발한 표현이 정말 많네.”    

 

아이다운 순수한 동시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엄마가 어휘나 문법을 수정하는 일은 없다. 아이가 쓴 글 그대로가 가장 멋진 작품이니까.     


연필을 든 채 이야기를 떠올리는 또래 친구, 끝까지 자리에 남아 원고지를 채우는 할머니, 두꺼운 안경을 쓰고 근사한 문장을 고민하는 아저씨를 보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겐 즐거운 추억과 생생한 배움이 된다. 

원고지가 비에 젖지 않게 품 안에 꼭 안은 채 대강당으로 들어가 완성된 글을 제출하고 나면 글쓰기 한마당은 끝이 난다.     


문화의 뿌리가 되는 우리 글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성장했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백일장에 참여하고 싶다면 ‘엽서시문학공모전’ 사이트에 접속하면 된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백일장에서 원고지에 글자를 꾹꾹 눌러 나만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값진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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