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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Jun 03. 2024

아이들과 종교여행 떠나볼까요?

명동대성당 (24. 5. 18.)

『천주실의』는 서양 신부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 즉 하나님에 관한 책이었다. 서학이라고도 부르는 천주학은 조선에선 금지된 것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외사촌 윤지충이 천주교 의식에 따라 어머니의 초상을 치른 것을 계기로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영서, 2009, 『책과 노니는 집』, 문학동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자리 잡기 위해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는 많은 순교자의 희생으로 종교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천주교가 걸어온 역사의 길을 밟아보자.     


지난 주말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서울의 명소, 명동으로 갔다.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천주교 신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명동 순례 역사길’ 탐방에 나섰다. 2주 전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에서 예약한 이번 탐방은 사적 258호로 지정된 명동대성당을 둘러보고, 천주교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역사 도보여행의 출발지는 우리나라 천주교의 상징인 명동대성당 앞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도심의 마천루 사이를 뚫고 하늘을 찌를 듯 첨예한 첨탑이 보인다.


      

명동대성당 옆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오늘 순례 역사길을 안내해 주실 해설사 선생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과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 여행을 함께 떠날 가이드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가족은 무교다. 그렇기에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신앙심과 종교가 가르치는 진리에 관해 평소 궁금했다. 특히 천주교는 우리 땅에 뿌리내리기까지 지난한 박해를 받은 종교이기 때문에 아픈 역사의 길을 되짚어 보고 싶었다.      

웅장한 명동대성당 앞에서 해설사분의 성당 건축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19세기 후반 성당 건축 당시 조선의 조정과 천주교 사이에는 갈등이 많았어요. 모든 사람은 신분에 상관없이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가르침은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환영받을 리 없었겠지요.”     


성당 건축을 두고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첫째, 뾰족당(성당)이 왕이 계신 곳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위치한다는 것.

둘째, 높은 성당 아래 왕실의 어진을 모시는 영희전이 있다는 것.

셋째, 높은 건물의 성당이 궁의 풍수를 방해한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성당의 기공식이 4년이나 지연되기도 했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건축한 명동대성당의 종탑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곳을 향해있다. 하나님과 가까운 곳에서 신의 마음을 닮고 싶었던 천주교인들의 소망이 성당 첨탑 끝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하 성당에 들어가기 전 해설사분의 당부가 이어졌다.     


“지하 묘역에는 성인(聖人) 및 모진 천주교의 탄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내신 치명자(致命者)의 유해를 모시고 있습니다. 묵념과 기도를 하셔도 좋으니 조용히 관람 후 반대쪽 출구로 나오시면 됩니다.”     



지하 묘역을 빠져나와 왼편으로 걸어가면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신부)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의 흉상을 만날 수 있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된 김대건 신부의 흉상이 성당 가까이 위치한 까닭은 ‘하나님의 온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미사가 끝난 성당 내부에 들어가기 전, 성당 가운데 있는 청동 정문 앞에 모였다.


      

“여러분, 성당의 정문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오늘 배워야 하는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어요.”     


까만색의 거대한 청동 정문 속 부조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문 상단에는 한국교회 역사상 최초로 조선에 입국한 외국인 기독교 선교자 주문모 신부(1752 ~ 1801)와 한국 최초의 조선 천주교회장을 지낸 순교자 정약종(1760 ~ 1801)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아래로 복음을 전파하는 성직자, 천주교 박해를 피해 떠나는 행렬, 박해받던 신자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옹기 등을 볼 수 있다.

청동 문을 나서기 전 첫째 아이가 말했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잠시 해설을 멈추고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햇빛을 만나 신비로운 색을 빚어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하늘 높이 치솟은 천장이 신께 가까이 왔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종교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저와 제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조선의 역관이자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인 김범우의 집터 방문을 끝으로 천주교의 역사 여행은 막을 내린다.      

종교가 없어도 좋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과 신앙심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들과 다양한 종교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특정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은 포용력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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