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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리 Jun 05. 2024

다시 보자 이탈리아

분노는 나의 힘

이혼 접수를 하고 얼마 뒤가 엄마의 환갑 생신이었다.

우리 가족은 급작스러운 불행의 여파로 생신잔치를 할 기력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가족끼리 고기나 구워 먹자고 해서 고기와 생일케이크를 사러 가는 길에 갑자기 그에게 메신저가 왔다.


조금 전에 국민은행 계좌로
어머님 생신이셔서 10만 원 보냈어!
퇴근하고 전해드려
생신 축하드린다고, 우리 딸 봐주셔서 감사드린다고도!


황당했다.

지금 지가 감히 우리 엄마 생일을 챙기고 있을 땐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누구 때문에 지금 엄마 환갑도 제대로 못 챙기게 됐는데.

다른 여자 이사할 땐 이사 선물로 300만 원 넘는 냉장고 사주더니 우리 엄마 생일엔 꼴랑 10만 원?

(냉장고 사연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로 가주시길.

맞다. 냉장고는 내 발작버튼이다^^)


전남편의 부모님 환갑땐 명품 신발과 머플러를 선물했었다.

원래 여행을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그 돈으로 선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 환갑땐 여행을 가려고 했었다.

원래는 국내여행을 갈까 하고 있었는데 전남편이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전남편은 자기 성과가 너무 좋아서, 회사에서 포상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다. 온 가족 비행기와 숙소를 제공해 준다고. 비즈니스를 타고 가자고. 일본과 대만 중 골라보라던가.

그러면서 대만의 최고급 리조트 사진들을 잔뜩 보내줬다.

이런 곳 중에 하나를 고르라던데 어디가 좋겠냐고.

빨리 아이 여권을 만들라는 성화에 아기 여권도 만들었다.


알고 보니 이것도 남편의 거짓말이었다.

회사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당연히 이 여행은 모두 취소되었다.

만약 그의 거짓말을 몰랐다면, 우리는 이혼접수를 하러 가는 대신 대만의 어느 리조트에 가 있었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심했다.


내가 우리 엄마아빠 칠순은 진짜 제대로 챙긴다!!

꼭 다 같이 유럽여행 갈 거야!!!

꼭 칠순이 아니더라도... 엄마아빠가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나이일 때, 최대한 빨리 가야지...!


그날 바로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2013년에 유럽 여행을 갔었다.

처음 본 이국적인 풍경이 어찌나 예쁘고 멋있던지...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 순으로 여행했었는데,

마지막 이탈리아에선 너무너무 아쉬웠다.


미술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실물로 보고 있다는 감격과, 미술을 전공하신 엄마가 여기서 이것들을 보면 참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로마의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한 개만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에 간절한 마음으로 동전도 하나 던지고 왔었다.

돌아와서는 이탈리아 교환학생 가는 법을 한동안 찾아봤던 것 같다.

비록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다시 가진 못했지만,

내가 던진 동전이 소원을 이루주길 기대해 보며,

오늘도 적금통장을 한 번 더 확인해 본다.


다시 보자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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