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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리 Jun 03. 2024

일하는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 된다

헤르미온느의 시계가 필요해!

내 인생에 이보다 바쁜 시간은 예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다.


해리포터 속의 헤르미온느가 갖고 있던 시간을 돌리는 시계가 이보다 더 간절한 적이 없다.




아이는 18개월에 들어서며 재접근기가 시작되었다.

나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일하고, 공부하는 싱글맘인 나는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늘 마음 한 구석이 쓰리다.


본가로 들어오면서 왕복 3시간 20분이 걸리는 통근시간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제약하기 시작했다.

출근시간은 6시 30분.

여기서 5분이라도 더 늦으면 지각이다.

8시부터 5시까지 근무를 하고 5시 00분 00초가 되자마자 눈썹이 휘날려라 퇴근해서 집에 가면

저녁 6시 40분이다.

아이는 보통 저녁을 이미 다 먹었고, 목욕시간이다.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하고, 아이와 한 시간 정도 놀아주면 잘 시간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 두세 시간이 평일에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전부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은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아이와 마주치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아이의 생활패턴이 바로 깨져버린다.

특히, 잠을 유독 제대로 자지 못한다.

엄마의 얼굴을 못 보는 것이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주고 있나 보다.


저번주엔 일이 많아 이틀 연속으로 야근하는 바람에 아이를 이틀이나 못 만났다.

아이의 수면 패턴은 완전히 깨져버렸고, 고열이 났다.

내가 아이를 아프게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엄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늘 집엔 육아에 200프로를 쏟아붓는 엄마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자랐는데, 내가 누리면서 자랐던 걸 내 딸에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항상 미안하다.


올해 환갑인 엄마에게 환갑맞이 생일선물로 딸의 이혼과 손녀의 육아를 선물했다.

엄마는 30여 년 만에 겨우 탈출한 육아의 세계로 다시 끌려들어 왔다.

이번엔 아빠도 함께.


갑작스레 늘어난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아빠의 은퇴는 오늘도 한걸음 멀어졌다.

나의 벌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 부모님들은 은퇴를 하고, 해외여행을 가는 여유로운 시기에 우리 부모님은 다시 육아를 하고 가족 부양을 위해 일을 한다.


나는 늘 죄인이다.

일을 할 때도, 육아를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회사에 있어도, 아이와 있어도, 책상 앞에 앉아있어도.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딸에게도...



사실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육아와 비교도 되지 않게 몸이 편하다.

화장실도 아무 때나 갈 수 있고, 내가 힘들면 잠시 멈출 수도 있다.

육아는 그게 안된다.

독박육아를 할 때보다 너무 편해져서, 이런 편안함이 나의 죄책감을 더 자극한다.


그리고 늘 나의 죄책감 뒤에는 전남편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함께 온다.

걔는 이렇게 편했구나. 나 혼자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동안.

내가 만만해 보였구나. 날 얼마나 웃기게 생각했으면.

이렇게 편하게 살았으면서 그 유세를 떨다니 진짜 가증스러운 새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생각하다 보면 너무 화가 나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쌍욕이 절로 나온다.

이 분노와 원망이 잦아들 날이 오기는 할까?


나한테 비록 헤르미온느의 시계는 없어도,

망각을 도와주는 시간은 있으니까.

다시 한번 시간의 힘을 믿어본다.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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