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또 다른 이름을 지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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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찬희

어릴 적엔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성이 다른 성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학교에서는 보통 가나다 순으로 자리를 배치하곤 하는데, 한 씨인 나는 항상 맨 뒤에 앉아야 했다. 가뜩이나 키도 작은데 맨 뒷자리라니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조를 짤 때도 문제였다. 여러 명이 한 조가 되어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인원이 딱 떨어져서 모두가 행복한 상황은 거의 없다. 4명이 한 조가 되어야 하는데 2명이 남는 애매한 상황이 항상 발생한다. 한 씨여서 맨 뒤에 있는 나는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했고, 남들보다 적은 인원으로 과제를 해야 하는 불합리함을 겪어야만 했다. 김 씨들은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겠지만 말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발음이 매끄럽지 않다. '한-찬'의 어색한 연결에 '희'까지 붙으며 이름을 부르기가 어딘가 불편해졌다. 선생님들도 이름을 부를 때 뭔가 불편하다는 듯이 내 이름을 불렀고, 친구들도 찬희라는 이름보다 찬~ 정도로 줄여 부르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내 이름이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찬희. 언뜻 보면 여자 이름 같기도 하고, 남자 이름 같기도 한 따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 성실하고 단정한 외형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30년을 살다 보니 점점 느껴지는 건, 의도치 않게 이름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울 찬, 빛날 희. 누군가를 도울 때 빛이 나는 사람으로 나는 해석하고 있다. 인생을 돌아보면 앞에서 나서기보다 뒤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을 잘 들어주며 그들의 고민 해결을 도와주는 역할. 회사에서도 부족한 팀원을 끌어올려주는 역할. 심지어 게임에서도 팀원을 보조해주는 서포터를 주로 하곤 한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름대로 살고 있구나. 나는 내 이름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구나.

또 다른 이름이라... 글쎄, 굳이 바꾸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이미 내 이름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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