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한 존재들'
발행일이 금요일이었는데
이제야 올리는 이유 해명합니다.
어제 작품선택을 안 하고 올린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죄송함을 전하며 며칠 전 남해에서 발견한 것들을 올려봅니다.
손안에 조심스레 담긴 갈색 소용돌이 조각.
처음엔 그냥 예쁜 조개껍데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건 소라가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껍질 끝에 달고 다니던 작은 ‘문’이었다.
이름은 오퍼큘럼.
소라는 위험을 감지하면 주저 없이 이 문을 닫는다.
단단한 껍질 안, 뽀얗고 작은 속살을 지키기 위해.
생물의 본능이 만든 아주 작은 갑옷이다.
겉면은 거칠고 투박했다.
해류에 부딪히며 생긴 상처, 긁힌 자국,
시간을 견뎌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안쪽을 들여다보았을 때,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에 폰을 꺼내 들었다.
나선형의 섬세한 무늬, 은은한 광택,
마치 누군가 세밀하게 새긴 결처럼 단정하고 고요했다.
오퍼큘럼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모든 아름다움은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지켜내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깃들고 단단해진다.
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감정이든 생각이든, 밖으로 꺼내놓아야 진짜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 작은 조개껍질이 가르쳐준 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
드러내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속 안에 있는 고요한 결 하나로도 말이 된다는 것.
그날의 바닷가에서
나는 비로소 고요한 아름다움에 대해 배웠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어떤 것,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어떤 것에 대해.
그날 밤, 공동체와 나눈 깊은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것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들.
그 밤의 온기와 나눔,
그리고 손 안의 조용한 조각 하나를 이렇게 함께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