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 닿기 전, 이미 세상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스며든 빛이, 나뭇결 위에 조용히 명암의 단계를 그려놓았다.
연필로 공들여 그은 선도 아닌데,
빛과 그림자만으로도 가장 밝은 톤에서 가장 어두운 톤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었다.
그 순간, 완벽한 '명암단계'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서둘러 그 장면을 담았다.
그리고 마음속에 메모했다. 이건 아이들에게 꼭 보여줘야겠다.
며칠 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었다.
“명암 단계가 몇 단계나 보이나요?”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일상 속 문틈 위에 나타난 걸 신기해하며 각자 톤을 세어본다.
이어서 종이를 꺼내, 직접 명암 단계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연필 끝에서 차근차근 쌓이는 톤은 문 위의 빛과 그림자를 닮아갔다.
어느새 아이들의 손끝은 느려지고, 눈은 집중에 잠겼다.
그날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예술은 특별한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일상의 틈새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