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툴지만 이어지는 우리 사이의 이야기'

"엄마와의 기억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

by 투망고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림자'/ 25년 리움미술관/ 미술이야기


사람들은 내가 서글서글하고 친화력이 좋다고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좀 다르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좋아하지만, 가족 안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 이상하다.

감정을 표현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서툴다.

돌아보면 우리 엄마도 그랬다.
나는 외동딸이었고, 엄마는 나를 단단하게 키우려고 애쓰셨다. 사랑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 많으신 분이었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낯설고 서툴렀다.
어릴 적 외로웠던 감정이 기억난다. 칭찬은 인색했고, 마음을 나누는 법도 익숙하지 않았다.
이제는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그 어린 날의 아쉬움은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도 남편과 아이 앞에서는 여전히 미숙하다. 아이들과의 수업에서는 감정 표현을 유도하지 내 아이 앞에서는 오히려 말문이 막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마음이 묵직한 짐처럼 남는다.

그래도 큰아들과는 어릴 적부터 미술관을 종종 다녔다. 짧은 시간, 소소한 대화. 당시에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들이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특별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조금씩 이어주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래된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다섯 살 즈음이었을까.

엄마와 함께 앙드레김 패션쇼를 보러 갔던 기억.

엄마는 평소 예술에 큰 관심이 있는 분은 아니었는데,

아마 누군가에게 티켓을 선물 받으셨던 것 같다. 아마 롯데호텔이었던 것 같다.

무대 위의 조명, 접시에 담긴 그림 같은 아이스크림, 모델들의 쇼보다 접시 위의 아이스크림이

다섯 살의 내겐 더 빛나 보였다.

너무도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종종 떠오르는 특별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부모님은 예술적 재능이나 관심, 열린 사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게 늘 아쉬웠다.

FM 성향의 아빠, 말없이 조용한 엄마.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키웠더라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열린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그날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작은 씨앗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씨앗을 심고 있다.

아들과의 작은 경험, 아이들과의 수업 속 찰나의 순간들. 그 안에서 우리는 감정을 나누고, 조금씩 연결되고 있다.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은 순간들. 그런 마음을 엄마도 수없이 겪으셨을 것이다.

묵묵함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풀어내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나는 예술이라는 언어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쓰다 보니, 나는 오늘 또 이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