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시작하며
1980년 세상에 나와 거의 모든 삶을 공동주택에서 보낸 나는 '언젠가는...', '로또 당첨 시...'와 같은 조건하에 원하는 대로 설계된 단독주택을 짓고 살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 두고 살았다.
어릴 적 부모님이 고생해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게 됐을 때에는 그저 새 집, 새 아파트에 살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기억뿐인데 성인이 되고 늦깎이 남편이 될 무렵에서야 아파트 청약이란 것도 해보고 마음고생하며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중도금, 잔금 납부, 사전점검, 이사, 하자 신청 등의 절차를 몸소 겪어보니 새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부모님도 참 여러모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겠구나 하며 앞으로 세대주로서 열심히 앞만 보고 살기만 하면 될 일로 여겼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부정적인가?
그냥 나란 존재는 그저 편협한 인간에 불과한 것인가?
온갖 에너지를 끌어다가 구입한 내 삶의 보금자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뜻밖에도 속이 타고 정수리가 뜨거워질 일이 참 많았다. 그간 무관심하게 지나쳤지만 여러 번 뉴스로도 다뤄졌던 공동주택 입주자 간의 츄러블.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고 세대주로서 직접 겪어보니 해피하게 삶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이 새삼 어렵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공동주택에서 겪어온 몇 가지 경험을 돌아본다.
하늘 맑은 날 모처럼 창을 활짝 열어두면 어디선가 진한 담배연기가 흘러들어 왔다. 비흡연자에게는 아주 불쾌한 기체이며 때론 얼굴에 들러부터 악취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때문에 몇 만 원 하는 메가폰을 구입하여 창가에 비치해 두고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사용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야만 했다.
아이가 막 걸음을 떼고 뛰기 시작할 무렵. 위층에서 시끄럽다고 직접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리곤 항의한다. 아랫집이 층간 소음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 윗집에서 불만 제기하는 경우는 또 처음 본다. 결국 몇 백만 원을 들여 층간 소음 방지 매트를 구매 후 바닥을 가득 채웠다.
술을 전혀 못하고 외향인 보다는 내항인에 가까워 오랜 시간 +자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 쉽게 지치고 그 후유증이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그러하여 외출이 잦은 편은 아닌데 가끔 늦은 시간 귀가하여 주차할 일이 발생하면 달랑 하나 소유하고 있는 내 차 댈 곳이 없어 난감할 때가 많았다. 대형마트에서 장바구니 가득 생필품을 구입해 짐이 많은 날도 간신히 멀찌감치 주차하여 군장을 짊어진 군인처럼 터벅터벅 걸어오는 날도 많았지만 그저 아파트 단지 안에 주차 자리가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하늘에 감사해할 정도였다.
세대당 주차면수 1.05대의 공동주택에 거주한 적이 있다. 2대 이상의 차량을 보유한 세대가 많다 보니 항상 주차 공간이 부족했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는 주차 정책 수립을 위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지만 소수의 세대만 설문에 응했다. 설문 문항부터 세대당 '2대 이상 주차 허용'을 전제로 했고 2대째 차량부터 부담금을 얼마로 할지만 물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차 여건은 열악해졌다.
18시만 넘어도 주차는 불가능했고 제대로 주차에 성공해도 출근할 때면 이중 주차된 차량을 2~3대는 밀어야 출차가 가능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생각해서 관리사무소와 입주자 대표회의에 세대당 주차 1대는 보장하게끔 정책을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부답이다. 입주자 카페 게시판에 건의 사항을 올려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모집했고 목소리를 내 보고자 했다. 그러나 다수의 입주자들은 무관심했고 입주자 대표회의부터 표면적으로라도 중립적이지 못했다. 관리사무소도 그런 기류에 결을 함께하여 내가 아파트 게시판에 게시물을 부착하는 것부터 매사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다수의 관심은 적고 뜻을 갖고 모인 이들은 소수이며 입주자 대표들은 똘똘 뭉쳤다. 의견을 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악플로 답을 한다. 변화는 전무했고 험난한 투쟁이 예상됐다. 투투가 지배하는 무지개 연못에 입주해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매일같이 줘 터지는 무기력한 개구리 왕눈이 아빠가 된 기분이었다. 소득 없는 곳에 에너지를 쏟는 것만 같아서 결국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자신만 편하려고 대에충 남의 차 앞에 이중주차한 차량, 주차공간이 아님에도 자신의 차만 소중히 다루듯 창조적 주차를 한 차량, 삐딱하게 주차라인을 밟은 차량 등 본능적으로 눈살 찌푸릴 일이 많았다.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웃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흉포한 사건으로 치달은 일이 언론에 보도되어도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 둔감해진 사회에 속해 아이도 키우고 우리 부부도 늙어갈 미래를 생각하니 앞날이 암담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이 십중팔구 공동주택으로 주거형태를 가져가려면 보다 앞선 제도로 뒷받침하여 좀 좋아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거의 모든 재산과 영끌하여 마련한 융자금까지 더해 어렵게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 한 칸이건만 인접한 이웃에 의해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참 서글펐다.
좋은 것만 보고 소중한 사람하고만 함께할 시간조차 부족한 게 인생 아니던가.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시간조차 인생 낭비다. 속 편한 방향으로 사는 방법을 탐색하게 되었고 어렴풋이 마음먹었던 단독주택 신축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마침 배우자의 건강 문제로 평생 갈 일 없다고 여겼던 대형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생겼다. 집 짓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다 늙어빠지고 세상에 홀로 남았을 때 나만의 집이 생긴 들 무엇하리.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정기 검진 시 좋은 방향으로 건강 수치가 나아지고 있으며 배우자도 아이를 위한 단독주택생활에 매우 긍정적이었다.
진짜 나의 집을 지어보자
끊임없이 소득을 발생시키고 납세를 해야 하는 체제에 살고 있다. 생산적인 삶을 비하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산란계와 같은 처지다. 쉼 없이 먹고 소화하여 알을 바쳐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산란계 신세. 이왕이면 좁디좁은 케이지안에서 스트레스로 절여져 난각에 '4'가 프린트되는 알만 낳고 싶지 않다.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사료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날아든 신선한 잎도 맛보고 지렁이도 사냥해 보는 자유 방목된 닭의 삶이 한결 나아 보인다.
그저 현재의 주거형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토지 매물을 검색해 보고 무작정 유튜브를 켜고 SketchUp이라는 프로그램의 기본기능을 속성으로 배워 내가 원하는 평면도도 몇 점 그려봤다.
우선 땅부터 찾아야 나의 꿈이 구체화될 것 같다. 프라이빗하면서도 흔히 마주치는 편의점도 근처에 있었으면 하고 아플 때 신속하게 방문할 병원도 있어야 한다. 돈처리나 공적인 일을 처리해 줄 은행과 관공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뷰가 좋은 그런 토지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돌아봤을 때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토지는 너무 비싸다.
나의 니즈들의 교집합의 교집합의 교집합을 찾고 일부는 현실과 타협을 하니 대상이 좁혀졌다. 망설임 없이 토지 인근에 위치한 공인중개사를 찾아갔고 매매 의사를 비췄다. 딱히 토지 거래가 활발한 것도 아닌 듯하나 조바심에 가계약금을 걸고 약속한 일정에 토지매매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고 나서 금융기관을 찾아가 토지담보대출 신청절차까지 쉼 없이 진행했다.
수차례 테스트해 본 결과 내 MBTI는 INFJ로 나온다. 그러나 토지매매계약까지의 내 모습은 J보다는 P의 모습에 가깝지 않은가. 유행했던 혈액형별 성격과 같이 맹신할 건 아닌가 보다. 아무튼... 내 땅이 생겼고 어떻게 뭐부터 공부하고 집을 지을지 부랴부랴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집은 완공됐고 모르는 이가 보면 금세 뚝딱 지어진 것 같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이 고됐고 안 되는 거 알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되는 부분도 있어 나처럼 건설업계와는 무관한 일반 회사원이 건축주가 되어 단독주택 신축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덜 근심하며 즐거운 집 짓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까 봐 글을 써보기로 했다.
투비콘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