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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주택 신축에 뛰어든 이야기

V. 견적 그리고 계약

by 김동의 Mar 28. 2025

2월 경 건축 도면이 완료되자 시공사에서 견적서가 송부되었다. 견적서에 적힌 건축비는 2억 초

1월 초 시공사에 방문할 때에만 해도 평당 530만 원, 총 1억 6천만 원으로 이야기했는데... 많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작성한 기획 도면 대비 건축도면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오히려 면적은 줄었는데 견적은 늘었다. 30% 이상 증액되었는데 시공사는 그에 따른 설명은 없고 마진을 꼭꼭 눌러 최소화했다는 대답뿐.

이 정도 금액에 뭘 놀라냐라는 투로 느껴졌다. 

학씨~! '다른 시공사 알아볼게요!!' 하기엔 앞서 얘기했듯 난 너무 우유부단하고 물러터진 순두부계란찜 같은

존재였다. 시공사에서 손톱만큼이라도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무조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깨자.


이때 즈음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정보로 나의 요구사항들을 모아 작성한 자료가 완성되었다. 


 ① 목구조체 수축과 팽창을 대비, 창호와 header 혹은 trimmer 사이 calking은 연질 우레탄 폼 시공 요구

 ② rain screen 하단과 sofit vent에 bug screen 시공 요구

 ③ 투습방수지 wrap cap stapler 시공 요구 or 일반 타카핀 시공 시 방수처리 요구

 ④ 희망하는 현관문과 창호 종류

 ⑤ 현관, 화장실 타일 시공 후 줄눈 코팅 시공 요구

 ⑥ CCTV 설치 부위 UTP선 & 난연 CD관 시공 요구

 ⑦ 중단열재로 습기에 강한 무기질 미네랄울 시공 요구

 ⑧ 벽체와 지붕은 단열 성능이 있는 투습방수지 사용. 지붕은 한국식 warm roof 시공 요구

 ⑨ 외기와 맞닿는 벽 내측에 가변형방습지 시공 요구

 ⑩ ㄱ社 건식 난방 시공에 맞는 배관 등 준비 요구 


이런 요구안을 작성해서 시공사 사장님께 송부드렸더니 갑자기 남원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방문을 주신다. 요구안을 하나하나 살피며 수용 가능한 것은 그 자리에서 받아들여 주셨는데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항목도 몇 있었다. 예를 들면 한국식 warm roof 시공 요구나 단열성능이 있는 투습방수지 사용 요구, 단열재로 글라스울이 아닌 미네랄울 사용 요구건, 특히 건식 난방과 가변형 방습지 시공 요구건에 반대가 심했다. 

이때에도 전에 이어 또 한 번 느꼈는데 요구안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단점이 있으면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반론을 펴면 되는데 "잘은 모르는데 일반적인 자재가 아니어서 문제가 생길 거예요" 라거나 "가변형 방습지 같은 거 안 해도 목조주택 따뜻하거든요" 라거나 "건식 난방 그거 안 하면 안 돼요?" 이렇게만 말씀하시니 어느 건축주가 쉽게 동의할 수 있겠는가?


 시공사가 다양한 시공 방법에 있어 다 경험을 해보지 못할 수도 있고 선호하는 디테일이 있을 수 있다. 생소한 공법이나 디테일이면 조금 알아보고 이야기하자거나 안 해봤지만 시도해 보고 차차 보완을 해나가자 하며 대응하는 것이 그리 어려웠을까?

 기존에 해온 방식, 검증된 방식만으로 시공을 권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참고로 위 요구안들은 없는 것을 내가 창조한 것도 아니고 다른 시공사들이 하고 있는 디테일들을 여기저기서 보고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 것인데 그럼 이런 방법으로 시공 중인 시공사들은 무얼까? 하는 의문만 해소되지 않은 채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지붕구조 이야기를 조금만 더 갚게 하자면 원래 시공사에서 계획한 지붕은 rafter 사이가 아닌 ceiling joist에 단열 시공을 하는 cold roof 방식이었다. 나는 시스템 에어컨과 전열교환기 설치를 염두에 두었기에 그럼 기계나 배관배선 위쪽으로 단열재를 추가로 덧시공해 주냐고 문의드리니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고 답변하셨다. 그렇게 되면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 위쪽은 그냥 외기에 노출되는 꼴이고 전열교환기는 실내 공기와 온도차로 덕트에 결로나 곰팡이가 생길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서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식 warm roof(혹은 이중지붕이라고 불리는 듯하다) 시공을 강하게 요구했다. 


단열재 시공 위치에 따라 cold roof, 한국식 warm roof로 나뉨



의견이 좁혀진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남겨진 채 예상하지 못했던 회의는 일단락되었고 저 요구안들로 인해 증액된 새 견적을 받았다. 


가난한 건축주야 어쩔?


약 1400만 원 더 증액되었는데 줄이지는 못할망정 건축비가 늘어만 가니 다시 깜깜하고 깝깝하다. 생각해 둔 착공일은 점점 다가오고 이제 와서 새롭게 시공사를 알아보기에는 빠듯한 일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첫 삽도 뜨지 않았는데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이 때라도 문워크 춤이라도 추듯 뒷걸음치며 발을 뺏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졌을까? 부질없는 후회를 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자재비가 급등한다는 소식이 있다며 선구매해놓자는 사장님의 제안이 왔다. 정식 계약서를 쓴 것은 아니지만 목자재비의 일부 금액을 송금을 했다. 일주일 뒤 목자재비 선금을 제외한 계약금 (총건축비의 10%)을 보냄으로써 계약은 성사되었다.

100% 마음에 들게 진행되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분명히 장점도 있고 내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한 현장에서만 소장이 상주&관리 감독을 하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건축주의 사양 고급화 요구를 제외한 견적서에 명기된 금액 외에 추가금을 요구한 적은 거의 없었으며 시공 중 실수한 부분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는 점은 좋았다. 

하지만 A부터 Z까지 투명하고 상세하게 명기된 자료를 선호하고 계획된 일정 공유나 공정에 대해서는 사전 공유받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건축) 현장은 변수가 많아 예상 일정 같은걸 표나 자료로 작성하지는 않는다'며.


특히 계약서나 건축비 견적은 다른 회사의 그것 대비 너무 간소화된 자료였다. 

시공사 상세 건축비 견적 자료


이 날 이후 타 시공사 견적 서류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자재명, 스펙, 단가는 물론 하드웨어 정보나 수량까지 빠짐없이 명기되어 있고 그에 따른 모든 인건비도 상세 기록되어 있어 자료량만 책으로 한 권이던데 나의 경우는 A4용지 1면으로 마무리되었다. 회사에서 무수히 강조했던 보고 자료 간소화 또는 1장 PPT자료를 회사 밖에서 접하게 됐다.

계약서도 글자 하나하나 잘 살피고 하자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기해 둘걸. 회사 팀 동료와 친분이 있는 시공사 사장님인데 알아서 잘해주시겠지 하는 안일함이 분명히 있었다. 계약서나 견적서는 최대한 많은 내용이 상세히 담을 것을 요구하셔야 하고 서류 업무도 꼼꼼하며 사소한 일 처리도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시공사를 찾으셔야 한다. 

집보다 훨씬 작은 플라스틱 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도면출도-몰드베이스 발주-황삭가공-정삭가공-방전가공-사상/습합-T/O-제품생산과 같은 일정 플랜이 존재하고 금형이나 지그류부터 각종 제조 공정에 따른 상세 견적자료가 있는데 주택 신축에 있어 시공사의 그런 자료가 부실하다?

앞으로도 이야기하겠지만 건축주가 각 공정별로 가능한 상세한 시공 방법을 생각해 두고 그 디테일로 시공을 했을 때 얼마의 비용이 증액되는지 문의했을 때 신속하게 산출할 수 있는 시공사. 그리고 그러한 시공 디테일을 요구하는 건축주에게 정량적·과학적으로 설명 또는 반론 가능한 시공사를 만나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PC 구매를 예로 들어 보겠다. 

용산 전자상가에 가서 '저 LOL 할 건데 적당한 PC 좀 조립해 주세요'와 'CPU는 AMD 라이젠 6세대, RAM은 DDR5 128GB, VGA는 RTX 4060급으로...' 하는 주문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전 재산이 걸린 문제인데 PC 구매만큼도 알아보지 않는다면 호갱님 신세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설계사든 시공사든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세히 요구해야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투비콘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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