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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주택 신축에 뛰어든 이야기

IV. 설계사무소

by 김동의

시공사에서는 주로 전라북도 지역의 주택이나 인테리어 시공을 수주해 왔는데 그곳에서는 통상 400만 원 정도의 설계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 집 신축을 계기로 타 지역으로 첫 진출을 해본다고 하며 그 지역에서 함께 일을 해온 건축사분께 우리 집 도면을 의뢰하려 했지만 거리가 멀고 지자체마다 건축 조례도 상이해서인지 거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공사 사장은 우리 건축 예정지 근방에 위치한 설계사무소를 수배해야 한다고 알려주며 몇 군데 연락까지 취해서 시세도 알아봐 줬다. 이런... 시세가 건당 900만 원이라고 한다. 예상했던 설계비보다 500만 원 증액되는 데다가 처음 보는 건축사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한단 말인가. 이때가 1월이었고 2월에 도면 작업을 하여 3월 착공을 계획하고 있어서 서둘러 설계 계약을 해야 했다.


문득 명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한국, 프랑스 건축사를 보유한 내 친구가 떠올랐다.


제일 친한 친구가 건축사인데 왜 시공을 먼저 찾아가냐...


하며 시공사를 방문하러 갈 적에 서운함인지 답답함인지 저렇게 한마디 했던 녀석이고 예전부터 내가 단독주택을 짓게 되면 너에게 설계 의뢰를 하겠노라고 입버릇처럼 떠들었는데 이참에 맡아주면 내 기획설계를 보완해서 집도 멋지게 그려주고 인허가도 문제없이 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맡기려니 엄청 귀찮아한다. 현장이 위치한 지역이 지구단위계획 지역이고 행정구역 상 '읍'이지만 건축 관련된 룰은 죄다 도시로 취급되는 곳이라 도면 일은 많고 돈은 안된다며 투덜대는 거 조르고 또 졸라 계약을 했다.


위에서 언급을 못했는데 SketchUp 체험판을 이용한 기획설계는 단층집으로 했다. 2층이나 다락방을 둬볼까 잠깐 생각은 했는데 오르내리기도 귀찮아질 것 같고 아이가 어려 안전사고가 우려도 되었다. 무엇보다 계단 공간을 그려보거나 측정해 보면 화장실 하나만큼 혹은 그 이상의 공간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토지 면적도 좁지 않으니 그냥 단층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관과 이어지는 차고 공간도 원했으나 건축면적이 꽤 늘어나 비용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입장에서 이는 사치스러운 바람이었다.

2층 구상.png 2층 구상안. 계단 공간이 생각보다 많이 차지 ⓒ 김동의




알아본 바에 의하면 건축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사 중 하나가 기초공사 비용이었다. 이 비용을 아끼고 싶었고 건축 부지가 약간 경사졌으며 단층 주택인데 매트기초(온통기초)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으로 느껴져 독립기초로 설계, 시공되길 원했다.

기초 비교.png 집 평면에 따른 각 기초별 개략적 형상 ⓒ 김동의


이와 더불어 바닥부터 벽체 지붕까지 단열선이 끊김 없이 연결 가능하며 열교를 최소화함으로써 OSB 합판 등 구조재 쪽 결로 발생을 차단하기 위해 외단열을 하고 싶었다.

내외단열 개념도.png 끊김 없는 단열선 예시. 열교 측면에서는 외단열이 유리하다고 생각 ⓒ 김동의

사진에서 보다시피 내단열(목조에서는 중단열이라고도 함) 시 단열재가 채워지지 않은 목재 부분은 열교가 된다. 내측에 추가 단열 시공을 할 경우 단열재 두께만큼 실내 면적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 부분은 전기나 통신선 등의 설비가 지나는 구간이 될 수 있어 단열 시공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외단열의 경우 골조 전체를 열교 차단할 수 있고 벽체나 지붕을 지나는 설비 시공 시 단열층과 충돌이 없다.


내부는 비용을 세이브할 겸 B급 갬성 혹은 상업 공간 느낌으로 stud(샛기둥)나 rafter(서까래)가 노출되게끔 별도 마감용 석고보드 없이 전선관과 설비 배관도 보이게 설계하고 싶었다. 그리고 배우자나 아이 건강을 생각하여 시멘트나 콘크리트는 필요 최소한으로 사용하고자 건식 난방으로 시공될 수 있게 도면에 반영되길 원했다. 그러나 이 부분부터 시공사와 이견이 있었다.

내부 노출 마감예.png 내부 노출 마감 예 ⓒ ChatGPT

시공사는 독립기초는 인건비가 많이 들고, 내부 노출 마감이나 건식 난방은 일반적이지 않아 반대한다. 세부 항목을 나열하지는 않았으나 외단열 시공 역시 비용이 더 들 거라고 했다.


이처럼 건축주와 시공사가 의견이 나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시공사는 건축주에 비해 이 분야의 정보와 경험이 많으므로 건축주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터무니없는 방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논리적이고 정량적·과학적 근거를 들어 반론을 펴거나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독립기초는 매트기초 대비 구체적으로 인건비 상승이 얼마나 되며 내부 노출 마감이나 건식 난방이 '일반적이지 않다'와 같은 모호한 표현이 아닌 경험적 측면에서 단점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상세히 문의라도 해볼 걸 그랬다.


당시 시공사 사장은 나에게 건축사인 친구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다. 설계 도면이 한시라도 빨리 나와야 하는데 비전문가인 건축주가 독립기초나 내부 노출 마감 같은 어려운 요구로 건축사를 방해하고 출도 작업에 혼선을 빚는 것을 우려해서일까?

그럼에도 지나고 보니 참 웃긴 말 같다. 건축주를 돈 주고 계약한 건축사와의 소통에서 배제한 채 시공사 요구대로만 도면에 반영되게끔 유도하는 것 말고 달리 해석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는 친구는 별도로 시공사 사장으로부터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는 연락을 받았다며 매트기초로 설계를 진행했다.

여전히 독립기초로 절감되는 콘크리트 비용과 추가되는 공학 목재류, T&G OSB 비용, 슬라브 쪽 단열재와 기밀층 비용이 어느 정도 될까 궁금하다.

독립기초시 바닥 자재 상상.png 독립기초 시 바닥면 제작을 위한 추가 자재 추정 ⓒ김동의


게다가 후술 하겠지만 외단열 시공을 했다면... 건축주가 직접 내부 가변형 방습지를 시공하느라 매일같이 현장에 출근도장 찍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원했던 벽과 지붕 실내 노출도 도면에 반영되지 않았다. 시공사의 반대도 있었지만 배우자의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다. 노출된 전기 배관이나 콘센트 하우징, 골조에 쓰이는 철물류 마감이 날카로울 텐데 아이가 편히 지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내부 마감용 합판과 석고보드 그리고 벽지 비용까지 절감하려던 시도는 무산이 됐다.

그나마 건식 난방 요구건만 도면에 반영되었는데 훗날 이로 인해 수차례 시공사 사장의 불만을 들었다.


2월 설 연휴가 지나서야 각종 도면과 내진설계까지 완료되어 시청에 착공 신고를 했고 3월에 착공신고 필증을 교부받았다. 건축사인 친구는 평면도를 살짝 손봐 연면적을 100㎡ 미만으로 떨어뜨려 건축물 '허가' 대상에서 '신고' 대상으로 바꿔주었다.

신고 대상이면 시청에서 요구하는 항목들이 완화되어 감리계약은 선택사항이 되었다. 고민 끝에 감리 계약 비용 300만 원은 절감하기로 결정했다. 이것 외에는 내가 SketchUp으로 제작한 기획설계 거의 그대로 건축 도면에 반영했다.

내심 친구의 경험과 감각으로 지붕각이나 개구부, flashing 등 건축물의 선을 손봐 미적으로 개선해 주지는 않을까 기대했는데 특별한 게 없다. 왜 그랬냐 물어보니


너한테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하기가 너무 귀찮고 피곤해서


란다. 여러분은 꼭 건축주의 취향과 니즈를 공감해 줄 수 있는 건축사를 만나셔야 한다

도면전 iso뷰.png 설계 계약 전 집의 형상 ⓒ 김동의
도면반영 iso뷰.png 설계 계약 후 집의 형상. 일조량에 유리하도록 ㄷ자 형상을 만듦. ⓒ 김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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