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시공사 선정
한정된 자원으로 집을 짓는다는 일은 인륜지대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기엔 남들에 비해 이틀도 고민하지 않은 채 토지를 계약했고 건축 공정에 대한 공부를 깊게 하지 않았다. 모 집짓기 카페를 보니 몇 년에 거쳐 공부하고 수차례 토지 임장을 가며 고민 끝에 집을 짓는 분도 계신데 수영장 탈의실에서 그저 빨리 입수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옷을 벗는 어린아이처럼 심사숙고 없이 뛰어들었다. 시간순으로 내가 경험한 바를 풀어가며 후회를 읊조리는 껄무새가 되어 보겠으니 독자께서는 타산지석 삼으시길 바란다.
시공사 선정
건축비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건축사가 아닌 시공사를 먼저 검색하고 만나게 되었다. 때문에 가뜩이나 시공사 입김이 강한 분야인데 기획 설계 단계부터 시공사 사장에 의존하게 되어 그의 의견을 많이 듣게 되었다.
전반적인 아우트라인을 단순화하여 'ㄴ' 자에 가까웠던 평면을 'ㄷ'로 수정했고 얄쌍한 예각의 hip 지붕(모임지붕)을 생각했는데 조금 더 큰 지붕각을 가진 박공지붕으로 갈 것을 시공사로부터 요청받고 SketchUp을 이용해 반영했다.
시공 편의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하자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였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둘 다였을듯하다. 형상 단순화는 시공성이 좋아 하자가 줄고 이는 건축주에게도 좋지만 AS 비용 측면에서 시공사에게도 좋다. 평면도 단순화 & 직선화는 결과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hip 지붕으로 하면 박공지붕 대비 비용이 얼마나 상승하고 하자 위험이 있는지 다시 물어나 볼 걸. 신흥무관학교 스타일의 단출한 느낌의 집, 전반적으로 엣지있는 집을 생각했는데 지금의 박공지붕은 뭔가 둔탁하고 큰 모자를 쓰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아주 살짝 남는다. 처마도 900mm까지 더 길게 뽑을걸...
아! 왜 이 시공사를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빠뜨린 채 글을 쓰고 있었다. 기획설계 평면도로 온라인으로 검색한 대 여섯 군데 시공사에 예상 비용을 문의했다. 보통 문자 메시지로 평당 600만 원대 혹은 700만 원대라는 회신이 왔는데 한 시공사는 휴일임에도 전화 연락이 와서 이것저것 상담해 줬다. 게다가 번지르르한 홈페이지도 없고 블로그로 시공 기록을 다소 투박하게 남긴 것을 '현장에 집중하느라 별도 홈페이지 관리하는 데 비용을 쓰거나 블로그, SNS 홍보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구나'라고 자의적 해석을 했다. 의외로 쓸데없이 긍정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경향은 호구스러운 역사를 축적해 왔는데 역시 당시에는 그 시공사의 그러한 점도 좋게만 바라봤다. 예비 건축주라면 이처럼 느낌으로 시공사를 판단하면 안 되고 항상 매의 눈으로 꼼꼼히 따져봐야 후회하지 않는 집 짓기를 할 수 있다.
시공사를 직접 방문했을 때에 더 상세한 상담을 받았는데 체계적으로 대화가 진행된다기보다는 주먹구구식으로 그때그때 떠 오르는 소재로 대화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건축 예산은 얼마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30평형 1.5억 대 생각한다 답을 하자 사장님은 건축주가 희망하는 대략적인 주택의 스펙을 확인 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붕재는 골강판 → 아스팔트 슁글 또는 칼라강판으로 바꾸고, 외장재는 돈을 더 들여서 세라믹사이딩으로, 지열보일러는 비용이 과다하고 수리가 필요할 때 곤란하니 빼고, 전열교환기는 왜 하냐 차라리 실내에 공기청정기 두어 대 설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응??*)이라는 등의 꽤 긴 시간 중구난방으로 상담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개략적인 건축물 스펙은 언급되었고 평당 약 530만 원(싱크대 등 부대비용 제외)에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에 뭔가 불확실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해소되는 것만 같았다. 거주 중이었던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이 1.6억 원이었으니 상담대로면 건축비는 준비된 셈이었으니까.
* 건축기술의 발달로 건축물 안에서 웃풍을 느끼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현대 건축물의 실내는 '급기(給氣)'의 필요성이 증대된다는 뜻이다. 새로운 공기를 공급하고 실내에 쌓인 이산화탄소, 각종 가구에서 내뿜는 라돈과 같은 해로운 기체를 외부로 배출하기 위해서는 환기를 자주 해야 하는데 연중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운 날이 많지 않다. 이를 위해 열회수환기장치(전열교환기)는 주택의 형태와 관계없이 꼭 필요한 기계라고 생각하고 공기청정기와는 그 역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너무 감사하게도 상담 후 식사도 제공해 주신다고 해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시공사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재직 중인 회사 그리고 소속된 팀의 선배 동료와 대학시절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하신다. 너무 놀랍지 않은가!
'Is this destiny?'
전반적인 건축 비용 규모를 알 수 있어서 마음도 한 층 가벼워졌는데 이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비이성적으로 끌리기 시작했다. 한 영화의 명대사처럼 우주의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다 아이가!
때문에 이후 다른 시공사는 더 알아보지 않고 이 시공사와의 계약을 마음먹었다. 건축사를 통한 도면이 없는 시점이어서 설계사를 거쳐 이 시공사와의 정식 계약까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이때까지 지속적으로 이것저것 문의하며 소통을 했다.
다 지나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아무한테나 집 짓는 거 아니라며 건축사인 친구가 시공사를 운영하는 선배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는데 한 달 이상을 소통한 사장님이 계신데 갑자기 연락을 끊고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은 그토록 모질지 못한 내 캐릭터 탓도 있지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투비콘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