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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람 Jun 05. 2024

마음의 나침반

방향을 찾고 싶을 때

마음이 흔들리는 때가 있다.

작은 떨림부터 거대한 격랑까지

흔들림의 크기도 다르다.


작은 떨림은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가능하다.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거나, 야구장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거나

노래방에서 열창을 하거나 말이다. 

산책을 나갈 수도 있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놀이공원에 가거나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다. 

여러 방법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돌보고 평상시로 돌아오도록 만들 수 있다. 

마음의 나침반이 잘 작동하고 있는 증거다.

 

거대한 격랑은 상황이 좀 다를 수 있다. 

충격파가 너무 커서 한동안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왜 아니겠는가?

감당하기 힘들게 뻔해 보이는데 흔쾌히 덥석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 현실 부정과 회피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오래된 적응방식일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순간에는

지각되는 감정에 머물면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결정은 잠시 미루고 자신을 믿어보자.

견뎌낼 수 있고 헤쳐나갈 방법을 결국을 알게 될 거라고 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자신만의 나침반이 있다. 

평상시에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지나간다. 

그러다가 위험신호가 포착되면 이 나침반은 정확한 방향을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간다.

알다시피 주변에 '자기장'을 일으키는 물질이 있으면 방향은 왜곡되기 쉽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자기장'은 무엇일까?

무엇이 자신이 나가야 할 방향에 혼선을 주고 있는 걸까?


고개를 돌리지 말고 바라보아야 한다. 

유물을 발굴하는 발굴가의 섬세한 손길처럼

흙더미를 치우고 조심조심 주변을 정리하며 유물의 원형이 보존되도록 섬세하게 다뤄보자.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경험한 많은 일들이 '자기장'이 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유용하다. 그러나 때로는 유용하지 않다. 

알다시피 10대의 경험은 20대의 경험과 다르고 

젊은 시절의 경험은 중년의 경험과 다르다. 

외견상 비슷하다 할지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달라졌고

우리 자신도 달라졌다. 

세상도 달라졌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를 보려는 경향이 어떤 때는 유용하지만 

어떤 때는 유용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 나침반이 오작동하도록 만드는 자기장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자기장이 작용하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지금 내가 적응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아닌지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당신이 정말 바라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할 기회가 왔다. 

하겠다고 말만 하면 되는데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버린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긴장되고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것을 느낄 뿐이다. 

'자기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장'을 일으키는 물질을 제거하거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나침반은 제대로 작동한다. 

어떻게 할까?

'자기장'을 찾아보고 그게 거기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제거할지 영향권에서 벗어날지 방법을 결정하고

그 방법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제 필요한 건 실행하려는 마음뿐이다.


'자기장'에서 벗어났다면,

나침반은 제대로 잘 작동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당신이 원하는 방향을 제대로 알려줄 것이다. 

만세!

삶은 역동적이고 우리는 그것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 




<나침반의 성능 올리기>


모든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타당하지만

편의상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분류해 놓은 감정들이 있다.

좋은 것 안 좋은 것으로 나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나누고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다. )

그런데 감정자체도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이 있다고 여기게 된 듯하다.


안타깝게도 안 좋은 감정이라고 (  ) 안으로

분류해 놓은 감정들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수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 같다.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도 불편하고

타인이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는 것도 불편하다.


그래서 느껴지지 않는 척하거나 

티를 내지 않거나

아예 눌러버리거나 하게 된다.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판과 관계를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다.


감정은 욕구를 동반한다.

그래서 감정을 알아봐 주지 않으면

욕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 것이 되기에

알지 못하는 사이 자신을 외면하거나

타인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여기서 소외가 발생한다.

내가 나를 소외시키거나 타인을 소외시키거나

타인으로부터 소외당하거나 말이다.


날 것의 감정을 모두 다 드러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수용가능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에도 조금은 더 민감해져 보자.

대화다운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도, 타인의 목소리도 들으려고 애써보자.


부정적이라고 이름 붙여진 감정이 떠오른다면

잠시 그 감정을 지켜보라.

그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집중하며

그 감정이 어떤 모습이고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무슨 말을 내게 하고 싶은지 들어보라.


처음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신이 그 순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러면 무엇을 할지 분명해진다.

내가 나를 알아주었기에 소외는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타인을 알아주었기에 관계에서 소외가 발생하지 않는다. 

내가 나와 잘 지내는 방법이자 내가 타인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에 순서가 있다.

내가 나와 잘 지내는 것이 먼저다.

그러면 타인과 잘 지내는 것은 훨씬 수월할 수 있다.


내 마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매 순간 관심을 기울이고 

기꺼이 받아들여보자 

삶이 당신에게 무엇을 줄지 기대해 보자.

낯선 경험일 수 있으나

괜찮은 경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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