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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람 Jun 09. 2024

슬픔이 지나갈 때

슬픔이 지나가는 순간이 있다

한 꺼풀 넘겼나 싶다가도

다시 또 한 꺼풀이 있고

또 한 꺼풀이 있고.....

이런 순간은 

음악도 글도 풍경도

모두 무채색이 된다

그저 고요히 있을 수밖에


겹겹이 밀려오는 파고를

그대로 맞으며

가만히 있어본다

수많은 상념들이 솟았다 사그라들고

솟았다 사그라든다

출렁이려는 마음을

조용히 붙잡고서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마치 계절이 순환하듯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간다.


그러니 지금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이요

그사이 잠시 스치며 감촉을 남기는 것일 뿐임을.

그래서

괜찮다

슬픔이 바다처럼 깊어 보여도

그곳에 있어도

시절 따라 흘러가면

그 자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터이니

그저 이 자리에서 고요하게 바라볼 뿐이다




놀라운 상상력으로 감정을 시각화시킨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보면 

주인공 라일리의 탄생과 함께 기쁨도 태어난다. 

그리고 연이어 슬픔도 태어난다. 

이때 기쁨은 라일리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태어났음을 직감하고 

라일리를 슬프게 만드는 슬픔에 대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다. 

이후 다른 감정들도 태어나 균형을 맞추며 

기쁨을 중심으로 라일리가 행복하게 생활할 있도록 노력한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환경의 변화로 실의에 빠진 라일리를 돕기 위해 애쓰다

'장기기억저장소'로 빨려 들어가는 것도 기쁨슬픔이다.

기쁨은 라일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슬픔이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슬픔은 기억구슬에 자꾸 손을 대게 되고

그걸 막으려다 기쁨과 슬픔은 장기기억저장소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친구와 학교와 얼음호숫가에서 부모님과 하키를 하던 추억을 뒤로하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상실의 경험이다. 정들었던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는 상황은 슬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슬픔이 기억구슬에 자꾸만 손을 대려 하는 모습은 

슬픔을 수용하지 않고 억누르려고 할 때 불쑥불쑥 슬픔이 올라오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기쁨은 긍정적이고 활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슬픔은 가라앉아있고 부정적이며 안될 거라고 한다. 

그래서 기쁨슬픔이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말린다.

하지만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슬픔이 위로하는 것을 보고 

기쁨슬픔이 하는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이야기를 들어줬어."


기쁨빙봉을 격려하고 기분을 풀어주려 장난도 걸어보고 웃기게도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슬픔빙봉이 느끼는 슬픔을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슬픔위로에 빙봉은 다시 기운을 찾고 라일리를 돕기 위해 나선다.


기억 쓰레기장으로 떨어졌을 때 

기쁨은 라일리의 행복한 기억이 슬픔을 위로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빙봉의 희생으로 '기억 쓰레기장'을 벗어난 기쁨

슬픔을 찾아내고 좌절에 빠진 슬픔을 끝까지 챙겨서 본부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던 제어기를 슬픔에게 넘긴다. 

라일리가 자신의 슬픔을 부모님에게 표현하고

부모님도 자신들의 슬픔을 라일리에게 표현한다.

강정의 정화를 통해 부모님과 라일리는 서로 위로받고 단단하게 결속된다.  




슬픔은 힘들다.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슬픔을 느끼지 않는 척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말이다.


어째서인지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나약함을 표현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슬픔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은,

진심이었으며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잘되기를 바랐던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상실했으니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슬픔을 외면해 버리면

자신을 돌볼 수가 없게 된다. 

오히려 적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슬픔이 표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마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자.

그리고 진솔하게 자신을 표현해 보자.

자신에게 편지를 써도 좋고 일기를 써도 좋다.

이야기가 하고 싶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들어줄 누군가에게 

마음을 드러내고 위로를 받아보자.

누군가가 슬퍼하면 충고와 조언은 뒤로하고

그 순간에 함께 있어주자.

당신이 그 상대를 정말로 돕고 싶다면 말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때로는 말보다 곁을 지켜주는 것이 더 큰 의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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