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이 필요 없는 음악감상
Theme & Form
인내심이 없어도 한 곡의 클래식을 끝까지 정 주행할 수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주제부(Theme) 듣기’와 ‘형식 (form) 나누기’가 열쇠입니다.
* 주제부 듣기 – 주제부는 음악의 주된 재료가 되는 짧은 멜로디 정도로 쉽게 이해하면 됩니다. 일반인들이 가장 애호하는 18-19세기 클래식에서의 주제부는 짧습니다. 거의 다섯 마디 안쪽이죠. 예를 들어, 베토벤의 5번 <운명 교향곡>의 주제부는 “따다다당” 4개의 음표입니다. 단 두 마디. 이 멜로디가 음악의 주재료가 됩니다. 이 짧은 주제가 늘어났다(연장-Extension), 분산되었다(아르페지오-Arpeggion), 조성이 바뀌었다(전조-modulation), 올라갔다 내려갔다 (상행/하행 코드 진행–Ascending/Descending Chord Progression) 하며 다양한 형태로 변주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은 들으면서, “아, 베토벤이 주제부의 멜로디를 카멜레온처럼 신기하게 변색시키는 군!” “이 번에는 어떻게 변형될까? 음정이 높아지나? 넓게 퍼뜨리나? 반복하며 내려가나?”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감상하면 됩니다.
보통 고전과 낭만파 클래식에서는 한 부분 (Section) 안에 두 개에서 네 개 정도의 주제 멜로디가 등장하는데요. <운명 교향곡>의 예를 다시 들면, 1악장의 제시부 (Exposition)에서 “따다다당” 은 <제1주제>라고 부릅니다. 그 후 대략 50초에서 1분 동안 같은 재료로 변주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전혀 다른 주제 멜로디를 선보이게 되는 거죠. 이 부분부터는 <제2주제>의 멜로디를 음악적 재료로 활용하여 앞 서 설명한 대로 다양한 변주를 반복합니다.
* 형식 나누기 – 위에 언급한 주제부들이 등장하는 지점을 기반으로 하여 형식(Musical Form)이라는 용어가 나왔습니다. 서양음악은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나누기 구조 (Musical Structure)로 작곡을 합니다. 그냥 “음악 쪼게기”라고 편하게 정의해도 무방할 정도죠. 심지어 짤막한 30초짜리 동요에서도 한 도막, 두 도막 형식 등으로 나눕니다. 이런 작은 구성이 확대되어 교향곡에 소나타 형식 (ABA), 론도 형식 (ABAC), 2부 형식 (AB) 등으로 작곡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음, 확실히 A와 B에서 나오는 두 개의 멜로디의 느낌 다르구나!”라고 인식하기만 해도 대성공입니다. 단, 슬픔이나 기쁨 등의 감정적인 요소는 일단은 배제하고 듣는 것이 좋습니다. 약간의 냉정함으로 제1주제를 감상하면서, 제2주제가 언제 나올까 기대하면서 감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주의! - 제목에 휘둘리지 마세요. 베토벤의 <운명>이라는 두 글자를 감상자의 인생에 투영하며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무려 4악장 구성, 연주시간 35분 내내 이것만 생각하고 있다가는 깊은 숙면에 속히 빠질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운명>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붙이지 않았습니다. 후대에 누가 붙였는지 조차 의견이 분분합니다.
단 두 가지, ‘주제부 찾기’와 ‘쪼개기’를 기억하세요. 바로크에서부터 낭만파 전기까지 존재하는 대부분의 곡들에 이 장에서 소개한 감상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감상 팁
1. 대화 중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듣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소음으로 변해버리는 수가 있죠. 대화 중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들으면 앞서 설명한 두 가지 감상법을 집중하여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단, 잔잔한 실내악은 예외.
2. 라이브 공연관람 기회가 있는 경우, 오디오로 감상할 곡을 먼저 들어본 후 실황을 들으러 가보세요. 매 순간마다 다음에 올 멜로디 라인에 대한 기대감이 극대화됩니다.
3. 낭만파 후기 음악부터는 주제 멜로디가 좀 더 많아지고, 화성적인 변주가 화려하게 진행됩니다. 현대 음악까지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주제가 연속적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쪼개어 들을 수 있으나, 쉽지는 않으므로 이 책의 부록의 <현대음악> 편에서 설명된 감상법을 참고하시어 즐기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