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도 첫 3 마디만 들으면 가곡인지 가요인지 분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을 말로 설명하려 들면 어디부터 풀어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죠. 전공자들도 매 한 가지입니다. 쉽게 밝혀 말하기 버거워해요. 이 챕터에서는 그 차이점을 음악과 가사의 영역으로 나누어 쉽게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음악적으로
가곡은 정석이고 가요는 실용입니다. 모체가 있습니다. 순수학문 없이 실용학문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빵이 없었으면 쿠키나 크래커도 탄생될 수 없었고, PC 컴퓨터가 존재했기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분화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과는 밀가루와 이스트 조합의 반죽이고, IT기기는 cpu/mpu로 일컫는 기억과 연산 장치가 기본입니다.
클래식이 모체죠. 팝, 재즈, R&B, 발라드, 힙합 등의 대중음악은 분화된 장르입니다. 그러므로 클래식이 두른 울타리 안에서 대중음악이 작곡됩니다. 예를 들어, 흔히들 알고 있는 다장조니 라단조니 하는 조성과 음계들은 이미 바로크 시대에 정리됐고, 4/4, 3/4 박자니 하는 정 박자와 가요의 피아노나 기타 반주의 C코드니, G코드니 하는 화음체계 역시 이 시대에 쓰였던 작곡기법입니다.
이미 클래식이 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도 200년 전에. 이 시스템 안에서 자유분방한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대중가요입니다.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힙합도 고전적인 2박자 계통의 리듬과 장음계적 멜로디 라인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음악이죠. 결론적으로 우리가 듣는 모든 대중음악은 200년 전, 클래식이 마련해 놓은 틀 안에서 작곡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동시대의 클래식 가곡은 100년 후 미래 세대가 즐길 가요의 구조를 미리 선보입니다. 1958년에 작곡한 존 케이지의 <아리아>를 감상해 보세요.
70여 년 전, 클래식은 이미 조성과 정박자의 울타리를 넘어섰습니다. 위의 추천한 음악을 들으셨다면 아마 당황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클래식이지!? 음정, 박자가 없는 곡 같아.”라고 말입니다. 또한, 반음을 4 등분한 음을 사용한 미분음악 (Microtonal Music)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되었죠. 여러분이 갖고 있는 88 건반 피아노로는 연주 불가능한 멜로디로 합창곡을 만들고 심지어 오페라까지 작곡했습니다. 무려 70년 전에. 요즘은 이것도 모자라 반음을 6 등분한 음으로 작곡한답니다.
1960-70년대 당시 pop 제왕 비틀스가 <Yesterday>라는 정갈한 장조와 단순한 정박자의 아름다운 곡을 작곡한 것에 비하면, 클래식이 얼마나 선도적인 음악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말하듯이 노래하는 렙뮤직도 200년 전부터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라는 작곡기법으로 오페라 공연에 일반화되어 있었습니다. 발성과 멜로디 라인이 힙합과는 확연이 달라 보이긴 하나, 두 음악 모두 장/단조성과 정박자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렇듯 가곡은 고전 음악의 정석을 알려주는 동시에 100년 후 즐길 음악의 틀을 제시합니다.
가요가 오히려 보수적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파격을 저지르려면 대중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죠. 대학에 ‘실용음악’이라는 학과가 있습니다. ‘실용’이라는 단어에는 당장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죠.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대중음악 작곡가나 전공자들은 이 때문에 괴로울 겁니다. “더 이상 새로울 만한 게 없잖아!”
가사에서
음악에서와 유사한 차이점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가곡은 정형화된 시를 가사로 쓰고, 가요는 솔직한 감정이 깔린 독백이나 대화를 멜로디에 붙입니다. 가곡은 자연이나 사물에 대한 미적 표현을 전달하기 위해, 은유적이고 의인화한 단어들을 즐겨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옛날 옛적 이야기죠.
현대 가곡은 불규칙한 리듬구조로 인해, 가사도 정형화된 운율을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미사여구를 쓰는 대신 사물에 대해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선호합니다. 어떤 가사는 설명문처럼 건조하거나, 냉소적입니다. 하긴, 시문학 자체가 현실주의적인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아 파격적으로 바뀌었으니 음악의 가사도 필연적으로 이에 연동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대중가요의 가사는 여전히 정 박자에 어울리도록 운율을 맞춥니다. 오히려 현대 가곡보다 미사여구를 더 씁니다. 지나치게 건조하거나 냉소적인 가사는 피합니다. 인기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중들의 기호에서부터 오는 음악적 제약이 클래식 보다 더 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오. 필자가 가요를 폄훼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나의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마음을 움직이는 가요는 인생을 공감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대중예술입니다.
한 줄로 정리합니다. "가요의 근본이 결국은 가곡에 있다."
덧붙임 1. 이제 가곡을 이해했으니, 감상 팁을 소개합니다. 음악회를 가기로 결정한 당신에게 아래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고전 성악곡 – 오늘날 대부분의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익숙한 예술가곡 공연입니다. “음악의 정석은 이거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죠.
창작 성악곡 – 주로 국제 음악 축제에서 발표됩니다. 모더니즘 색채에 맞는 미래적인 성악곡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느 옵션을 선택했건 여러분은 행운입니다. 왜냐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 음악과 100년 후 음악 둘 중 하나를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죠.
덧붙임 2. 한국에서 20세기에 작곡된 그리운 금강산, 가고파 등 무수한 애창 가곡들은 작곡 당시 서양의 가곡들과 비교하면 더 고전적인 작곡 기법으로 지어졌습니다. 작곡 당시 보다 한 100년 전 낭만파 전기 즈음의 서양 작곡가들이 쓰던 화성과 선율 진행을 가진 곡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작곡가들 사이에서 “대중가곡”이라는 별칭까지 붙이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