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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Sep 30. 2024

#3. 주류와 비주류

#3. 주류와 비주류


아랍 이지훈, '반딧불이 '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편한 호칭이 하나 있었다.

‘아웃사이더’. 학교에 자주 보이지 않는 이들을 ‘아웃사이더’라 칭하곤 했다.

학교에 자주 보이며,

학교 행사에 자주 함께 하는 이들이 주류라면,

소위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이들은

비주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아웃사이더’로 학교를 다니며

난 몰랐던 내 안의 새로운 모습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주류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비주류가 되기를 자처하는 아웃사이더.

유행과 같은 시대적 흐름에 대한 거부감,

그 유행에 뒤처지기를 자처하는 비주류.


그 모습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학생이었던 그 시절보다 더 아웃사이더로, 비주류로 살아가고 있다.

유행을 모르니 유행을 따를 수 없고,

뉴스를 보지 않으니 세상의 흐름에 뒤쳐져 있다.


처음엔, 불안했다.

이렇게 비주류로 살아가도 되는 것인지,

이렇게 비주류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이를 낳고 기르며 그 불안은 더욱 커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시선을 바꾸어 보았다.

아니,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경험으로 시선이 바뀌었다.

밖에서 나를 바라보던 시선은

비교라는 안경을 끼고 나를 향하고 있었다.

비교라는 안경을 벗고,

밖이 아닌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제대로 나를, 내 삶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비주류인 줄 알았던 나는 내 삶의 주류임을.

아웃사이더인 줄 알았던 나는 내 삶의 중심임을.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는 달라진다.

세상과 주변이들의 시선이라면,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그렇게 세상과, 사람들과 비교하는 관점이라면

난 비주류가 맞다.

반면, 내 안의 시선이라면,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면,

그렇게 내가 중심이 된 관점이라면 난 주류가 분명하다.


여전히 유행을 모르지만,

세상의 이야기를 모르지만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유행에, 세상의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삶 속에서 비주류인 줄 알았던 나는

나의 삶 속에서 주류로 잘 살아가고 있으니,

세상 속에서 비주류이기를 자청하는 나는

나의 삶 속에서 주류로 잘 살아가고 있으니.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라면,

주류여도, 비주류여도 괜찮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이기에,

주류여도, 비주류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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