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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Nov 04. 2024

#308. 나에게 사과를 건네며

#308. 나에게 사과를 건네며     


수술실에서 나와 눈을 떴을 때 굳게 다짐한 것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기로.

지금을 살고 있는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일 수 있기에,

함께 할 수 있는 매 순간이 소중하고 귀중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던 중,

문득 많이 지쳐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득 많이 불편해하고 있는 그들을 발견했다.

그들을 위해, 그들이 걱정되어 하게 되는 나의 말들이,

그들을 위해, 그들이 걱정되어 하고 있는 나의 말들이

정작 그들을 힘들고 있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마음이 담긴 말들은 잔소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아... 그랬구나.

내가 그들의 경계를 침범하고 있었구나.  

경계를 지키지 못한 것이,

경계를 침범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아간다.     


관계에 대해 고민할 때면 찾게 되는

칼릴 지브란의 시를 다시 펼쳐 읽어본다.

그리고 지켜야할 나의 경계와

지켜주어야 할 그들의 경계를,

우리들 사이에 공간을

다시 점검해본다.     



...

그러나 함께 있되

그대들 사이에 공간이 있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십시오.

그보다는 사랑이

그대들 두 영혼의 기슭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기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십시오.

그러나 각자 자신의 잔을 마시도록 하십시오.

서로에게 자신의 빵을 나누어주십시오.

그러나 각자 자신의 빵을 먹도록 하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십시오.

그러나 서로는 혼자이게 하십시오.

함께 떨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낼지라도

각각은 혼자인 현악기의 줄처럼.      


서로 가슴을 주십시오.

그러나 상대방의 가슴을 소유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저 위대한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십시오.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칼릴 지브란, ‘예언자’ 中     



걱정된다는 이유로, 위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경계를 밀고 들어갔던 나는

멈추어 거리유지를 명심해본다.  

천천히 천천히 물러서며, 거리를 두어야 함을 명심해본다.

그렇게 다시 그들의 경계를 지켜주어야 함을 명심해본다.      


그리고 아직도 참 많이 부족한 나의 표현력과 미숙한 말들에

그들이 아프지는 않았을지, 그들이 힘들지는 않았을지,

그들이 상처받지는 않았을지...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쓰인다.      


자꾸만 쓰이는 마음속에는

그들을 향한 미안함이 퍼져 나온다.

동시에 공허함과 서운함, 허무함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들어

온 몸과 마음을 뒤흔들며,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놓으려 한다.

드리우는 그림자가 오래 자리 잡지 않도록,

드리우는 그림자가 더는 번져가지 않도록,

드리우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알아차리며 보살펴본다.     


그리고 나에게도 사과를 건네 본다.


“미안해. 혼자서 많이 무거웠지? 혼자서 많이 버거웠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에게 하는 사과는

나 자신을 반복적으로 위협하듯

떠오르는 감정을 청소하는 과정입니다.

마흔이 되는 동안

타인의 감정들에 의해 뒤엉켰던

내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내길 바랍니다.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내 가슴을 감싸듯 도닥거리며 사과하면 됩니다.


출처: 김선호, ‘마음이 흔들려서, 마흔인 줄 알았다.’ 中     



나에게 사과를 건네며,

나의 경계를,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를 다시 확인해본다.

그리고 그들의 경계선 안으로 넘어갔던 나의 발걸음을

그들의 경계선 밖으로 천천히 천천히 물러서며 옮겨본다.


그리고 걱정과 위함을 담은 마음으로

자꾸만 과해지는 나의 발걸음이

또다시 그들의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도록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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