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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희 Apr 02. 2024

푹 젖은 빨래와 바짝 마른 빨래

episode 1.

언젠가부터 감정은 두 가지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감정에 사로잡혀 몸이 축 쳐진,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치 푹 젖은 빨래와 같은 감정.


그리고 행복하고, 슬기롭고, 가치있고, 무언갈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해서 열정있게 살아가는,

마치 바짝 마른 빨래와 같은 감정.


하고 싶은 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서,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마치 바짝 마른 빨래처럼, 어떤 물방울조차 나를 적시지 않는 상태.

그 상태만이 행복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마음에 물방울이 젖어들 때. 

뽀송하고 햇빛의 감각이 가득한 나의 감정에 마치 그건 잠시의 행복이라는 것마냥 

어두컴컴하고, 축축하고, 어떨 땐 메스껍게 느껴지는 물방울이 가득 젖어들 때.


순간 바짝 마른 빨래와 같은 감정은 찰나일 뿐이며

눅눅하고 음침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푹 젖은 빨래와 같은 감정이

결국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임을 깨닫는다. 

물방울이 조금이라도 닿는 순간 푹 젖은 빨래가 되어 버린다.

물방울이 닿은 빨래는 절대 바짝 마른 빨래일 수 없기 때문에. 


이 굴레에 갇히게 되면 바짝 마른 빨래와 같은 감정은 결코 누릴 수 없는 감정이 되어버린다.

바짝 마른 빨래와 같은 감정을 느끼더라도 언젠가 물방울이 적셔들까봐 불안해하며,

푹 젖은 빨래의 감정을 느낄 때 이 감정은 영원히 나와 함께할 것이란 생각에 두려워진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두 가지 감정밖에 남지 않게 된걸까?

푹 젖은 빨래와 같은 감정, 바짝 마른 빨래와 같은 감정 외에

부분만 젖은 빨래와 같은 감정, 젖었지만 햇빛을 받으며 말라가는 빨래와 같은 감정도 있음을

언제부터 느끼지 못하게 된걸까?


감정이 단 두개가 아닌, 

어느 정도로 젖었고, 어느 정도로 말라가고 있느냐로 분류될 수 있는

수 백가지, 수 만가지 많은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조금의 물방울이 나를 푹 적실까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조금 젖으면 조금 젖은 것이고,

조금 마르면 조금 마른 것이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푹 젖은 빨래와 같은 감정과, 바짝 마른 빨래와 같은 감정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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