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5.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나를 돌보기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렇기에 소진되었음을 자각한 이상 스스로를 따뜻하게 대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막상 쉽지 않았다. 당장 내가 끝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한편으론 잠시 멈추어 나를 돌봐야 한다는 것 자체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미디어에서도, 슈퍼바이저도 누누이 강조하던 '셀프케어'란 뭘까?
내담자에게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스스로를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고 했지만, 막상 실천해 보려니 상담자인 나에게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는다. 셀프케어란 꼭 요가나 아로마, 반신욕 같이 '무언가를 하는 행위'일까? 혹은 SNS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짧은 위로 문구를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는 것이 셀프케어일까?
무엇을 해야 스스로를 케어할 수 있는 걸까?
셀프케어란 무엇일까
제대로 셀프케어를 하기 위해선, 셀프케어의 정의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는 셀프케어란 다음과 같다.
자신의 건강, 행복, 웰빙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행하는 모든 활동
즉, 셀프케어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그냥 쉬는 것이 아닌, 셀프케어는 '의도적'인 행위이다.
2. 현재 내가 무엇을 느끼고, 뭘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3. 오랫동안 나의 건강, 행복, 웰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4. 소진 및 번아웃에서 회복해서 다시 원래의 나로 연결될 수 있는 힘이어야 한다.
'현재의 상태를 점검해 보고', 소진 및 번아웃되어 있다면 '지속할 수 있는', '의도적인' 행위를 통해 '원래의 나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렇게 정의되는 셀프케어가 그동안 어렵게 다가왔던 이유는 뭘까?
나의 경우엔 '원래의 나로 연결될 수 있는', 즉 기존의 건강과 행복을 되찾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고, 힐링이 필요할 땐 동네를 산책했다. 그것들이 나에게 익숙한 셀프케어 방식이었지만, 그 모든 행위가 반드시 회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도대체 무슨 활동을 해야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의 고민이 시작됐다.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정주행해도, 친구들을 만나고 와도, 일기를 써도, 책을 읽어도, 운동을 해도 마음은 여전히 뻣뻣했다. 모두 정답이 아니라면 이젠 어떤 활동이 남았는지를 고민하던 나는 문득, 내가 지나치게 셀프케어를 '하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활동을 하는 의미'와, 이 활동을 통해' 나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잊고 있었다. 셀프케어의 포인트는 그 부분에 있었던 것이다.
회복이란, 다시 나와 관계 맺는다는 것
소진 및 번아웃을 자각하고 셀프케어를 한다는 것은, 소진되었던 나를 회복하는 과정에 내가 함께하겠다는 의미이다. 스스로를 회복하는 과정에 등 돌리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마음. 나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나에게 다가가겠다는 다짐. 그게 그저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셀프케어는 해야 하는 행동이라기보단, '내가 나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바쁜 나날들과 스스로를 자책하던 생각에서 벗어나, 내 몸과 마음 그 자체에 집중해 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나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행동들을 고민하고 실천해 보는 시간. 그 과정들이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와 맺은 관계가 조금씩 두터워지면서 회복의 길로 향하게 된다.
때로는 운동하는 게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이 되기도 하고,
몸이 너무 힘들 땐 내가 먹을 밥 한 끼를 정성스레 준비해 보는 것도 셀프케어가 된다.
감정이 버겁게 느껴질 땐 일기를 쓰며 내 감정을 돌이켜볼 수도 있고,
기분전환이 필요할 땐 좋은 향기가 나는 바디워시를 사용해 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셀프케어는 특별하거나 거창할 필요가 없다. 조금씩 나에게 집중해 본 시간들,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 조용한 실천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나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을까?
잠시 멈춰 나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가혹하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이 아닌, 그저 내 옆에 다정히 서서
"지금 괜찮니?" 하고 조용히 물어봐주는 것.
셀프케어는, 그 작은 다정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