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4.
괜찮지 않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조용히 무너져갔다.
더는 '상담자'를 내세우며 나를 숨기지 못했다. 켜켜이 쌓여온 감정들이 조금씩 쏟아져 나와 삶을 잠식해 갔다. 내 감정의 그릇엔 한계가 있는데 너무 많은 감정들이 안에 들어찼다. 이젠 그만, 이 감정들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안에서부터 절규하듯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수많은 내담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고민을 듣고, 호소하는 우울감, 불안감, 고통, 절망... 그 감정들에 공감하고, 나아가려고 애쓰는 과정들마다 내 감정의 그릇 안에도 잔여물이 남았다.
겨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나는 나의 가득 차서 넘쳐버린 그릇이 보였다.
멍한 표정으로 버스 차창 속, 빠른 속도로 바뀌는 풍경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한다.
괜찮아야 하는데,
괜찮지가 않아...
소진된다는 것은
내가 소진*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소진: 만성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장기적인 반응으로 나타나는 심리적인 증후군(Maslach, Schaufeli & Leiter, 2001)이다. 상담자에겐 내담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감소하며, 직무 만족감과 성취감이 저하되는 심리적 상태로 나타날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아주 무덤덤하게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담자가 눈앞에서 울고 웃었고, 나는 그 표정을 보며 따라 했지만 마음은 아주 고요했다. 무언가 내담자의 말을 들으며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감정에 접촉되는 것에 점차적으로 무뎌지고 있었다. 내담자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아닌, '무슨 말을 해줘야 하지?'를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상담과 상담 사이, 쉬는 시간엔 공허해졌다. 상담이 끝나면 그제야 자각이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상담이 과연 내담자에게 도움이 될까? 이를 생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굴을 파고 들어간다. 아닌데, 이렇게 해선 안 됐는데. 왜 떠오르는 말들을 해주지 못했고, 내담자의 감정에 진심 어리게 공감해주지 못했지?
그러다 갑자기 멈춰서, 계속해서 내면의 굴을 파고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한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마음을 정돈하고 다음 내담자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나는 당장 지금 내 내면의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을 못하는 걸까. 왜 다음 상담을 준비하지 않고 이러고 있는 걸까.
'왜, 왜, 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금 상황에선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데도 나는 나를 몰아세운다. 대답해, 난 왜 이렇게 못나서,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그러다 다음 내담자가 들어오면, 또다시 무덤덤하게 상담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얘기를 나눠볼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스스로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마음의 스위치를 켜고 끈다는 것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그 어떤 비난과 비판 없이 내 모습을 돌이켜보게 된다.
버스 차창 속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의 고요함과 적막함에 어느 순간 위안을 받는다. 마음도 점차 고요해지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하루를 보냈던 나를 떠올렸다.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계같이 상담을 쳐낸 나.
사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한 나.
그런 스스로를 비난한 나.
그제야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파괴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나는 오늘 하루를 버텼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버텨온 시간이 그만큼 길었던 것뿐이다. 약해서 무너진 것이 아닌, 버티고 버텨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내담자와 나누고 싶은 얘기는 많았는데, 감정의 그릇이 넘쳐흘러 나에겐 그럴 힘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런 스스로에게, 우리는 왜 이토록 항상 잔인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내담자에게 항상 말했듯, 나도 나 스스로에게 조금은 더 따뜻해져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전에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올랐다.
상담자에겐 마음의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감정을 사용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상담이 끝났을 때 그 감정을 일상생활에까지 끌고 가지 않기 위해선 마음의 스위치를 꺼야 한다. 그래야 내가 갖고 있는 한정된 감정의 그릇이 넘치지 않도록 지켜나갈 수 있고, 다음에 내담자를 만났을 때 스위치를 켜서 온 힘을 다해 내담자의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나는 스위치를 켜는 법만 알았지 끄는 법은 몰랐던 것이다.
상담이 끝난 뒤에도 생각에 잠기고, 내담자의 감정에 동화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느라 내가 너무 과열되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스위치를 켠 채 달려온 나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감정의 과열 속에서도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럼에도 '묵묵히 버텨온 나'라는 사실이니까.
그런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이 아닌, 이제는 좀 더 편안해지기 위해 어떻게 스위치를 켜고 꺼야 할지를 고민해가고 싶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내담자를 더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