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도 감정 그릇의 크기가 정해져 있다

episode 13.

by 상희

사람마다 담을 수 있는 감정 그릇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의 감정을 담을 수 있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언젠가 주체 못 하는 감정들이 끓어올라 결국 그릇의 크기를 넘어서서 넘칠 때 즈음, 그제야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는 내담자가 그러하듯, 상담자도 마찬가지이다.

상담자 안에도 감정 그릇이 존재하고, 끓어올라 넘치는 순간을 자각하게 된다. 부끄럽지만 내 경험을 한 가지 공유하려 한다. 나는 한 번, 그런 순간을 겪었다. 내 안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격렬했던 토요일 오전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공황 발작인데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이었다.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에 움직일 힘도 없이 소파에 널브러졌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던 나는 이런 여유를 얼마 만에 맞이했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곤 한편으론 월요일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특강을 준비하고, 밀린 행정 업무 처리, 그리고 금요일에 만났던 내담자... 머릿속이 가열되어가고 있을 때, 순간 숨이 가빠오는 느낌이 들었다. 텁, 하고 숨이 막혔다.


가끔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을 때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 적이 있었지만, 그것도 편안한 집에서, 소파에 누워 그런 경험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별달리 더 생각하지 않곤 TV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더는 안 되겠다고 느끼게 된 건,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급하게 비닐봉지를 찾아 입 주위를 에워쌌지만 가쁜 호흡이 멈출 기미가 없었다. 어지럽다 못해 급기야 토를 하고 나자 이 일의 심각성을 알았다.


'어지러운 정도가 아닌데, 이건 아무리 봐도...'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가려고 몸을 일으켰고, 골목길까지 꾸역꾸역 걷다가 결국은 주저앉았다. 그리곤 지금의 내 힘으론 병원까지 갈 수도 없음을 자각했다. 119가 왔고, 그때 살면서 처음으로 구급차를 타봤다.


"... 환자분, 정신 차리셔야 해요. 깨어있으셔야 해요."


자꾸만 나를 환자라 불렀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산소가 머리까지 닿지 않는 상황에서도, '상담자'로서의 나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상담자는 스트레스 안 받나요?


"신체적인 이상은 없으시고, 아무래도 공황이 오신 것 같아요."


결국 의사에게서 그 단어를 들어버렸다. '공황'. 예상은 했지만 그 단어를 직접 들으니 기분이 생경했다. 월요일에 내가 진행해야 하는 특강 내용 중, 공황 장애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일 지도 모르겠다.


"혹시 최근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나요?"

"괜찮았는데요, 저 상담자거든요."


공황 발작이 와서 누워있는 와중에 왜 그렇게 답했을까? 의사는 잠시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어이없는 걸 들었다는 듯 답했다.


"상담자는 스트레스 안 받나요?"


그 질문에 벙쪘고, 의사 역시 황당해 보였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있자, 의사는 좀 더 누워서 회복을 취하다 괜찮아지면 알려달라고 하곤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겨지고, 머리가 점차 맑아지자 나는 누워있는 와중에도 의사 앞에서 '상담자'로서 보이고 싶었음을 깨달았다. 퇴근한 토요일 오전이었지만, 구급차를 탄 와중에도 난 상담자로서의 나를 내려놓지 못했었다.


이제야 상담자라는 방어를 내려놓고 내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당연하다고 느껴왔던 것들 중에서, 나는 무엇에 그토록 스트레스받아왔을까? 밀린 행정 처리? 급하게 준비해야 했던 특강? 그리고... 그제야 금요일에 만났던 내담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담 내내 엉엉 울던 그 모습, 그 울음을 담담히 받아내려 했지만 점점 지쳐갔던 나, 내담자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 같은 무력감, 그리고 혹시나 내담자가 삶을 그만둘까 봐...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그동안 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괜찮다'는 말의 역설


내 공황의 요인은 '상담자'는 모든 감정을 다 담아낼 수 있는 특별한 그릇을 가졌다고 믿은 것이었다.

특강, 행정 업무, 내담자의 울음, 무기력감, 그리고 막연한 불안까지. 그 모든 것들을 '괜찮다'는 말로 뚜껑 덮듯 눌러왔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마음을 좀먹는데, '상담자'이기에 다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결국은 나를 무너뜨리는 키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나는 왜 '괜찮다'라고 생각했을까?

힘들면 괜찮을 리 없는데 너무도 쉽게 스스로에게 '괜찮아'를 말했고, 감정 그릇이 넘치는 순간에도 상담자로서 꿋꿋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쌓여있던 감정이 어느 순간 흘러 너무 칠 때가 되어서야, 나는 '괜찮다'의 역설을 깨달았다.


괜찮다는 말은, 오히려 괜찮지 않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너무 쉽게 나와버리는 괜찮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다. 나아가야 하고, 견뎌내야 하니까 감정 그릇의 뚜껑을 덮으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덮었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괜찮지 않음을 인정할 때, 그리고 그릇에 담긴 감정의 크기를 보기 시작할 때, 그제야 우리는 괜찮아질 수 있다. 정말 괜찮아지기 위해 중요한 건, 그릇이 넘치기 전에 내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

'괜찮지 않다'는 신호에 조용히 귀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내 이름 앞에 놓인 역할보다,

나라는 사람의 감정이 먼저 보이게 되기를.


나도, 그리고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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