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로망 같은, 여인들의 성 쉬농소 2편

풍부한 역사가 남긴 보물찾기 놀이

by 빠리누나

지난주에 올라왔어야 할 쉬농소성 2편인데,

며칠 전에 쉬농소성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 것을 핑계로,

해당편의 연재를 한주 미뤘다.

초여름의 아름다움을 잔뜩 뽐내고 있던 쉬농소의 자태가

왜 내가 쉬농소를 여름날의 로망이라고 부르는지 더욱 와닿게 해 주었던 날이었다.


녹음이 짙어져 가는 쉬농소 곳곳은 모든 곳이 보물 같다.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지켜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하면서, 구제도의 모순을 상징하는 프랑스 지역 곳곳의 성들은

시민군들의 침략을 받아 허물어지고, 불태워졌으며, 약탈당하였다.

당시의 쉬농소의 주인은 루이즈 뒤팽(Louise Dupin) 부인이었는데,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몽테스키외, 볼테르, 장자크 루소 등

당시의 계몽사상가들과 과학자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정신을 찬양하였다.

그녀의 선한 마음과 지성을 갖춘 아름다움이 혁명시기에 철거위기에 놓였던

쉬농소를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었고,

그녀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쉬농소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Louise Dupin 부인의 초상화


1,2차 세계대전과 쉬농소성

루이즈 뒤팽부인 이후에 쉬농소의 소유권이 여러 가문에게 이전되었고,

1차 세계대전즈음부터 지금까지 쉬농소를 소유하고 있는 가문은

프랑스의 유명한 초콜릿명가였던 뮈늬에르(Menuier) 가문의 소유였다.

(현재는 대기업 네슬레에 합병되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유럽대륙의 혼돈의 시간은 쉬농소또 한 피할 수 없었고,

당시의 쉬농소의 상속녀였던 마담 뮈니에르가 가문의 자본으로 쉬농소를

병원으로 개조하여, 1914년부터 1918년까지 2254명의 부상병들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갤러리에 놓여있는 프랑스 국기모양 꽃병과 쉬농소성 한편에 재현해놓은 당시의 병실

2차 세계 대전당시에는, 쉐르강을 가로지르는 갤러리 다리를 기준으로,

독일군의 점령지와 프랑스 자유진영의 경계를 나눠, 다리를 통해서 이동하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38 휴전선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1편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첫 번째 주인이었던 까뜨린느 보리 쏘네와 토마스 보이어가 만든 성의 앞부분에

디안느 드 푸아티에가 다리를 놓고,

카트린 드 메디치가 건물을 지어 올린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쉬농소성이

유럽의 근현대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셈이다.

쉬농소성의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그림
현재의 갤러리 모습/ 샹들리에는 쉬농소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새롭게 설치한 것이다.


플로리스트와 협업하다.

쉬농소성은 성외에도 부속건물까지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 중의 하나인데,

부속건물 중의 하나가 현대의 플로리스트의 작업실로 개조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플로리스트들은 계절에 맞는 꽃으로 쉬농소의 곳곳을 장식해주고 있어서

쉬농소를 방문할 때마다

어떤 꽃으로 장식되어 있을지

상상하면 늘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같은 방이라도 다른 계절에 방문하면 다른 꽃을 볼 수 있다.

3년 전부터 고성을 방문한 중에 가장 쉬농소의 꽃장식이 아름다웠던 적은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성을 꾸며 놓았을 때였다.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영롱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조명들이 쉬농소의 겨울을 따뜻하게 채워주었고,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장식을 보며 쉬지 않고 감탄하며,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

항상, 여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쉬농소가

보란 듯이 겨울에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파리에서 본 그 어느 트리들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끝이 없는 보물찾기

시간이 있다면 쉬농소 주변에 숙소를 잡고 이틀정도 성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숲 속까지 한적하게 거닐다 오고 싶다는 생각을 방문할 때마다 하는 것 같다.

루아르 강변 주변의 성중에 가장 관광객이 많고, 인기가 많은 쉬농소성은

여름이 되면 쉐르강에는 카약을 타고 유람선 크루즈를 타면서 쉬농소성의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쉬농소를 둘러싼

정원과 숲 속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쉬농소가 이토록 인기가 많은 이유는 성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변 부속 건물과 정원들, 텃밭, 숲 속의 미로, 당나귀 농장 등등

볼거리들이 가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최애 공간 중 하나는 카트린드 드 메디치가 진귀한 허브와 재료를

보관해 두었던 왕비의 약탕실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이 이토록 온전히 남아있는 이유도,

루이즈 뒤팽부인 덕분에 혁명의 폭풍을 피해 갔기 때문이 아닐까?

귀한 허브로 약과 화장수를 만드는데 이용했다고 한다.

약탕실의 아래층은 지하로 되어있고,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와인저장고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고, 실제로 와인을 팔고 있다.

쉬농소성의 관람의 마지막 동선에는 귀한 약초와 꽃들을 재배했던 장소가 그대로 남아있고,

현재는 일부공간은 지역주민들에게 주말농장으로 대여해주기도 하고

쉬농소 성 자체에서 꽃이나 농작물을 재배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이곳의 풍경도 계절에 따라 달라져서 꽃이 만발해 있을 때는 꼭 시간을 들여 구경을 하고 온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과 농작물이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의 왼쪽길로 쭉 따라 들어가 쉬농소성을 마주한뒤,

다양한 부속건물들 까지 보고 나오면 오른쪽으로 돌아 나와 위와 같은 풍경을 보게 된다.

위의 풍경을 보기 전에는 꼭! 당나귀 친구들을 만나야 쉬농소 성의 관람동선을 끝낼 수 있다.

디안느 드 푸아티에의 아름다운 미모의

비결이 당나귀젖 목욕이었다는 것이

실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루아르 강 주변에서

당나귀젖으로 만든 비누를 판매하는 곳을 종종 찾을 수 있다.


이토록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쉬농소의 이야기를 슬슬 마무리하려고 보니

글에서 다루지 않은 많은 장소들이 떠올라서 아쉽지만,

나의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쉬농소를 방문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처럼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쉬농소를 찾기를 바란다.

당신이 방문하는 계절의 쉬농소는 어떤 모습으로

당신을 맞이해줄지 나 역시도 너무 기대가 되는 바이다.


겨울에도 여름의 로망을 꿈꾸게 하는 아름다운 쉬농소성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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