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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 빠지다
02화
여름날의 로망 같은, 여인들의 성 쉬농소 1편
루아르 강변 고성 중 꼭 하나를 봐야 한다면 주저 없이 쉬농소성이다
by
빠리누나
May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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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르네상스 기였던 15세기 16세기의 왕실의 근거지였던
루아르강변에는 300여 개의 고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많은 고성중에 딱, 한 곳만 추천해 달라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쉬농소 성을 추천할 것이다.
고성에 방문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다 볼 수 있는
쉬농소를 나의 첫 번째 고성이야기로 정한 것도 그 이유이다.
루아르 강변의 주요 성들 [네이버 이미지 출처]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성
1515년 왕실재정 감사관이었던 토마스보이어의 명에 의해 지어진 쉬농소성은
그의 아내인 카트린느 보리 쏘네의 감독아래 건축이 완성되었다.
1535년 왕실의 소유가 되면서 앙리 2세는
후에 자신의 애인이 디안느 드 푸아티에에게
쉬농소를 하사하였다.
디안느는 셰르강을 끼고 자리 잡은 쉬농소성에 다리를 놓기를 원하였으나,
앙리 2세가 젊은 나이에 사망을 하고,
왕비였던 카트린 드 메디치가 성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디안느를 쫓아냈다.
카트린 드 메지치가 자신의 아들 앙리 3세의
즉위식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리 위에 긴 회랑을 지음으로써
오늘날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성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세르강에서 바라본 쉬농소 성 [출처 구글 이미지]
여인들의 성
첫 번째 성주였던, 카트린 보리쏘네를 시작으로 역대 성주들이 여인으로 이어져 내려온 탓에
쉬농소에 붙인 별명중 하나이다.
쉬농소에 방문하게 되면, 이를 테마로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갤러리도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앙리 2세의 여인이었던, 카트린 드 메디치와 디안느 드 푸아티에에 관한
이야기 일 것이다.
앙리 2세는 아버지인 프랑스와 1세의 스페인 원정실패로
어린 나이에 스페인에 볼모로 대신가게 되었고, 그 당시
왕자를 보필하기 위해 함께 간 귀족일원 중 디안느 드 푸아티에도 함께였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하였고, 앙리 2세보다 20살이 많은 연상의 여인이었다.
앙리 2세는 9살에 처음 본 디안느를 어머니처럼 따랐으며,
19세부터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디안느는 여러 역사에 나오는 후궁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성숙하였고 아름다웠으며 지혜로웠다고 한다.
실제 앙리 2세의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명문가인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치와의 결혼도 그녀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앙리 2세와 동갑이었던 카트린은 사소한 일부터 국가 중대사까지 앙리 2세가 디안느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곱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카트린은 앙리 2세가 사망하자마자 디안느를 쉬농소에서 내쫓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받다.
우리에게도 세기말 예언으로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인이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그를 곁에 두며,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의논을 하곤 했는데
그녀에게 노스트라다무스는 3가지 커다란 예언을 남긴다.
첫째, 당신의 남편인 앙리 2세는 단명할 것이며, 그 원인은 마상경기가 될 것이오,
이 이야기를 들은 카트린은 앙리 2세에게 신신당부하였지만, 스코틀랜드의 몽고메리
장군과의 마상경기에서 창조각의 파편이 얼굴에 찔린 앙리 2세는 상처가 감염되어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한다.
둘째, 당신의 세 아들은 모두 왕이 될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그들 또한 단명할 것이오.
실제로 첫 번째 아들인 프랑스와 2세는 왕이 된 후 1년 뒤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으며,
10세의 나이에 차남이었던 샤를 9세가 왕이 되면서 카트린 드 메디치가 섭정을 시작하였다.
샤를 9세가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후, 막내였던 앙리 3세가 즉위하게 된다.
앙리 3세는 약 15년간 재위하였으나 당시 가톨릭과 개신교의 다툼이 과격해진 시기에,
신교도인에 의해 암살을 당하고 만다.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은 카트린 드 메디치는 프랑스의 왕비이자 군주로써, 정사를 돌봐야 했고
그녀의 집무실 역시 쉬농소 성이었다.
디안느 드 푸아티에의 방에 걸려있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초상화
디안느를 내쫓은 카트린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녀의 방에 걸고,
벽난로 주변은 자신의 이니셜 C와 앙리 2세의 이니셜인 H로 장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여자들이 좋아하는 명품브랜드 샤넬의 로고도 여기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왼쪽 문위에 로고는 마치 알파벳 D를 겹쳐놓은 듯 하지만,
실제로는 알파벳 C와 H로 만들어진 로고를 겹친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를 보고 후대 사람들이 결국 역시, 디안느가 승리자구나 라는 농담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뷰티크리에이터, 디안느 드 푸아티에
디안느 푸아티에의 초상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디안느라는 여신이 달과 사냥의 여신이기에, 쉬농소에서 보이는 디안느의 초상화는
그녀를 마치 신화 속 여신의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을 걸어 두었다. 위에서 봤던 카트린 드 메디치의
초상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초상화이다.
디안느는 실제로로 매우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된 기록들이 남아있으며,
당시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꼭 차가운 물에 당나귀 젖을 섞어 목욕을 하였으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화장수를 꼭 발랐다고 한다.
그녀가 20살이나 어린 앙리 2세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앙리 3세의 평안함을 기도한 백색의 여왕
쉬농소성 3층에는 온통 검은색으로 벽이 칠해지고 어두운 커튼으로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꾸며놓은
방이 있다. 앙리 3세의 부인이었던 루이즈 드 로렌이 남편이 죽어서라도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 방을 온통 검은색으로 칠하고 평생 하얀 옷을 입고 남편을 위해 기도를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녀가 백색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앙리 3세의 죽음으로 발루아왕조가 끝나고 왕실의 근거지가 파리로 옮겨지면서
부르봉왕가가
시작되고, 쉬농소는 여러 귀족들에게 소유권이 이전되게 된다.
그 후의 쉬농소의 이야기는 2편에서 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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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연재
고성에 빠지다
01
프롤로그
02
여름날의 로망 같은, 여인들의 성 쉬농소 1편
03
여름날의 로망 같은, 여인들의 성 쉬농소 2편
04
프랑스 역사의 산 증인, 앙부아즈 성 1편
05
프랑스 역사의 산 증인, 앙부아즈 성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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